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승 (5) 말씀 묵상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 깨달아

2010. 2. 2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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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이라는 말을 들어도 아내 우일강 권사 자랑 좀 해야겠다. 예전엔 '사랑'의 '사'자도 꺼내지 못했다. 당연한 줄 알았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 아담은 이 이브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내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

아내는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과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당시 이화여대 법대 1학년생이었다. 우리는 서울 광화문의 '귀거래'라는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아내는 예뻤다.

아내와 교제하며 내가 가끔 여성도 됐다는 것은 재미있는 추억이다. 부모님이 편지를 뜯어볼까봐 '보낸 사람'란에 여성 이름을 쓴 것이다. '권오숙' '권오순' '오승희'를 번갈아 썼다.

아내와는 1973년 2월 졸업식 때 약혼, 같은 해 10월 영락교회에서 결혼했다. 나는 "가장 행복하게 해주겠다. 나와 결혼하면 행복하겠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당신과 나, 당신과 결혼한 사람까지 불행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아내는 이를 받아들일 만큼 순수했다. 첫 아이가 예정보다 빨리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2주 동안 있었다. 입원비 병원비가 당시 전세금만큼이나 큰 돈이 됐다. 겨우 선배들에게 꿔서 해결했고, 이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지속됐다. 잘 이겨내다가도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하더니, 속았다"고 불평했다. 그럴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위로하면 넘어가 줬다. 한번은 "7년 후 가장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 어음을 써준 적도 있었다.

또 '푸른 미래'에 대한 억지 논리를 펴도 아내는 못이기는 척 동의했다. "내가 최소한 평균 수준의 능력은 있고, 열심히 일하고, 낭비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반드시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했던 기억도 있다.

아내는 또 지혜로웠다. 내가 교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연구가 잘 되지 않았던 나는 자주 거실로 나왔다. '나에게 학자적 자질이나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하고 자책을 하다 하소연하자 아내는 "너무 무리한 것 같으니 며칠 푹 쉬자"고 제안했다. 아내의 말을 따르자 실제 복잡하고 어려웠던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것이 아닌가.

반면, 나는 욕심쟁이였다. 당시 사랑이란 내가 좋은 대로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신사임당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신사임당이길 은근히 바랐다.

신사임당과 비교해 아내가 부족하면 가차 없이 지적했다. 고치려고도 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의 표현인 줄 알았다.

하나님은 내게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셨다. 장점은 칭찬하고 단점은 조용히 다가가 채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를 알고 나서야 그동안 아내에게 보인 행동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게 됐다.

나는 원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다. 애정 표현이 뭔지도 몰랐다. 아내보다 내가 훨씬 흠이 많고 부족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를 하늘같은 남편으로 섬기느라 고생했다. 요즘은 아내에게 하루에 세 번 이상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자녀들이나 제자들에게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모든 것이 기적이요, 은혜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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