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늘 나라의 통치 원리

입력 2010. 2. 21. 17:29 수정 2010. 2. 2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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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장 11∼16절

종말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중에 첫 번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고, 두 번째 이름은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이고, 세 번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 중에 마지막 이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입니다.

종말의 때에 예수님께서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왕 노릇은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 나라에서의 왕 노릇은 내가 어떤 존재 위에 군림하는, 이 땅의 아담들이 만들어놓은 왕의 개념과 완전히 반대의 왕 노릇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왕 노릇을 하다가 가셨습니까. 종의 모습으로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빌 2:6∼11). 다른 사람들을 죽여서 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원수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일회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의 삶 자체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담고 있는 내용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바로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와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자리에 올라앉아 있는 '나'라는 거짓된 자아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나' 이외의 다른 이들을 공격하고 통제해서 죽이는 그 육적인 '나'를 해체시키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내가 죽음으로 그 상대방을 살려내는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쾌한 종노릇이 바로 '하늘나라의 왕 노릇'인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한 사도들은 그 주님의 말씀대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종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내용을 자신들의 삶으로 살아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고대에는 노예들을 길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둘라 고게오'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에서 '쳐서 복종하게 하다'라는 단어가 바로 '둘라 고게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위해 '둘라 고게오'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자가 되거나 가난하게 되는 것, 병에 걸리거나 병이 낫는 것, 유명해지거나 무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런 것들로 하나님과의 관계, 나의 신앙의 경중을 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열매는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앉아 자기 스스로 힘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이외의 것들을 통제하려 하는, 다른 말로 자기만 사랑하는 죄 된 본성을 깨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그리스도의 종의 흔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종말의 때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는 누구에 의해서 진행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이는 자에 의해서일까요, 아니면 죽는 자에 의해서일까요. 예수님을 보면 해답은 자명하지 않습니까.

이종근 산본무지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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