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멘토질 그만두고, 차라리 셀프 디스!

2016. 8. 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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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40대 중반 부서 책임자 “왠지 공감능력 부족한 것 같아 걱정”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직장에서 부서 책임자인 4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저는 부서원들에게 자주 밥도 사고, 생일 같은 것들도 나름 열심히 챙긴다고 하지만 왠지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반면에 제 이웃 부서장은 비교적 과묵한 편인데

따르는 직원들이 많은 편이라는 사내 평판이 있습니다. 솔직히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면서 한편으로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윗사람들은 윗사람들대로 제가 평직원이었을 때는 기대를 많이 걸었는데, 막상 간부가 되어서는 평범하다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 저도 나름 열심히 애쓴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A.상담을 요청하신 분의 상황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매니저급 관리자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라 짐작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서원들과의 호흡, 임원들의 맞장구가 기대만큼 신통치 않은 데서 오는 스트레스인 듯합니다. 저는 이를 방송의 ‘리액션(반응)’에 비유해 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리액션이 대세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방송도 그렇고 학업과 직장생활, 인생 전반이 그러한 듯싶습니다. 인기 높은 방송 프로그램의 공통점들은 하나같이 리액션을 잘 포착하고 화면에 멋지게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대표적인 피디(PD)들이 예능프로에서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삼시세끼>의 나영석 같은 사람들입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녹화와 편집 과정을 거치는 동안 출연자들 개개인의 미묘한 부분을 얼마나 화면에 잘 담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리액션은 방송의 제작 시스템에도 큰 영향을 미쳐, 과거에는 야외 녹화할 때는 달랑 카메라 한 대가 있으면 되었던 것이 지금은 출연자 수에 비례해 10여 대의 카메라와 스태프를 동원합니다. 당연히 녹화 과정뿐 아니라 편집 과정에서도 수십 배 수고가 들어갑니다. 비선형 편집기술(편집되는 컷의 위치와 순서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영상을 끼워넣거나 뺄 수 있는 편집 방법)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애당초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더 멋진 리액션을 잡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예산과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양방향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기술 진보는 방송 제작과 사람들의 취향과 습관까지 바꿔놓았습니다. 제작진이 일방적으로 전달만 해서는 안 되고 시청자와 함께 만드는 시대입니다.

직장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는 상명하달, 일방형 경영이었다면 요즘은 ‘함께 만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조직을 이끌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당연히 양방향 소통 능력이 요구되고, 그걸 위해서는 리액션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같은 실력이면 리액션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대학에서도 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질문을 많이 던지는 학생이 좋은 학점을 받기 마련입니다. 직장에서도 회의 시간에 아무런 표정 없이 있다 나가는 사람보다는 뭔가 동참하려는 동작을 보여 주는 사람이 관심을 끌기 마련입니다. 리액션을 잘 이끌어내는 리더가 요즘 시대에 필요한 리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종종 대중강연을 하는데, 여기서도 강연의 성패는 청중들의 리액션에 달려 있습니다. 초반부터 자연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오고 표정이 살아 있는 날은 교감이 잘되어 연단에 선 저는 마치 작두 타는 무당처럼 홀린 듯 얘기를 술술 풀어나갑니다. 반면에 ‘당신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표정으로 죽음 같은 침묵을 흘리고 있는 곳에서는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강연자란 청중들의 감성을 잘 파악해야 하는 ‘감성 노동자’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리액션을 받을 수 있을까. 이는 강연자뿐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도 모두 고민하는 화두입니다. 첫째로 ‘셀프 디스’입니다. ‘디스’는 ‘disrespect’의 준말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힙합에서 주로 쓰이는 개념이지만, 요즘은 사회 전반에 이 개념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정치권, 경영자, 홍보에 이르기까지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귀를 열려면 우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허물을 보여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공한 이야기보다는 실패한 이야기, 나의 상처를 솔직하게 보여 줘야 청중들은 마음을 엽니다. 자기의 부끄러웠던 부분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성직자들이 역시 인기입니다. 대중들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이 ‘잘난 체’, ‘아는 체’입니다.

두 번째, 쓸데없이 멘토 노릇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이 진지하게 물어오기 전까지는 충고나 훈수를 자제하란 뜻입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직원들에게 밥 사고 욕만 실컷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직위가 높다고 사사건건 빨간 펜을 들고 첨삭 지도하겠다는 태도로 임하는 까닭입니다. 견장을 떼고 고민을 나눈다면 진정한 의미의 멘토입니다. 상대방이 바라는 것은 자기의 고민을 함께 들어 줄 ‘귀’이지, 시끄러운 ‘입’이 아닙니다. 바보처럼 ‘큰 귀’가 되어 보세요.

세 번째, 유머입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아쉬운 점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그것을 유머와 웃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스탠딩 코미디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덴마크 출신의 미국 코미디언 빅토르 브로게는 생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웃음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해 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

최근 브렉시트 사태로 영국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 데이비드 캐머런이 의회 마지막 연설에서 제일 끝으로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저도 한때는 미래였다고요!” 팽팽했던 영국 의회장에서 이 순간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박장대소하며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두고두고 제 뇌리에 남았습니다. 유머가 어렵다고요? 최고의 유머는 자기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 것입니다.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MBC 기자

* 상담을 원하시는 독자는 손 교수 이메일(ceonomad@gmail.com)로 연락해 주세요.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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