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잃은 문화재 복원] ④ '억지 고색'에 멍드는 문화재

2011. 4. 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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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빙자한 훼손… 화학안료 마구잡이 섞어문양 곳곳 흰가루 드러나손놓은 문화재청 40년간 안료연구는 전무… 보수후 후속관리도 안해

[세계일보]

한국 미술사학계 원로인 강우방(70·전 이화여대 교수)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최근 단청 문양 연구차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전북 고창 선운사를 방문했다가 경악했다. 선운사 최고(最古) 암자인 참당암 대웅전(보물 803호)의 단청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삼국시대인 581년 세워진 참당암은 18세기 중건 때 고려시대 부재를 많이 활용해 그 시대 건축물을 비교하게 해주는 중요 문화재다.

현대식 화학안료로 '억지 고색(古色)'의 느낌을 내려다가 소중한 우리 건축문화재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박락(剝落)현상이 생겨 색이 목재에서 벗겨지거나 백화(白化)현상으로 흰색 얼룩이 떠올라 단청을 망치고 있다. 여러 색의 화학안료를 섞어 만드는 이른바 '고색단청'이 문제로 지적된다.

목재 바탕색 드러나고…칠 벗겨지고

27일 문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은 2005년 건물이 기울어져 전면 보수했다. 당시 단청도 천장의 학 문양 등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 전부 새로 칠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단청이 벗겨진 채 목재 바탕색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천장에는 단청 안료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목재에 붙어 있고 곳곳에 흰색 가루가 하얗게 드러나 있다.

국보 55호인 법주사 팔상전(553년 건립) 단청에서도 문양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 방문객이라면 단청이 수백년 된 것이라서 그러려니 생각하기 십상이다. 팔상전은 1969년 해체 복원공사를 하면서 단청도 새로 했다.

경북 경산의 환성사 대웅전(835년 건립·보물 562호) 단청에서는 옛색을 간직한 곳과 하얀 가루가 뜬 목재가 뚜렷이 구분된다. 1997년 일부 목재를 교체하고 해당 부위에 단청을 새로 올렸다가 탈이 났다.

경상북도 경산에 위치한 보물 제562호 환성사 대웅전(835년 건립) 내부 단청 모습. 곳곳이 분을 칠한 듯 하얗게 변색돼 있다.

고색 낸다면서 여러 안료 뒤섞어

본디 고색은 천연안료 석채에 아교를 교착제로 개어서 한 단청에서 세월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나는 깊은 빛깔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천연재료는 화학재료로 급속히 바뀌었다. 단일 안료로는 고색이 나지 않자 안료에 여러 색을 넣어 인위적으로 고색을 내고 있다.

문화재청의 시방서에도 고색단청이 '신색 안료를 퇴색된 색으로 만들어 단청하는 것'이라고 돼 있다. 고건축물, 수리·보수에 새 부재를 많이 쓴 건축물 등에 적용된다. 여러 색을 섞는 것이다 보니 고색안료 조채 방법을 표준화할 수 없다. 시방서는 주변 색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칙만 두고 있다.

고색단청을 하는 방법은 문화재청이 정한 13가지 기본색에 추가로 다른 색의 안료를 최대 6가지까지 섞거나 굴이나 조개 껍데기를 빻아 만든 호분 또는 먹물을 섞어 채도를 떨어뜨린다. 10여년 전에는 단청을 마친 뒤 그 위에 황토물이나 먹물을 덧칠하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예스러움을 냈다.

문화재 복원전문가인 이상현(42)씨는 "화학물질을 섞으면 당연히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데, 상극인 물질끼리 만나면 서로 밀어내 결국 박락현상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강우방 전 관장은 "단청의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목재 보호인데, 고색단청은 거기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화재에 대비해 불이 쉽게 번지지 않도록 한다면서 방염제를 칠한 문화재도 있는데, 방염제와 안료가 반응해서 하얗게 변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충청북도 보은에 위치한 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553년 건립) 내부 단청의 문양 전반이 하얗게 변해 있다.

안료 등에 관한 연구는 걸음마 수준

문화재청은 왜 고색단청에 관한 세부지침을 만들지 않았을까. 기초적인 연구조차 해본 적이 없어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1972년 기본색 13가지와 접착제를 확정한 이후 안료 연구를 한 적이 없다"면서 "안료를 섞어 쓰려면 적정성을 연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문화재 당국의 검증 시스템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모 사찰 관계자는 "문제가 있어 보수공사 예산을 신청하면 문화재청이 나와 심사를 하긴 하는데, 이후 후속관리를 거의 안 한다"면서 "솔직히 우리도 전문적인 부분에서는 문외한"이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단청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된 게 20년이 채 안 되며 그나마 문양 연구에 치우쳐 있다. 안료와 재료 등 보존과학적 접근은 걸음마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전직 문화재청장은 "우리나라 경제 수준이 어느 정도 되면서 문화재 복원이 활발해졌으나 사실 복원을 빙자한 훼손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탄식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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