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도 僞作인 줄 알면서 사인한 적 있다"

허윤희 기자 2016. 7. 1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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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술품 감정전문가 인터뷰] "클로델도 무명화가 작품에 사인.. 佛작가 랑시악, 위작 주장했으나 진품 보증서 확인된 사례도.. 이젠 작가 말이 聖域 아닌 시대, 작품 이력·보증서가 가장 중요"

"피카소 시대였으면 작가가 '내가 그렸다' 하면 끝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제로 피카소는 자기 그림이 아닌 걸 알면서도 사인을 해서 친구들이 팔아서 돈 벌게 해준 일이 있었고 카미유 클로델은 무명작가들이 '나 돈 필요해' 하면 자기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미술시장에도 시스템이 들어왔다. 시장이 커지면서 작가의 말을 믿지 못하는 시대가 온 거다."

프랑스 미술품 감정 전문가들은 8일 인터뷰에서 "작품의 진위가 논란이 될 때 작가의 말이 성역(聖域)은 아니다"고 했다. 장 미셸 르나드(64) 프랑스전문감정가협회 부회장은 "작가가 천재일 수는 있지만 그도 사람 아닌가. 사람이기 때문에 거짓말할 수 있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했고, 프랑스 예술법 전문 변호사인 알렉시스 푸놀(30)씨는 "위작(僞作) 문제가 법정 공방으로 비화할 때 작가의 의견은 하나의 증거 자료로서만 취급된다. 작가라서 발언에 더 무게가 실리는 건 아니며 발언에는 명확한 근거 제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구에선 작가 판단이 최우선"이라는 이우환 작가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얘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7~8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주최한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을 인터뷰했다.

◇"작가 말이 성역은 아냐"

두 사람은 이우환 위작 사건이 "특이하다"고 입을 모았다. "생존 작가가 '내 작품 아니다'고 한 경우는 흔하지만 이번처럼 감정 전문가가 위작이라고 하는데 작가가 '내 작품 맞다'고 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것이다. 르나드 부회장은 "작품이 얼마나 금전적 가치를 갖느냐와 연관됐기 때문인 것 같다. 유럽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작가들은 피카소, 미로 등 생존 작가가 아니다"라며 "이우환은 '비싼' 생존 작가이고 해외에서도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 같다"고 했다.

푸놀씨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랑시악(Bernard Rancillac·85) 위작 사건을 소개했다. 지난해 벨기에의 한 갤러리에 나온 전시품을 두고 작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했으나 이후 진품 보증서가 확인됐다는 것. 푸놀씨는 "아직 판결이 끝난 사건은 아니지만 재판에선 작품 자체보단 진품 보증서가 효력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윤중식(1913~2012) 화백이 2007년 서울옥션 경매 출품작을 위작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정공방까지 갔다가 1976년 전시도록에서 작품 도판이 발견되자 진품으로 인정하는 소동도 있었다.

◇"작품 이력과 보증서가 가장 중요"

프랑스에선 미술품을 거래할 때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반드시 보증서를 제공해야 한다. 작가 서명이나 보증서 위조가 발각될 경우, 판매자를 강력히 처벌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르나드 부회장은 "프랑스에서 보증서는 판매 기관이나 작품 특성에 관계없이 엄격히 법으로 규정돼 있다"며 "보증서나 거래 이력이 안 나온다면 그 자체로 의심할 만하다"고 했다. 지난해 9월부터 1000 유로(약 128만원) 넘는 작품에 대해선 현금으로 거래할 수 없다. 푸놀씨는 "마약, 매춘, 무기 밀매처럼 미술품 거래 역시 현금을 통해 돈세탁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술시장은 글로벌 마켓이기 때문에 현금 거래는 더욱 위험하다"고 했다.

이들은 "건전한 미술시장을 만들기 위해 규제는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개입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 "다만 화랑, 경매사, 감정 전문가 등과의 논의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작가의 견해와 전문가 견해가 상충될 때 서구 미술계는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질문에는 "법적으로는 작가 의견을 참고하지만, 법원이 위촉한 전문가의 감정이 가장 우위에 있다. 중요한 건 작품의 이력과 보증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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