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위해 약달이고 별거 허용한 조선의 선비

2011. 6. 2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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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400년전 편지' 특별전곽주-하씨 부부의 일상 편지·옷가지 등 전시재혼·시댁 갈등… 민간처방 이야기도 생생

아내와 사별한 남자가 재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은 전처 소생의 아들과 나이가 비슷했다. 둘 사이가 나빠서 그 틈바구니에 낀 남편은 난처했다. 결국 부부는 별거를 택했다. 떨어져 살면서 편지로 왕래했다. 그래도 금슬은 좋았다.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살뜰했다. 오히려 아내가 무덤덤한 편이었다. 부부는 4남 5녀를 낳고 잘 살았다.

재혼, 이혼, 별거가 흔한 요즘 세상에도 어려울 것 같은 이 장면은 400년 전 조선 선비 곽주(1569~1617)와 진주 하씨(1580~1652 추정) 부부의 것이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400년 전 편지로 보는 일상-곽주 부부와 가족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별거 직전 곽주가 하씨에게 쓴 편지를 보자.

"요사이 무슨 일로 집안이 조용한 때가 없는고. 자네가 한 데 살기 편치 아니하다고 말하면 다음 달로 제각기 들어갈 집을 짓고 제각각 살기로 하세. 면화를 따기 전에 제각기 나가고자 하니 자네 뜻에는 어떠한고. 자세히 짐작하여 기별하소."

따로 나가 살고 싶다는 아내의 뜻을 받아들이는 곽주의 모습은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다. 한 집에 살기 불편하다는 하씨 또한 무조건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남존여비 시대의 여인 같지 않다. 곽주는 경북 달성군 현풍면 소례에서, 진주 하씨는 자식들을 데리고 인근 논공에서 살았다.

이 부부의 삶은 1989년 현풍 곽씨 후손들이 진주 하씨 묘를 이장할 때 나온 한글편지 172통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곽주가 하씨에게 보낸 편지가 105통으로 가장 많고, 시집간 딸이 하씨에게 쓴 편지 42통, 하씨가 곽주에게 쓴 편지 6통, 친정어머니가 보내온 편지 등이 있다. 편지와 함께 장옷 4점, 중치막 1점, 저고리 9점, 치마 2점, 바지 17점 등 옷가지와 직물 81점도 나왔다. 국립대구박물관은 이 가운데 부부의 일상 생활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편지 90여 통과 옷가지 10여 점을 골라 9월 18일까지 전시한다.

곽주는 자상한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가장으로서 집안 대소사를 일일이 챙기면서 아내와 자식들을 걱정했다. 제사에 쓸 음식에 관한 의논부터 할머니 댁에 갓난쟁이 딸을 데려갈 때 무슨 천을 무슨 색으로 물들여 어떻게 갖춰서 해 입히라는 당부, 어린 아들의 종기 치료약으로 소주에 꿀을 타서 먹이면 좋다 하니 보내달라는 부탁까지 참 꼼꼼히도 썼다.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면서 곽주는 몹시 초조했다. 친정으로 아기 낳으러 간 아내에게서 기별이 없자 '산기가 있으면 즉시 사람을 보내라'고 신신당부하며 이렇게 썼다.

"종이에 싼 약은 내가 가서 달여 쓸 것이니 내가 아니 가서는 자시지 마소. 비록 딸을 낳아도 절대로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자네 몸이 편하면 되지 아들은 관계치 마소."

선비로서 자신의 뜻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모습도 볼 수 있다.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한 한훤당 김굉필의 복권 운동에 나서면서 쓴 편지는 상소가 잘 안 되면 과거 보는 것을 포기하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진주 하씨가 겪은 삶의 애환은 남편 곽주에게 쓴 편지와 시집간 딸에게서 받은 편지에서 느낄 수 있다. 곽씨 집안에 시집 와서 겪어야 했던 갈등도 보인다.

곽주 부부가 산 17세기는 이상기온에 따른 흉작으로 사회가 어지럽고 각종 전염병이 돌았다. 곽주의 편지에 병치레하는 자식들 걱정과 음식을 이용한 민간처방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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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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