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안을 위한 변론..주디스 버틀러 '혐오 발언'

입력 2016. 8.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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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문제 다룬 '지상에서 함께..' 나란히 번역 출간
주디스 버틀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팔레스타인 문제 다룬 '지상에서 함께…' 나란히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여성혐오 발언을 화자만 바꿔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술에 '한남충'(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용어)들도 나름대로 반격한다. "원래 페미니즘이란 그런 게 아니다"라며 외국 페미니즘 이론을 읊는데, 이때 동원하는 대표적 이론가가 주디스 버틀러(60)다. 그가 이미 1990년에 쓴 '젠더 트러블'에서 젠더는 물론 생물학적 성(sex) 구분마저 사회적 산물이라며 해체한 마당에 미러링은 철지난 이분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무색하게 미러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버틀러의 책이 번역·출간됐다. 1997년작인 '혐오 발언'(원제 'excitable speech')에서 그가 펼치는 논지는 '혐오 발언은 듣는 이를 침묵시키지만은 않으며 오히려 되받아쳐 말하는 저항의 계기가 된다'로 요약된다. 책은 미러링을 둘러싼 각종 논란은 물론 혐오 발언을 법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버틀러는 물론 혐오 발언 자체에 반대한다. 그러나 소수자 혐오 발언이 듣는 이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이를 규제하는 게 마땅한지, 법원 같은 국가권력에 기대지 않은 채 저항할 여지는 없는지 등의 문제를 두고 몇몇 이론가들과 대립한다.

철학자 레이 랭턴은 혐오 발언이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곧 차별행위이며, 듣는 이를 침묵시키는 효과를 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백인 전용' 같은 언어행위는 유색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고 그들에게서 권력을 박탈해 결과적으로는 유색인종을 종속시킨다. 이는 곧 혐오 발언을 국가가 규제해야 하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버틀러는 그러나 혐오 발언의 절대적 효과를 의심한다. "많은 언어 행위는 협의의 '행위'이지만, 그것들 모두 효과를 생산할 수 있는 권력을 갖거나 일련의 결과를 개시하는 것은 아니다." 혐오발언의 효과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권력에서 비롯될 뿐 말 자체에 내재하지 않는다. 모든 혐오발언자가 "빛이 있기를!"이라는 한마디로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 같은 권력은 지니는 것은 아니다. '일간베스트'를 비롯한 인터넷에 여성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이들이 주로 누구인지 떠올려보면 된다.

"혐오 발언의 결과로 겪는 고통을 축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혐오 발언의 실패가 비판적 대응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기 위해서"라는 설명처럼 버틀러는 혐오 발언을 듣는 소수자의 저항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되받아쳐 말하기'(speaking back)나 '그것으로 말하기'(speaking through)를 통해 혐오 발언이 원래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퀴어'(queer)는 원래 동성애자를 모욕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소수자 해방운동의 상징처럼 쓰인다.

이런 맥락에서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가 오히려 소수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사법적 판단은 자의적·편파적일 수 있다. 또 국가에 판단을 맡긴다면 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혐오 발언은 면죄부를 받는 셈이 된다. 버틀러는 국가가 혐오 표현을 '승인'함으로써 혐오 발언을 '생산'한다는 주장까지 나아간다.

정치철학·윤리학자로서 버틀러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저작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2012)도 함께 번역돼 나왔다. 2004∼2012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주제로 세계 곳곳에서 강연·발표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헝가리·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인 버틀러는 이 책에서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고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모두에게 투표권을 포함해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한 국가 방안'(one-state solution)을 지지한다. 두 나라의 독립적 공존을 선언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한 국가 방안은 팔레스타인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 지역 특성상 이스라엘 우파와 대다수 유대인들의 동의를 얻어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대안이다.

버틀러 역시 한 국가 방안이 이상적 목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논의하지 않는다면 "끔찍하리만치 빈곤한 세계일 것"이라며 이스라엘 국가폭력의 정치·종교적 바탕인 시오니즘(유대인 민족국가 건설 운동)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를 계속 한다.

버틀러는 두 가지 단계적 전략을 택한다. 먼저 발터 벤야민·한나 아렌트·에마뉘엘 레비나스·프리모 레비 등 유대인 지식인들의 논지를 끌어들여 시오니즘을 넘어선 유대성(jewishness)을 모색한다. 이를테면 한나 아렌트에게 동거는 정치적 삶의 전제 조건이다. "지상에서 누구와 공존할지는 선택 불가능하다. 동거는 학살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모든 정치적 결정의 무선택적 조건이다."

그러면서 유랑과 기다림, 즉 디아스포라가 팔레스타인과 공유하는 유대인의 특성이라며 추방당한 이들의 연합을 역설한다. 애굽을 떠나 사막에서 방랑하는 모세의 이미지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겹친다.

두 책은 동시대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인 버틀러의 다방면에 걸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1999년 미국 학술지 '철학과 문학'이 '최악의 저자'로 꼽을 만큼 난해한 문장은 감수해야 한다.

혐오 발언 = 알렙. 유민석 옮김. 372쪽. 1만8천원.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 시대의창. 양효실 옮김. 464쪽. 2만5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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