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영문판 'A등급 번역' 10권중 1권뿐

2008. 7. 2.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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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만한 번역서 36% 그쳐… 90년대 이후 정체국가기관 지원받은 번역서가 되레 번역수준 떨어져

영어로 번역 출판된 한국소설 중 작품 이해에 방해가 되는 오류가 쪽당 1건 이하인 우수 번역서 비중이 1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번역 및 출판 과정에서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은 번역서 품질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윤지관) 의뢰로 1970~2006년 영역 출간된 한국소설 72종(원작 기준 41종)의 번역 수준을 검토한 평가위원단(위원장 송승철 한림대 교수)은 1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위원단은 한국문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한 국내 학자 10명과 외국인 학자 4명으로 구성돼 있다.

개별 책에 대한 최종 평가는 A+, A0, B+, B0, C+, C0의 6단계로 내려졌다. 이중 A+등급을 받은 책은 없고, A0등급은 7종(10%)이었다. 쪽당 2건 가량의 오류가 발견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되는 B+등급 18종을 합해도 신뢰할 만한 수준의 번역서 비중은 36%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간 연대별로 보면 A등급 비율은 80년대 0%에서 90년대 5%, 2000년대 25%로 급증하는 추세지만, B+등급까지로 범위를 넓혀보면 80년대 14%, 90년대 48%, 2000년대 50%로 90년대 이후 번역 수준이 정체하는 양상이다. 번역자 출신별로 보면 B+등급 이상 비율이 내국인 번역자의 경우 34%, 외국인 번역자 23%, 내외국인 공역 60%로 나타났다.

2001년 출범한 한국문학번역원과 그 이전 한국문학번역금고ㆍ문화체육부ㆍ문예진흥원 등 국가기관의 번역 지원을 받은 40종 중 B+등급 이상을 받은 책은 12종(30%)으로, 그 비율이 40%인 비지원 출간서에 비해 성적이 나빴다. B+이상 등급을 받은 국가기관 지원 번역서는 80년대 0%, 90년대 37%, 2000년대 43%로 비율이 늘고 있지만, C등급 책 역시 90년대 31%에서 2000년대 57%로 대폭 증가했다. 정부기관 중 현재 번역 지원사업을 도맡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작 10종 역시 절반이 C등급에 그쳐 번역 지원 효율 제고라는 숙제를 얻었다.

송승철 위원장은 지금까지 출간된 한국 현대소설 영역본 196종 중 72종을 선별한 기준에 대해 "<날개> <메밀꽃 필 무렵> 등 번역본 종수가 많은 작품을 우선 선정했고, 여기에 원작 창작시기 분포를 고르게 하고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고른다는 원칙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평가위원 2명이 한 팀이 돼서 장편은 작품 전체의 10%, 단편은 30% 분량을 원문과 일일이 대조했고, 이렇게 나온 팀별 평가서를 위원단 차원에서 2차에 걸쳐 수정했다"고 평가 경위를 밝혔다. 평가위원들은 충실성(원문의 함축적 의미를 얼마나 잘 옮겼나), 가독성(문학작품에 걸맞은 문장을 구사했나), 원문 명기(원본 서지정보 서술 여부) 등 8개 기준을 평가 항목으로 삼았다.

한편 평가위원단은 내년 전반기 영역 시집에 대한 번역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그 내용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 한국소설 영역본 오역 사례'동백꽃'을 '붉은동백'으로 제목 오역도한국어 실력·역사지식 부족 탓

송승철 평가위원장은 1일 한국소설 영역본 번역 평가 결과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평가 과정 중 발견된 졸역ㆍ오역 사례를 여럿 소개했다. 그는 "매끄러운 번역 문장을 구사했는지를 따지는 가독성 측면에선 전반적으로 우수했지만, 원작의 문학적 의미를 제대로 살려내는 충실성 차원에선 문제 되는 번역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먼저 번역하기 까다로운 어휘나 표현을 빼놓는 '(편의적) 누락' 사례가 눈에 띈다. 1999년 출간된 이청준 중단편 선집의 수록작 '예언자'의 한 구절은 원문에 있던 '하지만 이제' '바야흐로'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하고' 등의 어구를 모두 없애버려 원작의 미묘한 심리적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임철우 중편 '아버지의 땅'을 옮긴 한 번역가는 장문의 두 단락에서 묘사 부분을 몽땅 들어내고 한 단락으로 만들기도 했다.

역사적 지식이 부족해서 초래된 오역도 있다. 전광용 단편 '꺼삐딴 리'를 옮긴 한 번역자는 '자위대가 치안대로 바뀐 다음날이다'라는 구절을 옮기면서 '패망한 일본의 자위대가 자율적 임시경찰기구 치안대로 공식적으로 조직됐다'는 잘못된 정보를 임의로 삽입했다. 한국 사정에 어두운 외국 독자를 배려하려는 의욕이 앞선 결과다.

우리말 실력이 떨어지는 오역도 보인다. 일례로 채만식 장편 <태평천하>의 한 번역서는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내리다못해 필경 인력거꾼더러 걱정을 합니다'라는 구절을, '걱정하다'가 '아랫사람을 나무라다'란 뜻이 있음을 모른 탓에 엉뚱하게 옮겼다. 집게손가락을 뜻하는 '염지'를 엄지(his thumb)로 착각한 경우도 있다. 어떤 번역자는 김유정 단편 '동백꽃'에 등장하는 동백꽃이 '팁殮低?동백'이라 불리는 노란 생강나무 꽃이란 사실을 모른 채 동백나무에서 피는 붉은 꽃(camellia)을 뜻하는 'The Camellias'를 제목으로 다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글ㆍ사진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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