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 순례하듯 가장 성스럽게 살아가야 할 곳"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14. 10.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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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회를 담임했는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일했는지를 묻지 않으실 겁니다. 대신 가장 작은 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서울 용산구 남영역 건너편의 100년 넘은 아담한 청파감리교회에서 만난 김기석(58)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개신교 내에서도 조용한 목사로 유명하다. '절제'가 모토요, '회개는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초점을 바로잡는 일'이라는 게 지론이다. 그러면서 인문학과 가톨릭 성인의 삶을 넘나드는 그의 설교는 '인문학적 설교' '문학적 설교'로 명성이 자자하다. '내 영혼의 작은 흔들림' '오래된 새 길'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다' 등 저서와 '기도의 사람 토머스 머튼' 등의 번역서로 현대인들에게 영성(靈性)의 가치를 전해온 저자이자 번역가,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글로만 영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바뀌면 세상이 변한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환경 보호를 위해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만 탄다. 교회 옥상에는 태양광발전기를 놓고 한전에 전기를 팔아 에너지 빈곤층을 돕는다. 교인을 가리켜 '성도(聖徒)' 즉 '따르는 사람'이란 표현 대신 '벗'(敎友)이라 부른다. 교회 울타리는 헐어버려 노숙인들이 교회 벤치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교회 분위기도 똑같다. 수년 전 100주년 기념 헌금이 꽤 걷혔으나 몽땅 캄보디아, 몽골 등 어려운 나라에 갖다 줬다. 주일 점심 때 잔반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무도 교회의 성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 목사가 최근 펴낸 산문집 '일상순례자'(두란노)에는 그의 목회 철학이 배어 있다. "실은 3년 전 냈다가 절판된 책이에요. 그런데 주변 분들이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새로 냈습니다."

그 '주변 분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국내 저자의 꽤 훌륭한 영성(靈性) 에세이를 영원히 묻어둘 뻔했다. 책 제목 '일상 순례자'는 '동그란 네모'처럼 형용모순이다. 일상은 순례 대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여기'의 일상이 바로 우리가 성스럽게 순례하듯 살아가야 할 곳이라고 말한다. "그 일상의 길 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성경입니다. 그렇지만 독도법(讀圖法)을 모른다면 지도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지요."

'예수는 참 멋진 고수(鼓手). 예수가 치는 하늘 북소리를 들은 이들이 새로운 삶을 향해 길을 떠났으니' '영성이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불을 끄고, 어둠을 배경으로 더 또렷하게 예수를 보자'…. 지도 읽는 법을 일러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상 곳곳에서 하나님의 숨결과 마음을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법정(法頂) 스님이 전라도 조계산 불일암과 강원도 오대산 오두막의 한 줄기 맑은 바람을 글에 실어 도시인에게 날랐다면, 김 목사는 도심 속에서 길어올린 산소를 같은 도시인에게 전해주는 셈이다.

김 목사는 "신앙은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우리는 자녀 세대들에게 들려줄 신앙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까? 예수 믿었더니 모든 게 잘되더라는 이야기 말고, 예수를 제대로 믿기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손해 본 이야기, 예수의 정신을 따르기 위해 오해받고, 따돌림받은 이야기 말입니다. 제대로 예수를 본받으려면 손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1997년 담임목사로 부임했을 때 250명이던 출석 교인은 지금 2배로 늘었다지만 이제 500명 선. 그래도 성장보다는 절제를 이야기하고, 예수쟁이는 손해 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몽상가(夢想家)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목사는 종교인이란 무릇 현세에선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꿈을 꾸는 게 옳은 일 아닌가 하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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