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사라지지 않아 .. '더 좋은 사전' 필요할 뿐

기자 2016. 6. 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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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영국 옥스퍼드 사전 편집실 모습.

검색, 사전을 삼키다 / 정철 지음 /사계절

‘검색, 사전을 삼키다’를 받아들고는, 책상 위에 놓인 사전들을 일별한다. ‘국어사전’이 서너 종에, ‘영어사전’과 ‘한자사전’, 그 외에도 몇몇 사전이 눈에 띈다. 세월의 더께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먼지가 앉은 걸 보니 사용한 지 꽤나 된 모양이다. 비록 생계형일망정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위하면서 검색창을 연다. ‘세상이 급변하는데 사전 속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간편하게 ‘검색’하면 될 것을, 굳이 사전이나 뒤적이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검색, 사전을 삼키다’의 제목만 봤을 때는 덤덤했다. 하지만 띠지 같은 표지의 “당신의 마지막 사전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도발적(?) 질문 앞에서는 마냥 덤덤할 수는 없었다. 네이버와 다음, 이제는 카카오에서 웹사전을 만들고 있는 저자의 경험담에 얽힌 주장이 오늘 우리 시대 사전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 “모아서 정리”하는 일이 마냥 좋았던 저자는 계몽사 ‘컬러학습대백과’를 보고 자란 ‘백과사전 키즈’다. 우표, 음반 등을 모으며 각종 어휘에 매료되었던 저자는 이제 웹세상에서 “백과사전을 편집하고 정보를 분류하는 사람”이 되었다. ‘검색, 사전을 삼키다’는 “정보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품고 살았던 저자의 작은 자전(自傳)이기도 하다.

저자는 사전의 위기라는 말에 반은 동의하면서도 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종이사전만 놓고 보면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개의 검색 서비스들이 “대부분 첫 번째 검색 결과로 사전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사전은 여전히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필요한 콘텐츠라는 것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위기가 맞다. “다수의 사전 출판사가 편집팀을 해체했고, 개정판이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웹사전도 더 이상 진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웹은 대안으로 집단지성에 의지하고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저자는 “일반인들이 집단지성으로 만들어 나가는 사전이 있다면, 전문가들이 학문적인 방법론으로 만들어 나가는 사전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검색 서비스가 사전에 집착하는(?) 이유를 저자는 쿨하게 설명한다. 검색 서비스는 돈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적인 검색어에 특화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서 사전은 “여러 분야에 걸쳐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작성된 문서”라는 점을 앞세워 “검색 결과의 전반적인 품질 유지를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한 콘텐츠”라는 것이다. 저자는 종이사전과 웹사전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과 검색이나 모두 지식을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지식과 지식 사이를 점프해 가며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검색’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사전’이라는 올드한 매체를 이용하는 방법을 세세하게 일러준다.

물론 종이사전에 무한 애정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적잖이 불편한 대목도 있다. 다양한 사전이 주는 매력을 “학습의 유용한 도구”로 한정한 것이나, “검색이라는 넓은 바다에 모든 사전과 언어 자원이 데이터로 하나하나 쌓이면서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했다”는 대목에는 다른 견해를 피력할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전은 학습의 유용한 도구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기능이 있고, 검색을 통해 사전적 내용을 찾는 이들은 최근에는 편집자 등 소수일 수밖에 없다.

웹 혹은 앱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책은, 더더욱 사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명력 넘치는 콘텐츠들이 새롭게 빛을 발할 것이기에 ‘언젠가’ 하는 낙관적 기대를 펼 수 있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항목 수를 줄이자. 엄격히 선별한 이 소수의 항목들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학파가 되어야 한다”는 등 ‘좋은 사전’을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은 사전 애호가라면 종이사전, 웹사전을 가리지 않고 기억할 만한 주장들이다. 오랜 시간 웹사전 기획자로 일한 저자는 책 말미에 “좋은 사전이 좋은 검색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일견 좋은 검색을 위해 좋은 사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전으로 세상을 만났던 저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좋은 사전에 방점이 있는 건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장동석 출판평론가·기획회의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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