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들, 방과 후 PC방 가보셨나요?"

2008. 11. 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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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PC방에서 폭력성 짙은 게임에 빠져들고 있다. 게임을 하는 도중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사이버상의 폭력행위를 현실에서 그대로 따라하기도 한다. 성인들만 가입할 수 있는 게임사이트에 부모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13일 오후 3시께 서울 서대문구 모 PC방. 한 눈에 봐도 초등학생들로 보이는 10여명이 전쟁을 소재로 한 S, P게임(RPG 게임 일부 포함)등에 빠져있다. 이들 게임은 15세 이상만 이용이 가능한 게임으로 초등학생들은 사실상 가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한 뒤 게임에 접속했다. 부모나 형, 누나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가입했던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흡연구역에 자리를 잡아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 옆에는 20, 30대 성인들이 쉴새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간접흡연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PC방 직원은 제재는 전혀 없다. 심지어 어린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재떨이까지 갖다놓기도 했다.

이 직원은 "흡연구역에 앉아 있길래 어린이인줄 모르고 재털이를 줬다"면서 "여기는 원래 학생들이 앉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이후 취재가 계속되자 마지못해 게임을 하고 있던 초등학생을 금연구역으로 보냈다.

2시간째 게임을 하고 있던 윤모군(11.초등 5년)은 "나 말고도 반 친구들 거의 다 엄마나 아빠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했다"라며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엄마도 뭐라고 안한다"고 말했다.

정모군(10.초등 4년) "원래는 지금 영어학원에 가는 시간이다"면서 "(주변의 친구를 가르키며)쟤도 안갔다. 쟤는 학원비도 몰래 썼다"고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렇다보니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 세계 1위인 우리나라는 게임 중독도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국내 초등학생 약 10%는 게임중독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작성한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놀이방법'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 중 66.6%가 방과 후 인터넷 등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TV 및 비디오 시청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방과 후 게임을 한다는 학생 중 33.9%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오후 5시가 지나자 PC방은 어린이 놀이터를 방불케 했다. PC방 손님 중 20여명은 초등학생들이 차지했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자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야 죽을래, XXX야", "XX새끼야"등 욕설이 서슴없이 오고 갔다. 도저히 초등학생이 하는 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육두문자까지 PC방에 퍼졌다. 그러나 누구하나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다.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한모씨(26.여)는 "요즘 PC방에서는 초등학생끼리 욕하는 건 다반사"라면서 "예전에 한번 너무 시끄러워서 '조용히 해라'고 충고를 줬는데, 듣고 있던 초등학생이 'X발'하고 욕을 하며 나가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모른척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박모씨(38.여)는 "아침 일찍 직장에 출근해야 하다보니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다"면서 "퇴근 후나 휴일에 애들과 가끔 얘기를 나누긴 하는데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며칠전에는 아이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혼잣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욕을 하는 걸 보고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요즘 초등학생들이 게임에 많은 시간을 뺏기고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요인도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게임회사 조차 어린이들이 부모의 주민번호 등을 도용한다고 해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 서상준기자 ssjun@khan.co.kr > - 재취업·전직지원 무료 서비스 가기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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