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까지 딸린' 여자라서 더 불행해요

2009. 10. 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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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유경 기자]"유경, 내가 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는지 알아?13년 전에 엄마한테 그 이유를 얘기했었어. 40대가 됐을 때, 식탁에 둘러앉은 남편과 아이들을 하나씩 가리키면서, "I hate you, I hate you, I hate you!!!"(너도, 너도, 너도 다 미워!) 이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공부를 하겠다고. 내 커리어를 쌓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결국 작년에 12년 만에 박사를 땄잖아. 그 때 내가 45살이었거든. 근데, 지금의 나를 봐. 정말, 인생이…"

나와 타라는 같이 웃었다. 너무 허탈했다. [여자의 고민] 12년 만에 박사가 된 친구 "내 인생이 웃겨"

타라와 내 친구들.

ⓒ 이유경

타라는 현재 우울증 치료를 다시 받고 있다. 첫 번째는 첫 아이 출산에 따른 산후우울증이 발전한 경우였고, 이번에는 대학 강사일과 육아, 집안일 등 때문에 재발한 것이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거식증을 동반한 우울증이다.

의사가 그랬단다. 한 번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은 그 이후에도 계속 조심해야 한다고. 물론 타라는 조심했다. 그런데 사는 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2년 전에는 유방암 치료를 받아야 했고, 둘째도 출산했다.

한국으로 치면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는 타라는 풀타임 교수직을 얻는 게 목표다. 같은 과에서 풀타임 조교수로 있는 남편은 한 학기에 두 과목만을 가르칠 뿐이지만 4과목을 가르치는 타라보다 2배도 넘는 월급을 받는다.

1996년, 남편이 석사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 타라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5년 후 남편은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타라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에게 따뜻한 저녁을 먹여야 했고,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의 새 직장과 그녀의 학교는 비행기로도 7시간이나 떨어져 있었다.

남편의 '차례'가 끝나면 타라는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남편의 차례가 끝나고도 6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녀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마저도 학교에서 그녀의 논문심사를 더는 미뤄줄 수 없다고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타라의 남편은 과묵하지만 젠틀한 사람이다.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GSS의 조사결과. 1972년 이래로 여성은 점점 덜 행복해졌다. 흑인 여성들은 1972년보다는 약간 더 행복해졌는데, 흑인 남성과 비교하면 덜 행복하다.

ⓒ GSS

[연구결과] "여자들은 지난 40년간 점점 더 불행해졌다"

올해 5월,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에서는 '점점 더 줄어드는 여성 행복의 모순'(The Paradox of Declining Female Happiness)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왜 '모순'이라고 했을까.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삶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표들, 가령 소득, 교육수준, 직업의 기회 등이 눈에 띄게 향상됐음에도 지난 40여 년 동안 여성들은 끊임없이 불행해져 왔기 때문이란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객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각각의 지표가 향상되었음에도, 여성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은 하강 일변도였으며, 남성 역시 불행하다고 느끼는 부분보다 여성의 불행정도가 훨씬 더 깊었다.

여성의 불행은 나이와 국적, 인종에 상관없이, 또 자녀/결혼/이혼 경력의 유무나 직업의 종류에도 관계없이 지난 30~40년간 계속 심해졌다.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혹시 조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와튼 스쿨의 이번 보고서는 모니터링 더 퓨처, 버지니아 슬림 등 총 6개 기관의 연구결과를 총망라한 것으로, 이는 지난 40여 년간 선진국 130만 명의 남녀를 조사한 통계 결과를 종합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의 조사결과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아직 성년이 되기 전의 어린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점점 더 많이, 덜 행복하다고 대답해왔다는 점이다. 왜 여자들은 성인이 되기 전부터 남자보다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

GSS의 조사결과(위)와 그 수치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아래).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성보다 남성의 행복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

ⓒ GSS/허핑턴포스트

[왜 그럴까] 늘 징징대 왔기에?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 뉴욕타임스 > 의 모린 다우드가 왜 그럴까 하고 친구(남자)에게 물었더니 그는 "(여자들은) 언제나 징징대 왔잖아"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너희들(여성)은 감정이 있어서 그래"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초중고등학생 대상 조사를 진행한 '모니터링 더 퓨처 보고서'에서는 초중고 여학생들에게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가를 14가지 영역으로 나눠서 물었다. 그러자 이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달리 무려 13개의 영역이 만족되어야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 대답했고, 각각에 대해 느끼는 중요성도 남학생의 그것에 비해 강도가 훨씬 높았다.

여학생들은 벌써부터 집안일은 물론 직장에서의 성공, 안정적 직업 확보, 사회에 대한 공헌, 지역사회에서 리더십 발휘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남학생보다 더)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자신만을 위해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것을 제일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했다.

모린 다우드의 말을 들어보자."여성들은 남성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더 많은 요구와 스트레스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됐다. 이미 스스로를 외모, 자녀, 남편, 정원 가꾸기, 저녁 파티 등으로 재단했던 여성들은 이제 대학원 가기, 직장, 업무 마감일, 양쪽 일(집안 일+바깥일)을 다 잘하는 결혼 생활 에도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물론 다 잘하려고 들지 말고,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페미니즘이 탄생했을 때 그 모토가 무엇이었나. 여성에겐 선택권이 있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과 자율권이 있다는 것 아니었나. 그러나 과연 어떤 식으로 선택할 것인가. 권한은 있으나 선택의 여지가 다양하지 않다. 선택한 결과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또 얼마나 매서운지. 엄마의 역할을 버리고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여성을 '온전한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얼마나 될까.(미국에서는 특히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녀와 관련해서 와튼 스쿨의 벳시 스티븐슨이 말한 다음과 같은 분석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불편한 진실] 아이 없는 여성이 아이 있는 여성보다 더 행복하다

"조사 전반에 걸쳐 여성의 인생에서 그녀를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부자든 가난하든, 아이를 늦게 얻었든 일찍 얻었든 이것은 언제나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이가 없었더라면 또는 아이가 내 행복을 망쳐버렸다고 느낀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

허핑턴 포스트에 실린 마커스 버킹햄의 글.

ⓒ 허핑턴포스트 화면캡처

갤럽에서 오랜 기간 수석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미국에서 여성문제 전문가로 활동 중인 마커스 버킹햄도 그의 저서에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언제 어디서든 육아문제에 대한 연구결과는 항상 같다. 아이가 없는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아이가 있는 여성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마치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그릇된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조사는 수많은 나라에서 수없이 거듭돼왔고, 그 결과는 한결같았다. 아이가 스트레스 덩어리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는 덧붙여서 "아이들도 이것을 아는 모양이다. 3~12학년의 아이들 1000명과 그들의 엄마에게 각각 '엄마가 내게 하는 일들 중 변했으면 하는 제일 첫 번째는?'과 '아이가 엄마에게 무엇을 바랄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응답한 엄마의 56%는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실제 그것을 희망한 아이들은 단지 10%에 불과했고, 34%의 아이들은 '엄마가 덜 스트레스 받고 덜 피곤했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아이들도 엄마의 기분을 잘 아는 것이다.

1970년대 이래 매스 미디어에 투영된 여성의 이미지를 면밀히 조사한 < 엄마 신화, 모성애의 이상화와 이것이 모든 여성에게 준 피해 > (The Mommy Myth, The Idealization of Motherhood and How It Has Undermined All Women)의 저자들은 현대 여성들이 이중고를 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과거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분류됐던 영역에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게 됐지만,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것들로부터 여성들이 해방된 것은 아니란 것이다.

해방은커녕 현대 자본의 마케팅과 그와 연계된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여성의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 아무리 잘 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렸다. (마사 스튜어트를 떠올려보자. 솔직히 그녀처럼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주부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저자들은 특히 1980년 이후 등장한 '포스트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들의 '이중고'를 설명한다. 즉, "날씬한 몸매 유지와 패션 감각 보유, 남편에 대한 공경심과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및 자기희생이 수반되는 한" 여성들은 "집밖에서는 물론 과거에 남성에게조차 제한됐던 영역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효과로 '전폭적'으로 늘어난 여성들의 선택권. 그러나 여기에 천성적으로 출산과 성공적인 자녀 양육에 최우선을 둔다는 '모성애'가 주입됨으로써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여성들은 "엄마 노릇을 잘 할 수 있어야" 성공한 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CEO도 할 수 있고, 좋은 것 다 할 수 있지만, 아이를 위해 테마별 생일 파티를 열어줄 수 없다면, 당신은 좋은 엄마가 아니다! 실패한 엄마"가 된다는 것.

모니터링 더 퓨처의 조사결과(위)와 이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아래). 남학생의 행복과 비교해 봤을 때, 여학생의 생복정도는 1985년 이후로 점점 더 불행하다고 나타났다. 이미 성인이 되기 전부터 여성은 남성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됐다.

ⓒ GSS/허핑턴포스트

[그래서 뭐?] 타라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나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만족도가 이뤄져야 여성 스스로가 행복감을 느끼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채워야 할 만족감의 종류가 훨씬 더 많고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을 반영하는 것이 이번의 연구결과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이 가장 많이 앓는 병은 심장질환이다. 그 다음은 우울증.(남성의 경우 우울증은 10번째) 그 결과 불안증이나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는 여성이 같은 경우의 남성 보다 두 배나 더 많다.

이번 여름 타라도 다시 그런 여성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박사 학위를 드디어 따서 강의를 나가게 됐지만, 그녀가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미국 전역의 여러 대학으로 이력서를 돌리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풀타임 교수직을 찾기 위해서다. 남편과 떨어지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결국 그런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라가 풀타임 교수가 되길 기도한다. 그것이 그녀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적어도 앞으로 그녀의 선택을 덜 복잡하게 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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