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령씨 "지난해 6월 형님 대통령 방미 연기는 메르스 아닌 유승민 때문"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이자 전 육영재단 이사장인 박근령(62·사진)씨와의 지난 5일 인터뷰는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국민일보를 통해 단독 보도가 나가자 반응이 뜨거웠다. 그러자 다음날 박근령씨에게서 갑자기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전화 목소리에 힘이 들어 있었다. 할 말이 더 있다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그는 전날 못 다한 말들을 이어갔다.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노트도 다시 폈다. 전날보다 달변이었다. 다음은 박 전 이사장과의 두 번째 인터뷰 일문일답.
-할 말이 더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 언론이 오해한 것들을 말씀 드리고 싶다. 문제를 일으킨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야기, 형님 대통령(박 전 이사장은 박 대통령을 ‘형님 대통령’이라 불렀다) 방미 연기 이야기, ‘세월호’에 묻힌 이야기 등 어제 인터뷰 때 정치적인 이야기들을 못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그래야 이번에 공화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언론들은 형님 대통령과의 관계, 즉 사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는데, 그건 좀 그렇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문제라고 했는데, 좀더 자세히 말씀해 달라.
“(잠시 침묵), 형님 대통령이 지난해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갈등이 있었다, 다 이유가 있다. 유 전 원내대표가 새누리당을 위해 일했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에서 원내대표를 지낸 사람이 일마다 안다리를 걸었다.
공무원연금개혁 과정에서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이질 않나, 특히 야당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해달라고 하면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바꾸자고 하는데 야당이 주장하는 것을 누가 법안으로 발의했는가 묻고 싶다(말이 점점 빨라졌다).
그 일로 새누리당의 지지도가 떨어졌다. 형님 대통령이 지난 해 왜 미국 방문을 연기했는지 아는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메르스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유승민 때문이다. 국가재정 탕진하는 쓸 데 없는 사회주의적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니, 형님 대통령이 방미를 전격 연기한 것이다.”
-세월호 이야기는 뭔가.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최대 사건 중 하나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형님 대통령에게 세월호 사건을 모두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거 하나 말씀드리겠다. 세월호 사건 ‘구원파’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혜택을 많이 본 사업가다.
당시 정부가 부도난 회사를 법정관리로 넘기고 선주협회 자체 감사로만 적당히 관리토록 했다. 또 선박의 국제안전기준을 낮추고 인천·제주간 항로를 20년 독점·운영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게 유병언 회장의 탁월한 사업운영 실력때문인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세월호 사건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2014년 10월 3일 부산 부성고등학교 개교 44주년 및 위안부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한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박근령씨 제공
-일본 과거사를 잘못 이야기한 적이 있나. 첫 인터뷰가 나가고 그런 비판이 있다.
“제 발언의 취지를 오해하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우리가 더욱더 잘 보살펴야한다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이다. 분명히 말씀드린다. 일본의 과거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제 한국과 일본이 화해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해방된 지 70여년이 흘렀다. 지금은 한·미·일 외교 공조를 강화할 때다. 우리 앞에 주적 북한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실리적인 면을 고려하는 외교를 펼칠 때다. 국민들도 우리나라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협조했으면 한다.”
나는 반공주의자…김일성 동상에 절하고 싶지 않았다
-북한에 간 적이 있는가.
“한 번도 없다. 갈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김일성 동상에 절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아버지처럼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핵을 만들고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위협하는 북한정권이 하루빨리 무너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 등에서 힘들게 떠돌아다니는 탈북자들을 구출해야한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 민족, 우리 동포, 우리 국민 아닌가. 우리 정부도 더 열심히 탈북자 구출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 일가와 정치인들(왼쪽부터 박근혜, 박근영, 전두환, 박정희, 차지철, 박지만, 김정렴, 정승화). 국민일보DB
-첫 인터뷰 때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휘호를 주셨다고 했다. 좀더 설명해 달라.
“어머니가 우리 3남매에게 붓글씨로 써주신 일 말인가(생각을 잠시 더듬더니). 맞다. 형님에게는 ‘관용지덕’. 제겐 ‘중용지덕’, 동생 지만이(EG 회장)에게는 ‘인내지덕’이라고 써서 주셨다. 왜 그렇게 써서 주셨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각자의 성격과 환경에 딱 알맞게 써 주신 것 같다.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어머니의 배려가 듬뿍 담겨 있다. 늘 마음판에 새기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왜 ‘관용지덕’이란 글귀를 써 주셨나.
“형님 대통령은 아시다시피 성실하시다. 학교에서 반장도 하고 모범생이었다. 늦잠 자는 동생을 깨우는 것은 물론,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분이다. 한번은 국어나 영어 수학도 아닌 체육 교과서까지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고 반 친구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형님은 매사에 성실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그걸 염려하신 것 같다. 자신에게 엄격한 것도 좋지만 좀더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살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 같다.”
-박 전 이사장에게는 ‘중용지덕’, 동생 지만씨는 ‘인내지덕’을 써서 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좀 감성적인 사람이다. 대학 때 음악을 전공하기도 했지만(박 전 이사장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왔다) 좋으면 너무 좋아하고 싫으면 너무 싫어하는 그런 성격이다. 감정에 기복이 있다고 할까.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화장대를 친구가 예쁘다고 해서 얼른 준 적도 있다. 그땐 친구에게 호감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었다.
그리고 우리 남동생 세현 아빠(지만씨)는 친구랑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차분히 공부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한두 시간 뒤 과일을 깎아 방에 들어가 보면 어느새 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친구랑 놀러 나간 것이다. 그래서 ‘인내지덕’이라는 글귀를 써 주신 것으로 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근영씨,지만씨(오른쪽부터)등 삼남매가 눈덮인 청와대 뒤뜰에서 즐거운 한때(1969년1월 31일)를 보내고 있다. 국민일보DB
-박 전 이사장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청와대 생활 중 어머니는 무척 절약을 강조하시는 분이셨다. 이면지를 많이 사용했고, 심지어 쓰레기통에 버린 종이 등을 다리미로 데려 다시 사용하셨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그걸 사용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절약하시면서 사시니 다른 청와대 사람들은 본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번은 청와대에 오신 분들이 제게 주고 간 일제 샤프와 신발주머니를 몰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학교에 몰래 가려는데 들켰다. 어머니는 조용히 그걸 압수하셨다. 그땐 어머니가 야속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라와 민족, 국민을 늘 생각하는 어머니가 자랑스럽다.”
청와대 불상은 잘못 와전된 것…아버지는 어릴 때 교회 열심히 다녀
-교계에서 청와대에 불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스님 한 분이 청와대에 있는 약수터에 왔는데, 작은 돌부처상을 놓고 간 것이 그렇게 외부에 알려진 것 같다. 불교는 외할머니가 믿으셨다. 어머니는 자연스레 그 영향을 받으신 것 같다.
반면 아버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는 어릴 때 구미상모교회를 열심히 다닌 것으로 안다. 교회 동화대회에서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잘 해 입상했다고 들었다. 대통령이 된 뒤 후인 1967년 당시 교회 건축비 380만원 중 200만원을 헌금했고 성묘 차 고향에 들를 때는 꼭 교회를 찾아 교회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곤 했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으로서, 박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은.
“아버지처럼 강력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요새 TV를 통해 본 형님 대통령이 힘이 좀 없어 보인다. 국민은 좀더 강력한 대통령,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다. 형님 대통령이 개성공단에서 철수를 결정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북한에 대해 강경하게 나아가야 한다. 국민이 힘들어하는, 가려운 부분을 잘 해결해 주는 정말 역사에 길이 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소망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는데 난데없이 한 청년이 다가왔다. 20대 중·후반 쯤 돼 보였는데 파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이 ‘이명박의 피해자'라고 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도 자신을 알 것이라고 했다. 횡설수설했다.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박 전 이사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청년에게 건넸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여기 명함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니 연락을 주세요. 수고하세요.”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알림]유병언 전 회장 관련 반론
본보는 지난 4월 8일 미션라이프 인터넷판에 <박근령씨 “지난해 6월 형님 대통령 방미연기는 메르스 아닌 유승민 때문”>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냈습니다.
박씨는 인터뷰에서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혜택을 많이 본 사업가이고, 당시 정부가 부도난 회사를 법정관리로 넘기고 선주협회 자체 감사로만 적당히 관리토록 했으며, 또 선박의 국제안전기준을 낮추고 인천·제주간 항로를 20년 독점·운영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씨의 주장에 대해 유병언 전 회장 측은 “검찰이 2014년 10월 15일 세모그룹 회생과정에서 제기된 특혜의혹과 관련 수사결과를 발표한 바 그 내용은 ‘세모그룹 회생과정에서 제기된 정치권 특혜의혹도 현재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고, 최근까지 수사한 결과 정상적인 채권단의 승인과 법원의 허가를 거쳐 규정상 문제가 없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였고,
해양수산부는 동아일보 2014년 4월 23일자 <해수부, 유병언에 20년째 항로 독점권>이라는 제목의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로 <해수부, 유병언에 20년째 항로 독점권 보도 관련>이라는 제목으로 ‘1995년 이후 인천∼제주 항로에 대한 타 사업자의 신규면허 신청은 없었음, 참고로 연안여객선 항로대부분은 수익성이 낮은 실정으로 총 99개 항로 중 85개 항로(보조항로 26개 포함)가 각 1개 사업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박씨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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