출판사 30대 편집장 3인 '한여름 밤의 책 수다'

2010. 7. 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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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 읽은 책 남기고 온 책

여름휴가에 책 얘기가 빠지면 좀 섭섭하다. 책은 여름휴가에서 메인 디시(main dish)는 못 돼도 디저트 정도는 된다. 문학, 인문, 실용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30대 편집자 3명을 한강으로 불러냈다. 임지호(38·북스피어 편집장) 김희진(35·여·민음사출판그룹 임프린트 '반비' 편집장) 최세현(33·여·샘앤파커스 편집팀장)씨가 흔쾌히 합류했다. 27일 한여름 밤 강바람이 시원하게 드나드는 요트장 옥상에서 '책수다'가 시작됐다.

사회: 다들 휴가는 가시죠?

임지호: 이제 가야죠. 다음달 중순에 처가댁이랑 안면도에 가기로 했어요.

최세현: 저도 안면도 가는데. 다음주에 휴양림 예약했어요. 저는 휴양림 찾아다니는 거 좋아해요.

김희진: 저는 회사 옮긴 지 2주밖에 안 됐어요. 여름휴가는 못 갈 것 같아요. 원래도 잘 안 다니는 편이에요. 돈도 없고. 동네 어슬렁거리고, 영화 보러 다니고, 늦잠 자고, 집에서 밥해 먹고, 고양이랑 놀고, 그러면서 쉬는 편이에요.

최: 저는 집이 더러워서 틈만 나면 나가려고 하는데. 집에 있으면 청소든 설거지든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도무지 쉴 수가 없더라고요.

김: 우리 집도 엄청 지저분해요. 그래도 저는 방에서 뒹구는 게 좋아요.

임: 저도 집에서 노는 거 좋아해요. 제 방에 들어앉아 책 읽는 게 제일 좋아요. 옆에 팥빙수랑 냉커피 놓고.

사회: 휴가 갈 때 책을 가져가겠죠?

최: 저는 읽고 싶은 책 딱 한 권, 많아야 두 권 갖고 가요. 엄선해서 들고 가고, 가져간 건 다 읽어요. 그리고 읽고 나면 거기에 버리고 와요. 누구에게 줘버리거나.

김: 버리면 돌아와서 너무 아깝지 않아요?

최: 저는 안 갖고 오고 싶어요. 돌아와서 그 책이 다시 보고 싶으면 또 사요. 그래서 어떤 책은 여러 번 사기도 하죠.

임: 누구에게 주고 덜어내고 그래야 되는데 책 주고나면 꼭 그 책이 필요해져요. 그래서 못 줘요, 전.

최: 5년 전쯤 인도 여행을 했는데, 거기 유스호스텔에서 누가 남기고간 책을 주워서 읽은 적이 있어요. 참 힘들 때였는데 그 책에서 큰 위로를 받았죠. 이 책을 남기고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도 해보고. 그때부터 여행지에 책을 남겨두는 버릇이 생겼어요.

임: 여행 갈 때 저도 습관처럼 책을 갖고 가긴 하는데, 사실 거의 안 봐요.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풍경 보고 그러는 게 더 좋더라고요. 책은 여행에서 돌아와 집에서 쉴 때 주로 읽어요. 그동안 사 모은 책들을 쌓아놓고 읽죠. 우리 회사가 장르소설을 내는 곳이니까 아무래도 미스터리나 SF(공상과학)를 많이 읽는 편이에요. 여름엔 그런 책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너무 즐겁죠.

김: 저는 많이 가져가서 조금 읽고 오는 스타일이에요. 어떤 순간에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이 떠올랐는데 그게 없으면 너무 속상해요. 그래서 어딜 가든 분야별 장르별로 다 가지고 다녀요. 작년에 런던으로 3개월간 연수를 갔는데, 책을 여섯 박스 가져갔어요. 그 책 부치는 비용이 제 비행기 티켓 값만큼 들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본 책은 20권도 안 돼요. 전자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요. 멀리 갈 때는 그게 필요할 것 같아요.

사회: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요. 여름에 정말 책이 잘 팔리나요?

최: 우리 회사는 경제경영서나 실용서 중심인데, 경제경영서는 여름이 비수기예요. 휴가 갔다 와서 이제 일 좀 해볼까 그럴 때, 그러니까 8월 중순이 넘어가야 판매량이 서서히 회복돼요. 여름에는 소설이 워낙 강세잖아요.

임: 여름에 책이 많이 나오고, 많이 사는 것 같아요.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다른 시기에는 여러 책이 몰리면 경쟁구도가 되는데 여름시장에는 같이 나와서 더 풍성해지는 듯 해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긴 짬이 나는 게 여름이니까, 그때 책을 읽자는 생각이 있는 것 같고.

김: 인문교양 쪽은 사시사철 불황이긴 해요. 그래도 봄가을이 워낙 불황이어서 그나마 여름이 낫죠. 아무래도 학생들 방학하고 직장인들 휴가라서 여유시간이 나고 그러니까. 출판사에서는 여름을 놓치면 안 되니까 여름에 중요한 책을 내는 경향이 있어요. 여름에 좋은 책이 나오니까 사람들도 더 많이 사게 되고.

임: 우리도 연초에 출판계획을 잡을 때, 올 여름에 뭘 낼 건지 먼저 정해요.

최: 저희는 그렇지 않아요. 여름용 기획이라고 하면 다이어트나 운동 관련 책 정도가 있을까. CEO(최고경영자)들이 여름휴가 맞아 이런저런 책들을 추천하는데, 그런 책들은 팔리니까 광고에 신경을 쓰긴 하죠.

김: 인문 쪽에서는 대중적인 책을 여름에 내요. 여름시장에 내놓는 책은 좀 더 가볍고 독자층이 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딱딱하고 공부해야 되는 책은 여름을 피해서 내게 되죠.

사회: 가볍고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될지, 아니면 좀 묵직하고 진지한 책을 읽어야 될지, 매번 여름휴가에 고민하는 문제인데.

김: 여름이라고 어떤 장르가 특별히 당기진 않던데.

임: 저도 가볍고 무겁고 별로 안 따져요. 분명한 건 1년 중 여름에 가장 많이 읽는다는 거예요. 미뤄둔 책들도 읽게 되고, 호흡이 좀 긴 책도 읽을 수 있게 돼요. 어려운 책은 끊어서 읽으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휴가 때는 죽 읽을 수 있으니까 좋죠. 사실 어렵고 무거운 책은 휴가 때가 아니면 읽기 어려워요.

최: 저는 어려운 책은 휴가지에서 안 읽어요. 가서 시간이 남으면 뭘 하고 놀까, 그래서 책을 챙기는 거니까 에세이류를 많이 들고 가게 돼요. 소설은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도 읽을 수 있으니까 빼고.

임: 외국에 가보면 해변에서 책 읽는 풍경을 많이 보잖아요? 책을 본다기보다 책과 노는 것 같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책을 읽으면 뭔가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듯해요. 여름휴가 때 책 읽는 게 공부가 아니라 휴식이 됐으면 좋겠어요.

최: 맞아요. 쉬려고 마음먹었으면 책도 휴식의 도구가 돼야죠.

김: 저는 휴양지에서 두꺼운 역사책 꺼내 읽는 외국인들 보면 부러워져요. 그렇게 두꺼운 인문서를 어떻게 그처럼 편하게 읽는지 정말 부러워요. 외국 책 중에는 분량도 많고 알맹이도 알차지만 재미있는 게 많아요. 그래서 굳이 공부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도 쉬면서 읽을 수 있는 거죠. 우리도 그런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임: 저는 가벼운 책이 뭔지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되는 책인데도 너무 어렵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정말 유치하다고 해야 할 만한 그런 책이라야 가볍다는 건지.

김: 이건 정말 공부하면서 읽어야 되는 책이야, 이러면서 만든 책은 1년 내내 안 나가요. 여름에 팔리는 인문서는 대부분 대중적인 책이죠. 우리 입장에서 말하자면, 공부하라고 만든 책이 아니라 팔려고 만든 책.

사회: 여름휴가가 다가오면 여기저기서 추천도서를 발표합니다.

임: 추천도서가 너무 천편일률적이에요. 목록은 많은데 거의 다 똑같아요. 차라리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예를 들면 '재미있는 책 추천도서' 이런 거는 못 봤어요. 추리소설이 추천도서 목록에 들어가는 것도 못 봤고요. 어떤 장르가 추천도서 목록에서 뭉텅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 우리는 추천도서를 마케팅에 종종 활용하는 편이에요. 삼성경제연구소(SERI) 추천도서에 들어간 책들은 많이 팔려요. 여러 기관에서 추천도서를 발표하는데 사실 다 비슷비슷해요. 대부분 상반기 베스트셀러들이죠.

김: 이중적인데요, 추천도서로 뽑아주면 고맙죠. 특히 인문서는 너무 안 팔리니까 추천도서가 도움이 돼요. 그런데 다양성이 있으면 좋겠어요. 문화체육관광부나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권위를 빌려서 발표되는 것 말고 예를 들면, 열성 독자들이 만드는 추천도서, 이런 게 있으면 좋겠어요.

최: 맞아요. 추천도서 목록이 다양해져야 해요.

임: 아예 주관적으로 추천하면 어떨까요?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MD(상품기획자)들은 주관적이고 독특한 시각으로 책을 추천하는데, 그 책을 고른 이유를 반드시 밝혀요. 저는 아무리 주관적이라도 그 추천에 타당한 설명만 있으면 그게 더 바람직하다고 봐요.

김: 추천도서를 뽑았으면, 약간이라도 좋으니까 추천한 이유를 밝혀주면 좋겠어요.

임: 외국에서는 추천도서 발표하면 반드시 그 책에 대한 서평이 붙어요. 우리는 목록만 찍 발표되죠. 단 한 줄씩이라도 왜 좋은지 이유를 밝혀야 추천도서로 기능을 할 것 같은데.

최: 책을 많이 안 읽기 때문에 추천도서가 힘을 발휘하는 것 같기도 해요. 1년에 책 몇 권 안 읽는데, 휴가 때 한 권 읽으려니까 이왕이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을 읽어야지, 뭐 이런 심리가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김: 추천도서 리스트를 보고 어떤 책을 사거나 읽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사기 전에 서평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실제로 읽어본 사람들이 쓰는 글이니까 영향을 받게 돼요.

최: 저는 주위에 책 많이 보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기도 해요. 몇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겹치는 책이 있어요. 그런 책이 훨씬 신뢰할만해요.

임: 파워 블로거들이 올려놓는 추천도서들도 꽤 인기가 있어요.

사회: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독서의 추억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몇 해 전 경주에서 4박5일을 혼자 보냈는데, 낮에는 걷고 밤에는 독서를 했어요. 지극히 단순한 휴가였지만 참 좋았어요.

최: 재작년에 2박3일간 템플스테이 갔는데, 생활이 아주 단조로워요. 거기서 '장미의 부름'을 봤어요. 식물에 대한 얘기인데, 너무 감동받아서 인생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년에 거제도 휴양림에 가서는 단식하면서 '미식견문록'을 읽었어요. 단식을 하면 감각이 200배쯤 살아나요. 촉각이며 들리는 것이. 책도 훨씬 깊게 읽혀지더라고요.

김: 단식하면서 미식에 대한 책을 읽다니, 취향이 좀 독특한데요. 저는 작년 런던에서 연수할 때 처음으로 재독(再讀)을 해봤어요. 본래 재독을 거의 안 하는데,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한 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거기서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같은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책과 에릭 홉스봄의 책들을 다시 읽었어요. 10년 전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들인데. 재독을 하니까 굉장히 훌륭한 독서가가 된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좋은 책을 다시 읽는 게 절대 시간낭비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처음 읽을 때보다 더 풍부하게 읽는다는 느낌,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과 느낌까지 되살려가며 읽는다는 느낌, 그러니까 책을 두 겹으로 읽는 느낌이었어요.

임: 저는 작년 겨울휴가 때, 노트에 정리하면서 소설을 읽었어요. 스토리 구성이나 인물의 캐릭터, 작가의 이력 등을 공부하면서 노트에 적고, 좋은 문장은 타이핑해서 컴퓨터에 저장했어요. 그러니까 뭔가 책을 제대로 읽었다, 진짜 그 책을 읽었다, 이젠 그 책을 누구에게 줘도 아쉽지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은 책을 만나면 노트에 정리하는 버릇이 들었어요.

사회: 빼놓을 수 없겠죠? 여름휴가에 읽어볼만한 책.

임: 여름하면 호러소설이 떠오르고, 호러소설이라면 스티븐 킹이 먼저 떠올라요. 스티븐 킹 소설은 오싹하면서도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뭔가가 있죠. 최: 저도 스티븐 킹을 읽고 싶은데, 먼저 뭘 읽어야 되나요?

임: '그것(It)'이 좋죠. 단편집도 참 좋아요. 하나를 더한다면 긴다이치 고스케. 일본의 국민탐정이에요. 영국에 셜록 홈즈가 있다면 일본에는 긴다이치 고스케가 있어요. 이 인물 때문에 현재 일본 미스터리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긴다이치 시리즈가 국내에도 여러 권 나와 있어요. 일본에서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권마다 거의 다 드라마로 만들어졌어요. 굉장히 고전적이면서도 재미가 풍부해요.

김: 오늘 '간송 전형필'을 들고 왔는데, 정말 쉽게 썼고 잘 읽히더라고요. 또 하나는 강신주 선생님 책인데, 시에 관한 책이에요.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사실 시는 잘 안 읽게 되잖아요? 신경림('시인을 찾아서') 고종석('모국어의 속살') 유종호 ('시 읽기의 방법') 선생님처럼 누군가 해석을 해줘야 읽게 되더라고요. 손종섭('손끝에 남은 향기')이라는 분도 계시는데, 되게 연세가 많은 분이시고 한시를 잘 번역하세요. 그분의 한시 해설도 재미있어요.

최: 자기계발서라면 질색을 하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카림 라시드의 '나를 디자인하다'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책 자체가 매우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데다 메시지가 솔직하면서도 명료해요. 카림 라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 디자이너인데, 이 책은 생활, 사랑, 일, 휴식 등 삶을 디자인하는 방법에 대한 얘기예요. 저는 여행서를 즐겨 읽는데 이혜필이 쓴 '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란 책이 참 좋더라고요. 글이 굉장히 우아해요.

사회: 벌써 2시간이 넘었네요. 이만 하죠. 얘기 즐거웠어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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