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년前 日, '독도는 조선땅' 표기"

엄주엽 기자 2016. 10. 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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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도해일건기’에 들어있는 ‘독도방각도’.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와 같이 붉은색으로 그려 노란색의 일본 영토와 분명히 구분했다. 송휘영 교수 제공

송휘영 교수 논문서 밝혀



1836년 막부 재판 기록

‘죽도방각도’ 지도 첨부

독도, 한반도와 같은 赤色

“180년 전 일본인들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송휘영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덴포 죽도일건(天保 竹島一件)과 울릉도·독도’라는 논문에서 “조선 후기인 1836년 발생한‘죽도일건’ 사건의 일본 막부 재판 과정을 정리한 기록에 포함된 지도에 울릉도는 물론 독도(사진)도 조선의 영토로 표시돼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은 독도의 날(25일)을 앞두고 독도학회와 독도연구보전협회가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주최하는 ‘한국의 독도 영유와 국제환경의 도전 극복’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1836년(일본 연호로 덴포 7년) 발생한 ‘죽도일건’은 해상교역을 하는 아이즈야 하치에몽(會津屋八右衛門)이 일본 막부의 도해금지령을 어기고 울릉도에서 밀무역을 하다가 적발돼 처형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재판하면서 정리해 그 전모를 기록한 것이 ‘죽도도해일건기(竹島渡海一件記)’이다. 이 문서에 ‘죽도방각도(竹嶋方角圖)’라는 제목의 지도가 첨부돼 있다.

이 지도에서는 ‘죽도(竹島)’와 ‘송도(松島)’ 두 섬이 모두 우리나라(한반도)와 같은 빨간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노란색으로 채색된 일본의 오키(隱岐)나 혼슈(本州)와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로 불렀고, 1905년부터 독도를 다케시마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지도는 조선과 일본의 울릉도 영유권을 둘러싼 첫 마찰인 안용복 사건(1693년·숙종 19) 발생 당시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해면허를 얻었던 오야(大谷) 가문의 지도 등을 참조해 하치에몽이 실제 울릉도 도항을 하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송 교수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 에도막부는 ‘죽도방각도’ 등으로 사건 정보를 입수하여 전국에 발령한 ‘죽도도해금지령’(竹島渡海禁止令·안용복 사건 이후 1696년 일본 어민이 죽도로 출어하는 것을 금지한 일본 막부의 명령)의 대상으로 ‘죽도’뿐만 아니라 금지령에 도명이 적혀 있지 않은 ‘송도’까지도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죽도(울릉도) 도항을 감행했던 하치에몽은 물론 중앙정부인 막부도 죽도·송도를 한 묶음으로 해 조선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명백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동해연구실장이 ‘근대 독도 포함 해양 관련 역사분야 성과와 한계’,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독도 주변수역 이용에 관한 법적 고찰’,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일어업협정과 독도영유권 훼손’을 주제로 각각 발표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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