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산책] 성장기 이방인의 삶.. 아멜리 노통브의 '배고픔의 자서전'

2006. 5. 1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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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느냐,먹히느냐'는 단백질이나 과즙을 보충하기 위한 이빨과 목구멍 사이에서 빚어지는 단순한 식욕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적인 차이나 혹은 인종적 차이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형이상학적 식욕이 될 수도 있다.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 문단에 신데렐라로 등장한 아멜리 노통브(39)의 '배고픔의 자서전'(열린책들)은 풍요 속의 빈곤,또는 자신과는 다른 어떤 존재적 이질감을 느낄 때마다 무엇이든 먹어치울 수밖에 없는 초월적 배고픔에 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1967년 외교관이었던 부모 덕택에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일본인 보모 손에 자라난 그녀는 질서의 나라인 일본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줄을 맞추어 걷고 입을 모아 반가를 부르는 민들레반의 유일한 벨기에산 민들레였던 그녀는 그곳에서 획일적인 삶을 강제하는 조직 사회에 대한 염증과 일탈의 자유를 경험한다. 마치 획일이라는 강제적 질서에 반항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초콜릿과 샴페인을 탐닉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문화혁명 이후의 중국으로 옮겨놓는다. "주린 배의 챔피언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식량 재해와 이에 따른 대량 사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중국인이 같은 동포끼리 제일 먼저 물어보는 말이 '식사하셨어요?'일 정도다. 중국인들은 먹기 불가능한 것을 먹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바로 여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요리 예술의 오묘함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따라서 농축된 형태로 존재하던 중국에서의 삶은 생리적 배고픔을 넘어서 지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1975년,그녀는 문화적 풍요로움의 절정에 있으며 모든 것이 넘쳐흐르는 뉴욕으로 옮겨간다. 여전히 무리속의 이방인인 그녀의 식욕은 창자속에서 음식물을 넣어달라고 꾸르륵대는 소리만큼이나 감각적으로 솟구친다.

"엄마는 수영장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우리 둘을 영국인 클럽에 억지로 끌고 나갔다. 수영장 따위,나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내게 끔찍한 불행이 찾아왔다. 가냘프고 호리호리 섬세하게 생긴 열다섯 살짜리 영국 사내 아이가 내가 보는 앞에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게 아닌가. 내 속에서 뭔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빌어먹을,내가 남자 아이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부족한 게 딱 그거였던 것이다. 내 몸은 배신자였다."

성장의 혼돈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죽여나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거식증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이 배고픔의 추구는 이내 현실적 한계에 부딪힌다. 배고픔의 절정에서 다시 육체의 세계로 끌어내려진 그녀는 이제 글쓰기에서 구원을 얻는다. "거식증은 내게 해부학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내가 해체해버렸던 이 몸뚱이를 알게 되었다. 이제 몸을 다시 만들어 가야 한다. 이상야릇하게도 글쓰기가 도움이 되었다.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육체적인 행위였다. 내 안에서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세포 조직 비슷한 것을 이루어 내 몸이 되었다."

아멜리 노통브식 성장소설의 완결편이기도 한 이 책에서 독자들이 "배고픔,이건 나다"라는 또다른 선언을 이끌어낸다면 그건 소설을 맛있게 먹어치운 증거가 될 것이다.

정철훈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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