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젊은이, 광고 천재로 인생역전

2010. 8. 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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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곽진성 기자]다니던 대학의 과 수석 졸업자면서도,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로 인생이 발목 잡혔던 젊은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제석, 꿈 많고 열정 많은 젊은이였지만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 시각디자인학과에서 4.5 만점에 4.47이란 경이적인 평점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불러주는 기업 하나 없었다. 수십 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몽땅 떨어졌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루저였다. 대학 생활 내내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작은 상 한번 타지 못했다. 지방대생이기 때문일까? 재능이 없었기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의 광고 재능은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 광고천재 이제석 > 표지

ⓒ 학고재

그렇기에 학벌도 수상 경력도 없었다. 남들처럼, 잘나가는 '스펙'을 갖추지 못한 그는 결국 취업도 제대로 못했다. 대학 졸업 후, 동네 간판집을 하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남들은 비웃을지언정,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감을 느꼈다. 자신이 만든 간판으로 동네를 조금씩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를 확 돌게 만든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광고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이제석의 자존심을 뭉갠 한 아저씨의 막말 때문이었다.

그날도 단골 국밥집에서 "간판 함 바꿔 보는 게 어떻겠능교? 장사가 잘 될 긴데?"하며 영업을 하던 중이었다. 대구에서 꽤 유명한 갈비집 간판을 만든 이력까지 들먹이면서 번듯한 기획서까지 보여주던 참이었다. 그때 옆에서 국밥을 먹던 동네 찌라시 명합집 아저씨가 한마디 툭 던지며 끼어들었다. "뭐 할라꼬 그래 큰돈 들이쌌노? 10만 원이면 떡을 칠 긴데."

명합집 아저씨 말에 국밥집 주인도 솔깃하는 눈치였다.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졌다. 마음 같아서는 국밥 그릇을 그 방해꾼 머리에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12쪽

그 사건은 동네 광고장이로 끝날 뻔한 한 젊은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자존심을 와장창 깨버린 동네 아저씨의 한마디 말에, 이제석은 고민한다. 누구는 선 하나 그려도 억대 돈을 받고, 누구는 밤낮으로 일해도 30만 원도 간신히 버는 대한민국이란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한 젊은이의 분노는 도전으로 바뀌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스펙만을 바라는 대한민국 사회를 떠나, 자신의 재능을 믿고 먼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기도 하고 어떤 곳이지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배도 고파 멋모르고 그를 따라 무료 급식소에 다녔다. 힌두교 사원에서 카레를 먹기도 했다. 애플사의 최고 대빵 스티브 잡스도 한때는 무료 급식소를 이용했다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당시 나는 하루에 핫도그 두 개로 연명할 때였다. 어느 날 급식소의 자원봉사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넌, 제대로 된 인간 같은데 이런 델 왜 왔냐?"

모닥불에 얼굴을 파묻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더 이상 무료 급식소에 갈 수가 없었다. 비록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나는 배고픈 것보다는 쪽팔리는 게 더 싫은 20대 청춘이었다. -26쪽

아무 것도 없이 떠난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쥐와 좀 벌레가 들끓는 방에서 생활해야 했고, 돈이 없어 무료 급식소를 들락날락 거려야 했다. 곤궁한 그의 유학 생활은 글을 읽는 필자에게 적잖은 충격을 던져줬다. 이대로라면 그는 성공은커녕, 외국의 부랑자 정도로 전락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닥친 비참함은 마치, 88만원세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아팠다.

< 광고천재 이제석 > 의 작품.

ⓒ 학고재

하지만 그를 유학으로 이끌었던 오기처럼, 유학 생활의 곤궁함 속에서도 꿈에 대한 오기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배고픔 속에서도 광고란 꿈을 향해 공부를 계속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루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지방대라고 괄시당하고, 취업도 못했던 그가 세계적인 광고제를 휩쓸고 다니는 '기적'이 시작된 것이다. 공장의 굴뚝을 권총으로 형상화해, 오염의 심각성을 지적한 < 굴뚝총 > 으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계 광고계를 열광시켰다.

광고인들의 꿈인 원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물론 무려 29개의 공모전에서 메달을 땄다.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은 상 한번 못 받았던 이가 미국에서 상이란 상을 죄다 휩쓸었다. 한국의 대기업으로부터 외면 받던 '루저'였던 그는,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위너'가 됐다.

1년동안 미군 부대를 들락거리며 영어를 익혀 2006년 9월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츠'에 편입한다. 6개월 뒤부터 세계적인 광고 공모전에서 메달 사냥을 시작한다.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원쇼 페스티벌에서'에서 최우수상 받는 것을 시작으로 광고계의 오스카상이라는 클리오 어워드에서 동상, 미국 광고협회의 애디 어워드에서 금상 2개 등 1년동안 국제적인 광고 공모전에서 29개의 메달을 땄다. 공모전 싹쓸이는 1947년 SVA 개교 이래 처음, 광고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SAV에서 지독하게 편애를 받는 건 물론 뉴욕의 내로라하는 광고회사의 러브콜을 받는다. - 프로필

이 놀라운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는, 기업은 그제야 이제석를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 됐다. 보통 사람이라면 '학벌만 보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분노로 해외에 붙어있을 법한데, 그는 순수히 대한민국으로 돌아온다. 놀랍게도 그의 꿈의 목적지는 세계적인 광고 회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대우를 해 줄 대한민국의 기업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그는 남들과는 다른 꿈을 말한다. 자신의 광고 연구소를 만들어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광고제를 휩쓸고 유수 기업의 러브콜까지 받은 '천재'의 바람치고는 너무 '사회적'인 꿈이라 놀라웠다. 남들이라면, 단지 소망에 지나지 않았을, 쉽게 해내지 못했을 그것을 이제석은 단기간에 실행에 옮겼다. 2009년 5월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문을 연 것이다.

< 광고천재 이제석 > 중, 독도 수호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제석

ⓒ 학고재

이런 사람들에게 "돈만 벌면 성공한 삶이냐? 헬기 타고 다니면서 광고 찍는다고 성공한 광공쟁이냐고? 퍼포먼스나 캠페인도 엄연한 광고행위야 인마! 라고 말한다는 게 서글펐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마음을 다잡았다.

"광고로 끊임없이 사회 이슈를 만들어 갈 거라고. 그 이슈에 내가 적극 반응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거야. 작은 재능이라도 사회에 기부하면 좋은 거 아니야? 그러다 돈이 벌리면 다행이지만 돈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싶지 않아. 너네들처럼 야금야금 재능이나 축내고 월급에 목매면서 살고 싶진 않다고! 그러면 도대체 내 삶에서 남는 게 뭐냐고."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거창하게 대한민국 4대 악질 사회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뼛골 빼먹는 가장 악질적인 것을 개혁하자는 취지다. 4대 악질은 집값, 찻값, 대학등록금, 결혼 비용이다. - 208쪽

그의 도전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책 제목처럼 그가 광고 천재이거나 세계 광고제를 휩쓴 젊은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 남다른 정감이 갔던 것은 그가 학벌로 인해 재능을 펼치지 못한 우리내 젊은이 중 한 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그 평범함을 뛰어 넘어 진정한 광고천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재능을 자신만이 아닌 남을 위해 쓰고자 하는 진짜 '위너'가 되었다.

< 광고천재 이제석 > 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꿈을 이룬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이들에게, 그가 전해준 이 확신은 다시금 심장을 쿵쿵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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