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먹을 욕, 지난 2~3년간 다 먹은 것 같아"

리장(麗江)=글·사진 어수웅 기자 jan10@chosun.com 2011. 6. 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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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표절시비 후 처음으로 입열어

지난해 펴낸 장편 소설 '강남몽'의 표절 시비, 2009년 유라시아 특임대사 임명에 따른 정치참여 논란 등으로 구설에 오르며 장기간 칩거했던 소설가 황석영 (68)이 입을 열었다.

1일 중국 리장(麗江)에서 열린 새 장편 '낯익은 세상'(문학동네 출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리장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집필한 중국 남서부의 해발 2400m 고원 마을. 그는 "지난 2~3년간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내년이면 등단 50년을 맞는 이 노(老)작가의 이날 키워드는 '만년(晩年)문학'이었다.

―지난가을 표절 시비 이후 첫 발언이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시사월간지(신동아)에는 이미 실수를 인정하는 답변서를 보낸 바 있다. 사실 (기사 '김태촌·조양은 40년 흥망사' 등을 쓴) 해당 기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책에 인용사실을 밝혔어야 했다. 다큐소설 형식이고 일종의 역사소설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부분이 있다. 미안하다. 하지만 '강남몽'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까지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건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 (웃으며) 덕분에 '강남몽' 독자도 이전 책보다 엄청나게 줄었다."

―유라시아 특임대사 임명에 따른 정치참여 논란은. 특히 진보 쪽에서 난리가 났었다.

"늙은이가 되니까 뭐랄까,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남들은 허비했다지만 방북과 망명, 징역살이 등 15년 경험이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중화로, 유럽은 EU로 묶는데 남북한과 몽골, 그리고 중앙아시아 5개국을 묶어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보진영으로부터 욕을 먹었지만, 사실 이 구상은 노무현 정권 때부터 시작됐다. 지금 봐라. 결국 한반도는 강대국 컨트롤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 아니냐. 언제까지 이념 때문에 싸울 건가. 명분보다는 현실, 중도(中道)의 길을 가야지. 나는 아직도 이 구상이 실현됐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은 쓰레기장이 공간적 배경이다.

"2·3년 전 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쓰레기장은 세상의 모든 모순이 집약되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근대화를 이룩하면서 우리가 잘못해온 것들이 모두 숨어 있는. '꽃섬'이라는 이름이 난지도를 연상시키지만,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공간이다.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썼다. 우리가 이뤄낸 세상의 허구성을 보라. 후쿠시마 원전, 그리고 380만 마리 가축이, 생명이, 생매장당한 구제역. 불길하게 보였다. 제목은 '낯익은 세상'이라 했지만, 이 현실은 굉장히 낯선 거잖나. 하지만 뭐가 낯설어. 사실 모두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고."

―내년이면 등단 50년이다.

"작가로서 본능적 위기감이 있었다. 98년 이후 거의 매년 한 편씩 쏟아냈지만 내게 매너리즘이 온 것은 아닌가. 작가로서 변신하지 않으면 당분간 글을 못 쓸 것 같다는 초조감. 현실에서의 치열함이나 민족적인 울타리를 넘어 좀 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번 작품은 작가 인생 처음으로 연재 없이 전작(全作)으로 썼다."

―'만년(晩年)문학'이란 표현을 썼는데.

"지난 어버이날 찾아온 아들이 그러더라. 이제 제발 '사나운 형님'은 그만하고, '할아버지'가 되라고. 내 이야기라 민망하지만, 원래 재간 많은 사람이 남에 대한 배려가 적다. 반성했다. 이제 잘난 척 말고, 좀 비켜서고, (웃으며) 후배들 먹을 것도 좀 남겨놓자고. '만년문학'은 김정환 시인이랑 후배 작가들이랑 얘기하다가 나왔다. 소설 쓰는 김훈이 그러더라. 만년문학에 특징 셋이 있는데 배려와 회한과 자성이라고. 이제 좀 남길 것 남기고, 버릴 것 버리고, 간추리고 재정리해야지. '낯익은 세상'은 내 만년문학의 문턱에 있는 작품이다."

☞ 새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은…

시 외곽의 쓰레기매립지 꽃섬에 기죽지 않으려 늘 나이를 두 살 올려 말하는 열네살 소년 딱부리와 엄마가 찾아들어 온다. 매일 새벽 트럭이 도착해 도시의 쓰레기, 욕망의 찌꺼기들을 부려 놓으면, 꽃섬 마을 사람들은 마치 외계인 같은 복장을 하고 돈 될 것을 뒤진다. 마을 한편엔 '빼빼엄마'가 있다. 당집 할머니의 혼이 자신의 몸으로 들어왔다고 믿는 그녀는 정령들과 도깨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 작가는 인간과 정령, 문명과 자연 사이의 경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근원과 본질에 대한 질문을 줄기차게 던진다. '낯익은 세상'에서 황석영 특유의 치열한 리얼리즘을 찾기는 어렵다. 작가의 연민과 회한, 그리움에 대한 향수가 있다. 소년 딱부리의 시선과 동선을 따라가는 따뜻한 성장 소설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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