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루'로 본 한중일 문화사

2009. 1. 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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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학술대회(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금은 도서관이란 말을 쓰지만,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는 장서루(藏書樓) 혹은 장서각(藏書閣)과 같은 말을 썼다. 책을 보관하는 누각형 건물이란 뜻이다.

하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했다 해도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장서루 문화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원장 임형택)이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과 함께 16일 이 대학 600주년 기념관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각국의 장서루와 그 문화사'는 문화권별 차이점과 장서루가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짚어보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재일교포인 일본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김문경 교수는 교토지역의 유서깊은 사찰인 겐닌지(建仁寺)에 있는 장서루인 양족원(兩足院)을 중심으로 일본의 장서문화가 어떤 점에서 한국과 중국과는 다른지를 집중 부각하고자 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일본 장서문화에서 가장 커다란 특징은 양족원처럼 대형 장서루가 불교사찰에 집중 분포한다는 점이다. 교토의 고산지(高山寺)와 도후쿠지(東福寺), 난젠지(南禪寺), 치샤쿠인(智積院), 나고야의 신후쿠지(眞福寺)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이에는 불교서적만이 아니라 한문서적 전반이 보관됐다고 한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천스룽(陳時龍) 연구원은 '명대(明代)의 서원 장서루'를 통해 명나라 시대에는 서원에 장서루가 건설되기는 했지만 서원이란 곳이 관학(官學)이라는 체제 바깥에 위치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침체했으며, 아울러 학문을 강의하는 기능과 제사를 지내는 기능이 나중에는 서적 수장 공간을 침범하게 되는 현상도 빚어졌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타치바나대학 요코타 후유히코(橫田冬彦) 교수는 일본 근세의 출판문화가 확립되는 시기를 17세기로 보면서 이에 힘입어 이미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출판목록'이 작성되기 시작하고 독자층도 촌락사회로 확산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고문헌 연구가 박철상 씨는 조선에 장서가가 등장하는 시기가 19세기임을 주목하면서 그 원인으로는 연행(燕行)과 북학(北學) 열풍을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대 중국과 비교할 때 조선에는 출판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서가가 나타나지 않은 점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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