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잖아!"

2009. 1. 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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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탁현민 기자]

지난달 29일 강남 신사동 모처에서 가수 정태춘의 30주년 기념 파티가 열렸다.

ⓒ 탁현민

지난해 12월 29일, 강남 신사동 모처에서 가수 정태춘의 30주년 기념 파티가 있었다. 지극히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1978년 가요계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 같은 주옥같은 음악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인기가수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가수만은 아니었다. 80년대와 90년대 그 뜨거운 거리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던 투사였으며 몽상가였다. 수많은 싸움의 현장에서 그는 노래했고, 선동했고, 헌신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새롭게 싸울 수 있는 근력을 얻었으며 절망을 위로받았고 꿈꾸던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 (아니,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정태춘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는, 정태춘은 모르게 진행되었다. 그는 지난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이후로 세상과 소통하길 거부했다. 모든 매체와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공연하길 거부하고, 새로운 음악 만들기를 포기했다. 가까운 후배들은 그래도 30주년인데 어떻게 그냥 지나 가냐며 기념공연이나 작은 행사라도 하자고 연초부터 졸랐지만 끝끝내 '나중에 식구들끼리 밥이나 먹든지…….' 라며 끝내 거절하고 돌아앉는 그였다.

물론 돌아앉은 그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지난 십년 동안 그는 우리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으며 우리사회는 근본적으로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경고했다. 진보정권의 10년이라는 것은 그 취약한 정체성과 토대로 인해 얼마든지 그 이전의 10년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노래했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들으며 싸웠던, 그래서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믿었던 우리는, 더 이상 정태춘의 노래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 찬란한 새 시대에 왜 저 양반만 저렇게 지난 과거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더 이상 그의 노래를 듣고 싶지 않았고, 그의 말씀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그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그를 팽개쳐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정태춘

ⓒ 탁현민

그래서 정태춘 모르게 그의 30주년 기념 파티를 준비하는 내내 편치 않았다. 철저하게 그를 외면하다가 이제와 또 그에게서 무슨 위로와 희망을 얻어 보겠다고 무대로 불러내려는가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순수하게 그의 3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만은 아닐 것이라는 불온한 예감에 더욱 죄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행사당일, 오랫동안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한때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들어냈다고 기뻐했던 사람들이 모였다. 모여 놓고 보니 흥도 났고, 간만에 보는 얼굴들도 있어 반갑기도 하고, 주인공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행복했다. 그리고 정태춘이 나타났다. 적당한 거짓말로 있지도 않은 공식적인 행사에 초대해 놓은 터라 예의 그 시큰둥한 얼굴로 등장하는 정태춘을 향해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박수소리와 30주년을 축하한다는 환호에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정태춘. 한참이 지나서야 모두에게 감사한다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의 '떠나가는 배'를 시작으로 윤도현의 '촛불' 김C와 강산에의 축하공연이 이어졌고, 권해효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와 박재동 선생의 '봉선화'와 이철수 선생의 동방명주'까지 노래는 끝이 없었고 이야기도 그치지 않았다.

정태춘

ⓒ 탁현민

행사는 그렇게 밤을 새웠다. 그가 끝까지 몰랐다는 면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거웠다는 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정태춘도 어느 정도는 감동을 받았으리라는 면에서 성공한 행사였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나의 마음은 계속 무거웠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즐겁고 재미있었던 일들로 그런 에피소드들로 기록을 남겨놓고 싶었는데 이렇게 밖에 써지지 않는 이유도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번 행사를 알리는 초청장에 나는 이렇게 써넣었었다.

"그가 언젠가 물었습니다. 꿈꾸는 세상이 왔느냐고? 그 세상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냐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이제 모르겠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정태춘은 이렇게 말했다. "그 상황이 믿기지가 않더라고, 뭔가 비현실적이구나 싶은 거야,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여서 나를 환영한다는 게 말이야, 생각해봐 그런 자리는 내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잖아"

고백하자면 나는, 그날의 행사가 정태춘의 30년을 축하하는 자리만이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자리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믿었던 내 생각을 버리는 자리였고, 적당히, 이제 이만하면 살만하다는 우리들의 생각을 버리는 자리가 되길 바랬다. 그리고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자리를 통해 정태춘이 지난 10년간의 절망을 깨끗이 털어내길, 이제 또 한 번 위로와 무기가 될 음악들을 만들어 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소망했다. 정태춘에게 거는 예술적 기대가 혹여 너무 늦지 않았기를……. 그래서 그가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삐치거나, 하지 말기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정태춘에게 준 감사패

ⓒ 탁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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