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외대 박상진 교수 "단테는 성서를 현세에 잘 접목시킨 인물"

정성수 2015. 4. 2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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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연구 권위자..'단테 알리기에리' 7년만에 25쇄 찍어

"인간은 죄를 짓는 존재이지만, 지은 죄를 씻을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단테가 위대한 건 누구보다 더 인간에 대해 고뇌했고 연민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이죠. 단테 연구는 갈수록 늘어날 겁니다."

박상진(51) 부산외국어대 이탈리아어과 교수는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장편 서사시 '신곡(神曲)' 연구의 국내 대표 학자다. '신곡'을 오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가 2007년에 옮긴 '단테 알리기에리'(믿음사)는 7년 만에 25쇄 넘게 찍었고, 2013년 고문으로 참여했던 연극 '단테의 신곡'은 1,000석 규모의 국립극장이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강연회에도 자주 불려다닌다. 지난 16일엔 한국종교발전포럼 연사로 초청돼 서울을 다녀갔다.

박상진 교수는 "단테는 세속인이었지만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과 함께 현세적·도덕적 가치 추구에 큰 비중을 두었다"고 강조한다.

"단테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졌지만 기독교 신앙이 무조건 천국을 약속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지옥편을 보면 지옥에 간 추기경과 교황도 많습니다."

'신곡'은 단테의 상상이 빚어낸 사후세계 이야기다. 단테는 존경하는 작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먼저 지옥 여행에 나선다. 살벌한 지옥을 도는 데 걸린 시간은 사흘. 두 사람은 '정죄(定罪)와 희망의 땅' 연옥을 여행한다. 연옥 여행에도 사흘이 걸린다. 천국 안내는 그가 평생 흠모했으면서도 먼저 세상을 떠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 베아트리체가 맡는다. 축복과 환희, 미덕으로 가득 찬 천국 여행은 하루 만에 끝난다. 지옥편 34곡, 연옥편 33곡, 천국편 33곡 등 총 100곡으로 구성된 '신곡'은 단테가 집에 돌아와서도 이야기가 계속된다.

조각가 로뎅이 '신곡'의 지옥편을 읽고 영감을 얻어 만든 '지옥의 문'. 맨 위에 조각된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단테는 죄에서 구원에로의 여정을 통해 구원을 완전하게 성취했으나 인류를 구원의 순례에 동참시키려고 다시 돌아왔지요."

인간은 누구나 죄를 안고 태어나 구원을 향해 항해한다. 물론 지옥은 이 땅에 살 때 죄를 많이 지은 자가 가고, 천국은 죄가 없는 자가 가는 곳으로 설정돼 있다. 단테의 고뇌는 지옥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왜 죄를 지었을까, 죄를 짓지 않는 길은 없었을까. 죄에 대해 근원적 성찰을 한 것이다. 유명한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로뎅이 '신곡'을 읽고 지옥편을 표현한 '지옥의 문'의 일부분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곧 단테라는 것이다.

"단테는 기독교인이기에 앞서 시인이자 작가로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더 큰 관심을 두었지요."

성서에 따르면 죄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결과다. 그러나 단테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명을 어긴 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을 잘못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면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했을 터인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자유의지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의해 악도 선도 행할 수 있게 됐으며, 놀라운 문명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끝이 해피엔딩인지는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

"단테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높이 평가했지만 겸손도 강조했지요. 인간은 겸손을 통해 죄를 멀리 할 수 있고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단테. '신곡'은 그의 '자서전적 알레고리(우의)'라고 할 수 있다.

단테는 인간의 구원을 가로막는 것을 탐욕과 오만, 음욕으로 파악했다. 그는 이런 것들이 지나치면 죄가 된다고 본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스스로 겸손함으로써 아무도 항해하지 못한 연옥에 오를 수 있었다.

"구원은 예수를 믿는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얼마나 죄를 줄이고 선을 확장시켰느냐에 따라 결정되지요. 그렇다고 단테의 세계관이 성서와 배치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를 현세에 잘 접목시킨 것이죠. 교황도 현세적 구원을 추구해야 마땅합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단테는 기독교를 옹호하거나 내세관을 주장하기 위해 '신곡'을 쓰지 않았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고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현세의 행복, 정의, 평등, 자유, 사랑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내세는 또 하나의 결실을 뿐이다. 단테는 종교와 세속을 아울렀으며 외려 현실세계에 방점을 찍었다. 특정 종교에 얽매이면 배타적이고 정형화해 성찰이 부족해 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사후세계는 중세인들이나 추종했지, 르네상스 이후에는 내세관이 점점 엷어졌어요. 현실세계 행복이 더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단테는 '신곡'을 쓰면서 성서와 아리스토렐레스 철학도 독파했다. 고대와 중세를 아우르고 근대인의 모습까지 보인 건 단테가 거의 유일하다. 그것은 단테가 13세기에서 14세기로 이어지는 절묘한 시점에 살아 역사 전체를 꿰뚫어보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부절제(不節制)=죄'라는 단테의 메시지는 700년 세월을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절실하다.

"서양에서 '신곡'은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고 해설서만 1만권 넘게 나왔습니다. 한국은 아직도 여명의 상태지만 서양을 제대로 알려면 '서양의 축소판'인 단테 연구를 부지런히 해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인이기도 한 박 교수는 올해 단테 탄생 750주년, 2021년 단테 서거 700주년에 맞춰 국내에서 처음으로 '단테 전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테 저서 10권을 주해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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