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신묘년..영원한 꾀보 토끼의 해

2010. 12. 22.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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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정령..생장ㆍ번창ㆍ풍요 상징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려 무신정권 시대 문단의 제1인자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당대를 대표하는 술꾼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시에 '묘음(卯飮)'이란 제목을 단 작품이 있다.

"오늘 아침 광약을 마셨더니(今朝飮狂藥) / 머리가 지끈지끈(頗覺頭岑岑) / 아직 박절하게 끊기 힘드니(尙難剛斷却) / 쓸쓸한 마음 달래려하네(輒欲緩愁心)"

여기서 보이는 광약, 즉, 사람을 미치게 하는 약이란 바로 술이다. 그가 이 시에 제목으로 붙인 묘음(卯飮)이란 묘시(卯時)에 마신 술이라는 뜻이다. 묘시란 오전 5~7시를 말한다.

결국, 어젯저녁에 마신 걸로 부족해 다시 아침에 해장술을 했다는 얘긴데, 그 때문에 고생하는 이규보의 모습이 과음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선할법하다.

토끼는 십이지 띠동물 중에서는 네 번째이며 방향은 정동(正東)이고, 달로는 음력 2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기도 하다. 표기 한자는 띠동물일 때는 묘(卯)지만, 실제 토끼를 지칭할 때는 토(兎)를 흔히 쓴다.

새해 2011년은 간지로는 신묘년(辛卯年)이니 토끼띠 세상이다.(물론 정식 토끼해는 설인 2월3일 시작한다) 우리는 토끼에서 어떤 모습을 그려왔을까.

토끼 하면 대뜸 우리는 '간'(肝)을 떠올린다. 백제의 침략으로 조국 신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고구려의 도움을 빌리려 혈혈단신 당대의 실력자 연개소문을 만나러 갔다가 죽을 고비에 처한 김춘추를 구원한 것이 바로 토끼 간 이야기였다.

자라(혹은 거북)의 감언이설에 속아 용왕 앞으로 끌려갔다가 간을 내 놓으라는 협박에 "내 간은 육지에 두고 왔다"는 기지를 발휘해 토끼가 위기를 탈출했듯이 김춘추 또한 "너희 신라가 우리에게 빼앗아간 땅을 내놓지 않으면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연개소문의 협박에 "내가 신라로 돌아가 왕을 설득해 땅을 돌려주겠노라"고 하고는 풀려나 냅다 신라 땅으로 '토끼'고 만 것이다.

이처럼 토끼는 약자의 대표주자이기는 하지만, 늘 '꾀보'라는 이미지를 달고 다닌다. 얼마나 꾀보였으면 토끼라는 명사 자체에서 '토끼다'는 동사가 발생했을까?

토끼는 달의 정령이기도 했다. 달 속 계수나무 밑에서 옥토끼가 절구에 불사약을 찧고 있다는 신화는 그 연원이 너무나 깊어, 이미 중국에서는 진한(秦漢)시대 이전에도 보인다. 특히 한대(漢代)에 접어들어서는 서쪽을 관장하는 여신인 서왕모(西王母) 신앙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이 시대 각종 고고미술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여파가 중국의 영향력이 특히 짙은 지금의 평양 일대 이른바 낙랑 지역에도 미쳐 왕근묘(王近墓)라고도 하는 평양 석암리 219호분 석실 출토 칠전통(漆箭筒. 화살통)에도 달 속의 토끼가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 토끼는 달(月)과 늘 연동했다. 그 반대편 해(陽)에는 삼족오(三足烏)가 들어앉는다.

토끼를 내세운 달, 삼족오를 앉힌 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가장 흔히 만나는 소재다. 이 중 토끼는 두꺼비, 계수나무와 조합한다.

집안지역 장천 1호분(5세기 후반)에서는 현실(玄室) 천장 고임돌 4단 서쪽에 달에서 약 찧는 옥토끼가 두꺼비와 함께 발견되며, 평양 지역 덕화리 1ㆍ2호분과 개마총, 진파리 1ㆍ4호분, 내리 1호분 벽화에도 옥토끼가 등장한다.

덕화리 1호분(5세기 말~6세기 초)에는 약 절구가 없는 옥토끼와 엎드린 두꺼비를 표현했으며, 개마총(6세기 전반)에도 비슷한 그림이 발견된다. 신라 토우 중에서도 토끼가 보이며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에도 토끼는 등장 빈도가 가장 많은 동물 중 하나로 자리 잡는다.

조선시대 민화에서는 다정하고 화목한 관계를 상징하는 두 마리 토끼가 쌍으로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배경에는 대체로 계수나무와 달이 보인다.

동아시아 음양설에 의하면 달은 해에 견주어 음(陰)이다. 이로 인해 달이 활동 무대인 토끼 또한 음의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인지 토끼는 생장과 번창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다. 토끼가 한 번에 새끼를 많으면 스무 마리까지 낳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끼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새해 첫 토끼날인 상묘일(上卯日)에는 "남의 식구를 집에 들이지 않고 나무로 만든 그릇도 들이지 않는다. 특히 여자가 남의 집에 먼저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고 했는데, 이런 풍습의 여파인지 지금도 경기 일부 지방에서는 토끼는 방정맞은 경망한 짐승이라 해서 이날은 이른 아침은 물론 해가 뜬 뒤에도 여자는 바깥출입을 엄금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토끼가 여타 띠동물과 비교해 우리와 가장 친숙한 동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것이 생장ㆍ번창ㆍ풍요를 가져온다 하므로 토끼해인 새해에는 모두가 더욱 번창하길 빌어본다. (도움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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