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감출수록 도드라진다

2011. 2. 1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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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개그콘서트' '발레리No' - 남성의 육체 전시가 주는 전복적 쾌감

[미디어오늘 황정현·독립영화프로듀서]

영국 영화 < 풀몬티 The Full Monty > (1997)가 화제였던 이유는 단순히 실업자들이 생계를 위해 스트립쇼를 한다는 설정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성'이라는 남녀 모두에게 짐이 되는 권위의식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주제의식과 아버지, 아들 등 가족, 사회 속에 처한 자신의 고난과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부분에 있다. 그 '한계'는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남성성'을 벗어던지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버리자 새로운 자아가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본다'라는 행위는 지극히 권력적인 행위이다. 미셸 푸코의 '판옵티콘'이나 포르노를 '보는' 남성의 행위는 시선과 권력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피관찰자의 불안감과 지켜보는 이의 정보적 우위에서 알 수 있듯 시각적 레벨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 반드시 획득하고자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시각적 권력에 있어, 역사적으로 남성은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 풀몬티 > 에서 스트립쇼를 결심한 등장인물들이 싸워야 했던 대상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남성의 육체를 함부로 전시할 수 없다는 사회적 편견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영화 '풀몬티'의 한 장면.

풀몬티, 스트립쇼 결심한 가장들이 싸워야 했던 것은 사회적 편견

KBS < 개그콘서트 > 의 코너 '발레리NO'가 화제다. 발레리노 복장을 한 개그맨들이 발레복을 입으면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민망한 부위를 가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몸개그를 선보이는 코너이다. '발레리NO'가 주는 웃음은 그 부분이 보여지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보이기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데서 온다. 사실 보여진다고 해서 조금 부끄러울 뿐이지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다. 필사적으로 가릴 이유는 따지고 보면 없을 뿐더러 본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한다면 보는 사람들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법한 수위이다.

개그콘서트 '발레리NO'

그럼에도 '발레리NO'가 영민한 코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생각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진 본능적 해석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사실 달라붙은 타이즈를 입은 발레리노를 볼 때 남자든 여자든 조금 민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단지 작품 안에서 보여지기 때문에 아닌 척 할 뿐이지 않는가. '발레리NO'가 주는 아이디어의 핵심은 "왜 아닌 척하지?"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거기에 가미되는 것은 오히려 중요부위를 강조하는 몸개그이다. 사실 (발레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가리개용 '바'가 치워지고 그들이 하는 발레는 가리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강조하기 위한 행위이다.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행동이 오히려 숨기고자 하는 것을 더욱 드러내는 역설이다.

개그콘서트 '발레리NO'

개그콘서트 '발레리NO'

'민망한데 왜 아닌척하지?' 예술에 본능적 해석 들이댄 영민한 개그

'발레리NO'에서 남성이나 여성이나 느끼는 웃음의 감정은 비슷하다. "보여지면 안 된다"라는 아슬아슬한 금지가 주는 긴장감과 그것을 해소하는 기발한 소품과 아이디어가 긴장을 해소시키면서 주는 웃음이 그것이다. 하지만 '발레리NO'의 핵심은 남/녀 모두 '보인다'라는 수동적 위치에 놓였을 때 인간이 얼마나 약한 처지에 놓일 수 있는가를 폭로한다는 점이다. 보일까봐 난처해하는 개그맨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웃는 웃음은 발레리노의 직업적 고충에 대한 1차원적 해석임과 동시에 주어지는 상황들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적 동질감을 아울러 준다.

현재 대한민국 대부분 코미디들이 그렇듯, 다른 대상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안의 소시민성, 소극적 성격을 웃음의 원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발레리NO' 또한 그런 코미디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발레리NO'의 장점은 그런 소시민적 슬랩스틱이 주는 웃음외에 힘과 권력으로 상징되는 남성의 육체를 적극적으로 전시하며 전복적인 웃음을 선사한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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