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식이 상팔자? 정신건강엔 아니올시다!

2010. 8. 2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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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다둥이 여성·다자녀 노인 등 '정신적 웰빙점수' 높아

타인·외부와 연결 유대감…서울 주민, 지방 밑돌아

한국인 정신건강지수 '눈길'

갈수록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 때문에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에게 자녀를 많이 갖는다는 것은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이 맞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통념에 불과할 뿐 사실과는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심리학회의 정신건강지수 개발위원회가 지난 19~21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정신건강' 내용을 보면, 자식을 3명 이상 둔 다자녀 여성의 정신건강이 자녀수가 2명 이하인 여성보다 훨씬 나았다. 다자녀 노인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정신적 웰빙 점수가 높았다.

■ 한국인 정신적 웰빙 낮아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조용래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존에 정신건강은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를 말해왔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정신장애로부터 자유로운 동시에 정신적 웰빙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건강한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정의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코리 키스 미국 에머리대 심리학과 교수의 '정신적 웰빙' 개념을 원용해 '한국형 정신건강 척도'를 만들었다. 또 정신장애 유무를 측정하기 위한 '한국형 정신장애 척도'도 마련했다. 이 척도로 올해 5~6월에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19~80살 성인 1000명을 표본 추출해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정신적 웰빙이 높은 '번영' 상태가 8.1%, 낮은 '쇠약' 상태가 19.1%, 중간인 '양호' 상태가 72.8%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같은 척도로 측정한 결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적 웰빙 상태가 좋지 않음을 보여준다. '번영' 상태의 경우 우리나라는 미국(37.9%), 네덜란드(34.9%), 남아프리카공화국(20.0%)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 다자녀는 정신건강 증거

연구팀이 정신건강 척도를 백분율로 변환해 정신적 웰빙 점수를 산출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학력이 높을수록 또 소득이 많을수록 점수가 높았다. 나이별로는 60살 이상 노인들의 점수가 낮게 나왔으나, 이 집단이 교육과 소득 수준이 낮은 것을 고려하면 연령별 차이는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자녀수는 정신적 웰빙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수가 3명 이상인 집단이 2명 이하인 집단보다 웰빙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특히 다자녀를 둔 여성의 정신적 웰빙 점수(47.4점)는 평균(44.5점)보다 높은 반면 자녀가 2명 이하인 여성(43.5점)은 낮았다. 그러나 두 집단은 정신적 웰빙을 구성하는 정서적 웰빙, 심리적 웰빙, 사회적 웰빙 가운데 정서적 웰빙 점수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이 '행복'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임영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많은 자녀를 갖는 이유가 즐겁고 유쾌한 정서적 경험을 얻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에 기여하고 타인과 유대감을 가지며 외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녀수에 따른 웰빙 점수의 차이는 노인들에게서도 나타났다. 60살 이상 노인 가운데 세 자녀 이상을 둔 사람의 웰빙 점수(43.5점)는 2명 이하의 자녀를 둔 노인(37.2점)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 서울은 정신건강에 해로워?

거주지역도 정신적 웰빙의 주요 변인으로 드러났다. 서울지역 사람들의 웰빙 점수(41.3점)는 평균을 밑돈 반면 지방 사람들(45.8점)은 평균을 넘었다. 또 서울 사람들은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점수가 낮은 데 비해 지방에서는 월수입 400만원 이상인 경우(48.2점)가 400만원 미만인 경우(44.6점)보다 훨씬 점수가 높았다.

연구팀은 서울시민과 지방 거주민이 느끼는 '주관적 경제적 수준'에 차이가 날 것으로 추측했다. 부의 불균형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서울시민이 더 클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서울시민의 주관적 경제적 수준은 지방민보다 컸다. 연구팀은 이번에는 '친밀감'과 '탄력성'에 주목했다. 친밀감은 친구·가족·지인으로부터의 정서적 지지에 대한 평가를, 탄력성은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극복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연구 결과 서울시민은 주변사람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덜 지지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면역력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 정신건강 어떻게 조사했나

정서·사회적 웰빙 평가 등 척도조사대상 1000명 중 92명이 '정신장애'

한국심리학회 정신건강지수개발위원회는 코리 키스 미국 에머리대 교수의 정신적 웰빙 개념을 기본 분석 틀로 삼았다. 키스 교수의 정신적 웰빙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감과 즐거움 등의 긍정 정서를 좀 더 많이 경험하며, 불안·분노 등의 부정 정서를 덜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연구팀은 키스 교수의 분석 틀에 따라 정신적 웰빙의 범주를 '번영' '양호' '쇠약' 등 3가지로 나눴다. '번영' 범주에는 지난 한달 동안 행복감, 삶에 대한 흥미와 만족감 등 정서적 웰빙의 3가지 증상을 1~6점 척도로 매겨, 하나 이상을 높게 평가한 사람들이 포함된다. 동시에 내 성격의 대부분을 스스로 좋아하는지, 따뜻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잘 맺고 있는지 등을 묻는 심리적 웰빙 6가지 항목과 자신이 사회에 공헌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고 느끼는지, 공동체에 소속돼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 사회적 웰빙 5가지 항목 등 11가지 증상에서 6가지 이상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쇠약'은 반대로 정서적 웰빙 증상에서 1개 이상을 낮게 평가하고, 심리적·사회적 웰빙 증상에서 6가지 이상을 낮게 평가한 경우에 해당한다. 번영과 쇠약에 속하지 않은 상태는 '양호'로 분류된다.

연구팀은 여기에 정신장애 진단까지 합쳐 '완전'(정신장애가 없으면서 번영 상태인 사람), '양호'(정신장애가 없으면서 양호 상태인 사람), '단순 쇠약'(정신장애가 없으면서 쇠약 상태인 사람), '단순 장애'(정신장애가 있으면서 번영 또는 양호 상태인 사람), '쇠약·장애 복합'(정신장애가 있으면서 쇠약 상태인 사람) 등 5가지 범주로 나눴다.

이번 조사에서 1000명 가운데 92명이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로 분류됐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 장애 집단이 단순 쇠약 집단에 비해 정신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더 건강하다고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영진 교수는 "단순 장애 집단이 역경을 더 잘 극복하고 중요한 삶의 목표를 분명히 인식하며, 가족과 동료들 사이에서 친밀감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조 교수와 임 교수 외에 고영건 고려대 교수(임상심리학), 신희천 아주대 교수(심리학) 등이 참여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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