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친구" 20년지기 포켓몬의 치명적 매력

2016. 7. 1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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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포켓몬 고’ 열풍 뒤엔 캐릭터

게임·영화·애니로 즐기던 캐릭터
이젠 증강현실 게임으로도 나와

피카추·이상해씨·꼬부기·파이리…
151종에서 시작, 무한진화·변종

특징·이름 외웠던 ‘포켓몬 세대들’
이젠 직접 괴물 잡으려 바깥으로
길위서 다른 사용자 직접 만나며
함께 게임했던 세대들 연대 즐겨

포켓몬

“새로운 중생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999년 11월 미국 <타임>지는 ‘포켓몬스터의 침공’이라는 제목의 표지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기사는 미국 어린이들을 중생대 공룡이나 암모나이트 같은 생물을 닮은 수상한 괴물들에게 홀딱 빠지도록 한 게임업체 닌텐도를, 마을 어린이들을 통째로 홀려 사라졌다는 동화 속 ‘하멜린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1999년 11월10일 미국 전역에 공개된 영화 <포켓몬 더 퍼스트 무비>는 개봉 첫날 1010만달러, 그해 연말까지 836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면서 그때까지의 미국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 괴물들은 미국 침공에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포켓몬스터 게임 소프트웨어는 전세계에서 1억8600만개 넘게 팔렸으며 관련 산업을 모두 합친다면 일본에서 1조엔(약 10조원), 세계적으론 2조엔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아이들이 모여서 게임하는 포켓몬카드는 2013년까지 73개국에서 200억장 팔렸다고 한다.

2016년, 중생대로 들어가는 입구가 다시 열렸다. 20여년 전 포켓몬스터 주인공 10살 지우가 집을 떠나 관동지방과 오렌지 제도, 성도 등을 헤매다 이상한 괴물들과 마주치는 광경에 넋이 나갔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포켓몬 고’ 앱을 실행하고 스마트폰을 치켜들어 집 주변, 도심 한가운데서 직접 괴물들을 잡으러 다닌다. 집 근처 공원에서 갑자기 피카츄나 이상해씨, 꼬부기, 파이리와 마주칠 때, 그 옛날 포켓몬스터 카드를 수집하며 151가지 기본 캐릭터의 특징과 이름을 외웠던 포켓몬 세대는 이젠 정말 몬스터들을 길들이는 포켓몬 트레이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언제가는 그중 가장 뛰어난 포켓몬 마스터까지 될 수 있다는 꿈에 사로잡힌다. 세계적으로 매일 1천만명 넘는 사람들이 포켓몬 고 앱을 내려받아 길을 떠나는 현상은 포켓몬스터의 매력을 빼놓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을 홀려낸 피리 소리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포켓몬스터는 1996년 일본 게임프리크사가 만들어낸 게임에서 시작됐다. 가상의 생명체, 몬스터와 인간만 살고 있는 세상에서 8개 지방 포켓몬 체육관의 관장을 이겨 배지를 모은 뒤, 포켓몬 리그에서 사천왕과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게임이다. 애니메이션과 만화에선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이 세상의 모든 포켓몬을 다 잡겠다는 꿈을 가진 지우라는 10살 소년이 몬스터볼을 들고 길을 떠난다. 세상에 과연 몇 종류의 포켓몬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른들은 지우에게 기술이나 레벨만 있다고 해서 뛰어난 트레이너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속삭인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게 바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는 길이란다.”(오박사)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기술은 18가지로 포켓몬 세계 속 생명체의 관계는 넓고도 복잡하다. 처음 151가지로 시작한 포켓몬스터는 진화와 변종을 거듭하며 2016년까지 751종으로 늘어났다. 변이 가능성이 무한한 것은 포켓몬스터가 본래 잡종이기 때문이다. 동물·풀·꽃·벌레·전기 등 몬스터를 나누는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괴물들은 대부분 여러 장르에 걸쳐 있다. 등에 씨를 매달고 있는 두꺼비 괴물 이상해씨는 그 씨에서 싹이 나면 이상해풀, 더 나아가선 한층 전투력이 높은 이상해꽃으로, 잡종 몬스터 뚜벅초는 독초 라플레시아로 진화한다. <포켓몬 마스터 되기>라는 책을 쓴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과 김윤아 겸임교수는 바로 이 잡종성이 포켓몬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진단한다. ‘다수다양성’(다양성을 지닌 채 집단으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어린 신세대들은 인종/계급/종교 등으로 범주화되고 경계지어진 어른들의 세계보다는 괴물들의 카니발에 끌렸다.

머리가 2개 달린 몬스터 두두가 3개로 늘어나면 두드리오(미국에선 두트리오)가 되는 것처럼 포켓몬은 진화 상태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주인공 몬스터 피카츄는 새앙토끼의 영어 이름 피카와 일본어로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를 합성한 이름이다. 포켓몬은 국경을 넘어가면서 여러 나라의 동물 소리와 애칭에 맞게 이름도 바꾸며 진화했다. 게임 소프트웨어와 함께 애니메이션, 피규어, 카드 등을 동원해 포켓몬스터를 파는 믹스 미디어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태생부터 하이브리드인 이들 괴물은 여러 언어, 매체를 섞어가며 지구촌 어린이들에게 포켓몬 도감을 완성하고 싶다는 열망을 심는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스마트폰과 게임 소프트웨어, 증강현실이 만난 포켓몬 고는 포켓몬스터의 잡종적 태생에 더없이 걸맞은 선택인 셈이다.

또 김윤아 교수는 괴물들을 몬스터볼에 가두는 게임의 능동성에 주목한다. 주머니 속에 괴물을 넣고 다니는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힘이 세지고 싶다는 욕망을 그 보라색 공에 투사한다. 알고 보면 나쁘고 무섭기만 한 몬스터는 없다. 죽음과 폭력 없는 세상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여행을 해낸다는 포켓몬 이야기는 안전하고 낭만적인 성장담이다.

그러나 게임 네트워크와 그래픽이 엄청나게 진화한 지금 어른이 된 그들이 이 오랜 게임으로 돌아와 다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포켓몬 고 열풍을 목격하며 <타임>지는 포켓몬볼이 일으킨 연대감에 주목했다. 포켓몬 고를 만든 나이앤틱사가 먼저 출시한 게임 잉그레스엔 참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포켓몬스터를 다시 소환하자 ‘90년대의 아동’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90년대에 포켓몬카드를 주고받던 그들은 지금 빨리 몬스터들을 얻어서 체육관에 가 다른 사용자들과 대결하기를 꿈꾼다. 새로운 기술보다는 함께하는 게임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하다.

<드래곤볼> 주인공 오공이가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청년으로 자란 것과는 달리 포켓몬 지우는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0살 어린이다. 지금 그 어린이는 친구를 찾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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