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는 운동권의 딸, 실제 최숙빈은?

2010. 7. 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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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MBC 드라마 < 동이 > 에 등장한 동이 최숙빈(한효주 분)의 가족. 왼쪽부터 아버지 최효원(천호진 분), 오빠 최동주(정성운 분), 동이. 최숙빈 오빠의 실명은 '최동주'가 아니라 '최후'였다.

ⓒ MBC

공노비 출신의 후궁인 동이 최 숙빈(한효주 분)을 다룬 MBC 드라마 < 동이 > 가 후반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동이의 라이벌인 장 희빈(이소연 분)은 동이의 가족관계를 추적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장악원 노비가 되기 이전에 동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디서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장 희빈은 포착했다. 장 희빈이 동이를 후궁으로 추천한 것은 그 때문이다. 후궁으로 책봉되는 과정에서 신원이 낱낱이 파헤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비들의 반체제 비밀결사인 '검계'의 수장으로서 목숨을 잃은 최 효원(천호진 분)을 아버지로 둔 동이는 이 같은 장 희빈의 움직임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죄다 밝혀질 경우 동이의 앞날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물론 이상은 드라마 속의 내용에 불과하다. < 동이 > 의 실제 주인공인 최 숙빈의 조상들이 반체제 운동을 했다는 것은 드라마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에 불과하다.

최 숙빈의 조상은 실제 반체제 운동을 했을까

그럼, 최 숙빈의 조상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이 반체제운동을 했는지 여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는 사회적 지위라는 측면에 국한해 최 숙빈의 조상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문헌이나 비문을 통해 확인된 이들의 지위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최숙빈 조상들의 지위.

ⓒ 김종성

표를 보다 보면, 순간적으로 최숙빈의 조상들이 정2품에서 정1품의 높은 지위를 가졌던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직은 최 숙빈의 아들인 영조가 보좌에 오른 이후에 추증된 것들에 불과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http://people.aks.ac.kr)의 조선시대 과거합격자 명단에서도 이들을 찾을 수 없다. 표에 나오는 추증 관직은 그들의 생전 지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런데 표에서 딱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추증된 것이 아닌 실제 지위를 나타내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할아버지 최태일이 '벼슬을 하지 못한 채 죽은 선비'라는 의미의 '학생'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내용은 최 숙빈의 신도비인 '숙빈 최씨 신도비'에 기록되어 있다. 신도비는 신을 무덤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비석이고, '숙빈 최씨 신도비'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소재한 소령원(昭寧園, 사적 제358호)에 있다. 소령원은 사전에 승인을 얻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으므로, 혹시라도 '무턱대고' 소령원을 방문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숙빈최씨 신도비'가 보관된 건물인 '숙빈최씨 신도비각'. 신도비에는 할아버지 최태일이 '학생'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 숙빈최씨 자료집 4 > .

최 숙빈은 천출인데, 할아버지가 선비?

최 숙빈의 할아버지가 선비였다는 사실에 접하는 순간, 우리는 이 집안이 원래 양반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선비와 양반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란 것은 '글공부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고, 양반이란 '일반인과 구별되는 상위 신분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이 둘은 서로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양반문제 연구자인 송준호의 논문 '조선시대의 과거와 양반 및 양인'에 설명되었듯이 양반이 아닌 평민도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거시험을 목표로 글공부를 하는 선비가 반드시 양반일 필요는 없었다.

사실, 양반이란 것은 법률상의 신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재벌' 혹은 '사회지도층' 등이 대한민국 법률상의 신분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사의 권위자 중 하나인 미야지마 히로시가 쓴 < 양반 > 에 설명된 바와 같이, 양반이란 것은 지역별로 존재한 상류층 클럽의 회원명부 즉 향안(鄕案)에 등록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예컨대, 양반의 고장이라 알려진 경상도 안동에는 지역 유력자들이 참여한 진솔회(眞率會)라는 고급 사교클럽이 있었다. 이 모임의 회원 명부에 기재된 사람들이 소위 양반이었던 것이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양반의 자격 기준이 있었던 게 아니다. 각 지역의 상류층 모임에 가입한 사람들이 양반이라고 통칭됐던 것이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양반이란 신분을 인정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양반에게만 과거응시를 허용한다는 법률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양반이건 아니건 간에, 경제적·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평민도 글공부를 하고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 합격하고 고위직에 오른 사람도 양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 양반 > 에 소개된 송순(1493~1583년)이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신인 송순은 전라도 담양 출신의 선비로서, 중종 14년(1519)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명종 2년(1547)에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개성유수·이조참판·대사헌·우참찬 등을 역임했다.

여기서 '별시문과'란 비정규적으로 열린 문과 과거시험을 가리킨다. 그리고 개성유수는 오늘날의 개성시장, 이조참판은 행정안전부 차관, 대사헌은 감사원장 혹은 검찰총장에 해당한다.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의 정2품 구성원인 우참찬이 오늘날의 어떤 관직에 해당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냥 장관급 정도였다고 이해하면 되리라 생각한다.

송순이 건립한 정자인 면앙정(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다.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위와 같은 관직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송순은 선비인 동시에 고위관료였다. 이런 인물이 역사 드라마에 나온다면, 시청자들은 필시 그를 양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선비로서 과거에 합격하고 외국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개성유수와 이조참판이 된 후에도, 송순은 양반 대우를 받지 못했다. 고향인 담양의 양반 클럽에서 그를 회원으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양 양반들이 송순을 거부한 것은, 그의 외가가 남원에서 담양으로 이주해왔다는 점과 그의 집안에 유명한 관료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완전한 담양 출신이 아닌 데다가 조상들이 '시시'하기 때문에 담양 양반으로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송순이 대사헌이 된 이후에 상황이 달라졌다. 감사원장 혹은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막강한 위상을 갖고 고향을 방문한 송순은 지역 원로들을 위한 연회를 마련했다. 이때 그는 담양 양반들에게 후한 대접을 베풀었다. 이를 계기로 담양 양반들은 회원명부에 송순의 이름을 기입해 주었다. 밥 한 끼 푸짐하게 얻어먹고 나서 송순을 담양 양반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없었다면, 송순은 결코 양반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선비와 양반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았던 시절

이 같은 송순의 사례는 고위층과 양반의 개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선비와 양반의 개념 역시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 이것은 최 숙빈의 할아버지인 최태일이 선비였다고 해서 당시의 이 집안이 반드시 양반가였다고는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양반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최태일이 글공부를 했다는 사실은 그의 아버지인 최말정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물론 최태일이 집안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글공부를 했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험법칙을 볼 때에 그가 공부를 했다는 것은 그의 부모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점은 적어도 최태일 때까지만 해도 이 집안이 천민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천민에게 '학생'이란 칭호가 부여되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최소한 할아버지 때까지는 최 숙빈의 집안이 적어도 평범한 평민 가문 이상은 되었음을 의미한다.

최태일의 손녀인 최 숙빈이 공노비가 된 것은 나중에 발생한 어떤 사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효원 때에 와서 이 집안이 공노비로 전락했기 때문에 최 숙빈이 공노비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최 숙빈이 나이 5세에 고아된 이후에 발생한 어떤 사정으로 인해 최 숙빈이 공노비가 되었을 수도 있다.

드라마 < 동이 > 에서는 최 숙빈의 아버지가 반체제 지도자였다고 설정했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로 이 집안은 할아버지 때에 잠시 글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었을 뿐 별로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가문이었다. 이런 혈통에서 숙종의 후궁이 나오고 영조라는 걸출한 임금이 나왔으니, '개천에서 용 난다' 혹은 '개똥밭에 인물 난다'는 속담처럼 이 경우에 적합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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