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구한말 조선을 바라본 '긍정의눈']독일기자 지그프리트 겐테

입력 2011. 8. 20. 03:06 수정 2011. 8. 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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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편견 일일이 반박.. "한국인은 호탕­관대"

[동아일보]

지그프리트 겐테가 도착했던 제물포항의 구한말 풍경. 그는 금강산, 강원도 금광, 제주도 등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한국에 대한 악의적 편견을 하나하나 뒤집어 놓으려 애썼다. 동아일보 DB

독일 기자 지그프리트 겐테는 1901년 6월, 중국 북청사변을 취재한 뒤 한국을 찾았다. 제물포 부둣가 짐꾼들이 그의 짐을 사방팔방으로 집어 던지며 혼을 빼놓았다. 그러나 겐테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선원이나 하층민이어도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겐테는 어떤 여행자보다도 '진짜' 한국인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컸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직접 한국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개항 이전 해외에 알려진 한국에 대한 책 중 대표적인 것은 '하멜표류기'(1668)와 '한국교회사서론'(1874)이다. 이 책들은 한국을 '더럽고 미개하며, 거짓말을 하고 풍속이 부패한 나라'로 묘사해 한국을 찾는 여행자에게 그릇된 편견을 심어줬다.

○ 직접 소통하며 바뀌는 생각

여행 중 '한국교회사서론'을 읽은 겐테는 "이 책은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달레 신부가 파리에 앉아 선교사들이 보내 준 편지만을 모아 엮은 것에 불과하다"며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 책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겐테는 우연히 유럽의 박물관에 보낼 식물을 채집하던 프랑스 선교사를 만났다. 이 선교사는 한국의 지리도 잘 몰랐고 한국말은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프랑스에 보낼 '지역과 주민, 도덕과 풍습'이라는 한국에 관한 완성된 보고서를 들고 있었다. 가뜩이나 달레 신부의 책을 의심하고 있던 겐테는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이런 사람들은 한국인과 제대로 의사소통한 적도 없으면서 주제넘게 책을 써서 세상에 내놓는다. 한국인에 대한 편파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일방적인 글을 주워 모은 자료들을 말이다… 그의 보고를 여과 없이 믿을까봐 두렵다."

여행객들이 한국에 대해 피상적이고 악의적인 편견을 생산해내는 것을 겐테만큼 비판한 사람도 없다. 그의 책 '신선한 나라 한국, 1901'(책과함께·2007)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인이 더럽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독일 노동자도 더럽다'고 했다. 광산을 운영하는 독일인 관리자들은 한국인이 일을 잘한다며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한국이 불결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양 있는 한국인들은 여행 중에도 결코 땅에 실례하지 않고 이동식 변기를 들고 다녔으며, 시골 부엌에는 반짝거리는 놋쇠 식기들이 소박하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고 반박했다. 1892년 한국을 찾은 영국 정치인 조지 커즌은 금강산을 여행한 후 한국의 사찰은 유흥지의 성격이 짙고 시끄럽다고 썼다. (사실 그는 230년 전 하멜표류기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금강산을 여행한 겐테는 한국인은 자연 예찬론자이며 경치를 즐기는 것은 그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았다.

○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다

분명히 겐테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했다. 그는 한국의 풍물도 긍정적인 눈으로 관찰했다. 짚신의 장점을 언급한 여행자는 겐테가 유일할 것이다. 그는 짚신 바닥이 단단해서 한국의 뾰족한 돌길이나 바위를 걷는 데 독일산 가죽신보다 유용했다고 보았다. 공기는 춥고 바닥은 너무 뜨거워서 거의 모든 여행자들이 불편했다고 말한 온돌은 한국 민족만의 난방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발명한 지게는 등 근육의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운반수단이라고도 했다.

한국인이 선량하다는 말은 다른 여행기에도 많았다. 그러나 다양한 한국인을 만나 보지 않는 한 한국인의 낙천성을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한반도를 종횡무진한 후 겐테는 이렇게 썼다. "한국인은 원래 매우 선량하고 관대하며 손님을 후대하는 민족이다. 그들은 자유분방하고 쾌활하며 때로는 술기운에 겨워 호탕하게 즐기는 편이다."

겐테는 한국에 와서 노스탤지어를 느꼈다. 산업화의 소음이 없는 목가적인 마을을 예찬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독일 광산이 있는 강원도 당고개를 찾아가서 그는 한국의 외딴 시골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와 같은 금광도시가 되어 빨리 번창하길 바랐다. 그리고 독일이 좀 더 일찍 한국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한국에서 평화로운 식민 정책을 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겐테는 제국·식민주의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둔감했던 듯하다. 당시 뒤늦게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독일은 영국, 프랑스보다 식민지가 적다는 사실이 불만이었다. 그는 한국에 대해 편견을 걷어 내고 한국인의 긍정적인 기질을 포착하는 데 열정적이었지만 독일인이라는 민족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박수영 작가·스웨덴 웁살라대 역사학 석사 feen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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