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안 봐주는 나는 나쁜 할머니일까

2008. 4. 1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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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현순 기자]"어, 뭐야? 둘째는 안 봐준다더니 얘는 왜 데리고 나왔어?"

"왜는 내가 요즘 얘 보느라고 한동안 못나왔잖아. 이젠 날도 따뜻하니까 나왔지."

15일 친구 K가 몇 달 만에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도 둘째 외손자를 데리고. 다른 모임에는 안 가도 이 모임에는 그래도 편하기 때문에 나왔노라고 K는 말했다.

친구의 딸은 맞벌이 부부다. 사위는 지방에 근무하고 딸은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다. 그의 딸 부부는 일주일에 혹은 이 주일에 한번 만나는 주말부부인 셈. 친구들도 K가 둘째 손자를 데리고 나오자 "진짜 봐주는 거냐"면서 모두들 의아해한다.

친구 K가 첫손자를 봐주면서 둘째는 절대 못 봐준다고 했을 때 난 '그럼 그렇지 손자 봐주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하면서 동지애를 느꼈었다. 하지만 K가 둘째를 봐준다고 하니 배신감(?)같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일말의 자책감 같은 것이리라.

"내가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직장 여성들에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친정이나 시댁에 신세를 지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직장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아무튼 교사인 K의 딸은 둘째를 낳고 2년간 휴직을 했다. 그리고 지난 3월에 복직을 해서 친구가 둘째손자를 봐주게 된 것이다. 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둘째는 절대 안 봐준다고 하더니 어쩐 일로 봐주네."

"어쩐 일은….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가기 어렵다는 교대에 들어가서 힘들게 선생이 되었는데 말이 그렇지 어떻게 안 봐준다고 그래.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그는 첫손자를 22개월 동안 키웠다. 그는 첫손자를 봐주면서 무척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못 봐준다는 말을 반복했다.

"둘째는 나도 몰라. 지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

그리곤 딸이 둘째를 낳고 휴직을 하자 그는 잠시 편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딸이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가 끝나자마자 K는 딸아이 집을 왔다갔다 하면서 손자들을 다시 봐주기 시작했다.

딸이 직장 휴직을 했지만 K의 손자 보기는 계속됐다. 아들 둘만 키우기는 딸이 너무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큰손자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며칠씩 재우기도 하고, 그가 딸집에 가서 며칠씩 자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딸이 복직을 하게 된 것이다. 딸아이가 복직을 하게 되면서 버스로 네 정거장 거리에 있던 집도 불편했는지, 지난 2월에는 딸이 친정집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까지 했다. 친구K의 본격적인 둘째 손자 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둘째는 21개월. 기저귀 신세 면할 때까지만이라도 봐주기로 했단다.

"손자들 아플 때 제일 힘들어"

친구K를 만난 날 난 외손자 봐주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외손자들인데 친할머니가 안 봐주고 자기가 2명이나 봐 주는 것이 약 오르지 않니? 어떤 외할머니는 그런 생각하면 괜히 성질난다고 하던데." "글쎄 시어머니가 아주 멀리 살아서 그런지 그런 생각은 안 들어. 시집이 가까이 살면 나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도 몰라도." "자기 손자들 보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야?" "아무래도 아이들이 아플 때가 가장 힘들지."

사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손자들을 돌봐주다가 손자들이 아프면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는게. 손자들이 제 엄마 아빠한테 있어도 아플 때 되면 아픈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미안한지. 그는 평소 깔끔한 성격이라 육아방법에 대해서는 딸과 큰 갈등은 없는 듯 했다. "자기 수고비 받아서 돈 많이 모았겠다. 한 달에 수고비는 얼마나 받아?""용돈 수준보다는 좀 더 많이 받지.(정확한 액수를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50만원 이상은 받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더라. 힘들다가도 그거 생각하면 힘든 줄도 모르겠어."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면서 통장이 두둑하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웬만한 어려움은 참을 수 있다는 듯.

요즘 친구K의 5살 된 큰손자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의 딸이 어린이집에 들러 큰손자를 데리고 친정으로 온단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작은손자만 데리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큰 손자는 할머니 집에서 재운다고 했다.

전에는 두 손자와 딸 모두 같이 친정에서 잤지만, 남자아이 둘이라서 모이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고. 두 손자가 만나면 집안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통에 결국 딸과 친정엄마가 각자의 집에서 한명씩 나누어 자고 있다고 했다. 딸이 둘을 모두 데리고 집으로 가면 아침에 둘을 데리고 오기도 힘들고 해서. 결국 친구K는 두 손자를 번갈아가면서 봐주고 있는 셈이다.

난 나쁜 할머니일까

손자 보기를 외면한 나는 나쁜 엄마일까? 친구를 보면서 딸과 손자들 생각이 많이 났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21개월된 친구K의 둘째 손자는 보채거나 마구 돌아다니지 않았다. 낯가림도 큰손자만큼 심하지도 않았다.

"둘째 얘는 굉장히 순하다. 낯도 잘 안 가리고."

"응 얘는 지 형하고 떼어놓으면 봐줄만 해. 하지만 둘이 붙여놓으면 개구장이도 그런 개구장이가 없어. 이젠 형한테 대들기도 하고 갑자기 밀치기도 하고 해." 점심을 먹는 동안 그가 손자에게 생선가시를 발라주고 뜨거운 것을 식혀 먹이고, 매운음식을 가리면서 살갑게 보살펴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을 손자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우리는 점심을 잘 먹고 공원으로 놀러 갔다. 그의 손자가 아주 재미있게 잘 뛰어 놀았다. 같이 있는 동안 울음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공원에서 잘 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그가 손자를 등에 업는다. 손자는 신이나 했다. 할머니 등에 업히더니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고, 손으로는 좋아서 그런지 할머니 등을 치면서 해맑게 웃었다. 손자를 업은 친구가 그렇게 멀어져갔다.

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심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그의 딸과, 지금쯤 어린이 집에 있을 두 손자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내 딸이 떠올랐다. 내 딸은 안심하고 일하고 있을까?

내가 큰손자를 못 봐준다고 했을 때 딸아이는 외국인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난 그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자를 못 봐준다고 했다. 딸아이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딸아이는 10개월이 지나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곤 둘째를 낳았고, 그 아이가 5개월 되었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계속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손자를 봐줄 때 수고비란 것도 받았지만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 무척 힘들었다. 내가 손자 봐주기를 거절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친구K를 보면서 손자들과 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날 난 집에 돌아가 어린이집에 있는 손자들을 내가 찾았다. 그리곤 4살 된 작은 손자를 아주 오랜만에 업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녀석의 어리광이 한껏 늘어졌다.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함무니, 나 컹(형) 아니야, 나 아기야" 하면서 등에 쫙 엎드린다. 녀석의 그런 어리광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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