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 펴내

2005. 2. 21.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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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1월17일 불교총본사 태고사 대웅전에서 열린 중앙총회에서는 군용기 헌납을 위한 불교계 결의대회가 열렸다. 승려 1인당 1원에서 10원까지, 사찰의 모든 직원은 월급의 1할 이상, 신도들은 10전 이상씩을 헌납하도록 결의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5만3천원과 1944년 같은 방법으로 모금한 8만원이 일본 조선군 사령부에 보내져 조선불교계는 모두 5대의 전투기를 일본군에 헌납했다.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사형집행 직전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으려 했다. 천주교 신자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시 조선 천주교의 최고책임자였던 뮈텔 주교는 안의사가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심지어 그는 “안의사는 절대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라며 고해성사를 집행하려는 빌렘 신부에게 성사집행을 하지 말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유는 안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살인범이라는 것이었다.

또 초기 한국 천주교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황사영은 청나라 황제에게 보낸 백서(帛書)에서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으로 편입하거나 군대 5만~6만명을 보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해달라”고 했다.

최근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펴낸 ‘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는 이 땅의 종교인들이 남겨놓은 부끄러운 흔적들을 담고 있다. 책에는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까지 오욕과 굴종의 시대를 살다간 종교인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또 3・1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 작성자, 김구 선생의 종교편력, 전봉준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가 등 종교계의 숙제와 최시형의 동학 2대교주 승계 베일, 증산 유해를 둘러싼 쟁투와 왼팔유골의 행방, 천주교 첫 순교자의 최후진술과 이적 등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종교사건들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주고 있다.

〈배병문기자 bm190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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