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천방지축 아이들은 개나 고양이?

김헌식 문화평론가 2015. 8. 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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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데일리안
최근 노키즈존을 선언한 매장들이 생기면서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다.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어린아이의 입장을 불허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어린이를 입장불허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들어올 때 문제를 일으킨다는 인식 때문이다. 즉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이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다.

소란스럽거나 안전사고를 일으키는가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겠다. 그동안 많은 공공의 장소에서 일어난 사례들 때문에 이에 호응이나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키즈매장의 조치는 고객의 편의와 입장을 생각해서 따로 구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현행관련법이나 인권 침해의 요소가 있을 수 있다.

우선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공공의 장소에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출입금지시키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향후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며 아예 원천적으로 입장을 금지 시키고 있다. 잠재적인 행위가 예상되기 때문에 입장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은 적절한 수준을 벗어난 과잉조치일 수 있다. 더구나 애완 동물이야 집에 두고 나온다고 하지만 유아들을 집에 두고 나올 수 없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애완동물보다 그 보호자들에게 가혹해보인다.

일부에서는 공정거래법에서 일반불공정거래의 거래거절과 차별적 취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거래거절은 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의 개시를 거절하거나, 계속적인 거래관계를 중단하거나, 거래하는 상품이나 용역의 수량·내용을 현저히 제한하는 행위 (공정거래법 23조 ①항 1호)이다. 차별적 취급은 사업자가 거래상대방에 대해 거래지역이나 가격, 기타 거래조건을 차별하여 경쟁사업자나 거래상대방의 지위를 약화시켜 자신의 지위를 유지 · 강화하는 행위 (공정거래법 23조 ①항 1호)이다.

이런 법적인 관점에 따르면, 노키즈존이 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를 거절하고 있으며, 거래조건을 차별화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 강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노키즈존매장이 스스로 아무런 이유없이 어린이 입장을 거절한 것은 아니다. 즉, 관건은 그것에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노키즈존은 어린이를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어떤 유해한 사물이나 동물과 같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반인권적이다. 그들이 출입제한을 받으려면 그 출입제한으로 얻는 이득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정서적 육체적으로 해가 되는 서비스에서 보호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유해콘텐츠나 상품의 소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제한을 가하는 경우에는 차별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이러한 고려가 없다. 영업을 하는 이들과 그 영업장소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특정인들만을 위하려는 것이다.

또한 출입금지 연령 기준이 자의적이고 포괄적이다. 공연장에서는 입장연령제한을 작품의 유형에 따라 구분하지만, 노키즈존 매장은 일률적으로 13세 미만의 아동은 들이지 않는다. 사실상 초등학생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인 셈이다. 이 기간은 아동이나 부모에게 매우 오랜 시간이다. 특정공간에 잠재적 피해나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지시키는 것은 수치심과 모멸감을 유발할 수 있다. 어린이가 마치 질서 교란자나 파과자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책임을 어린이에게 전가하고 있다. 공공의 공간에서 어린이가 문제를 일으킨다고해도 그것은 어린이 스스로의 문제라기 보다는 보호자의 책임이 클 것이다. 어린이를 제대로 관리 보호하지 못한 책임은 그 보호자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책임있는 행동을 스스로 만들어 주지 못한 상황에서 어린이들에게 책임을 오로지 묻는 듯한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다른 성인들을 위해 어린이들을 문제시하는 일은 세대통합적인 관점에도 배치된다.

잠재적 위험을 판단하는 기준이 개별적인 대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연령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평등성을 원칙에 어긋난다. 만약 이런 조치가 합리화 된다면 고속버스와 같은 공공교통수단에 유아들의 입장이 금지될 것이다. 잠재적인 소란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초등학교 학생을 둔 부모들의 행복추구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현실에서 가족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노키즈존 공간의 확산은 이런 문화생활을 과도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출산과 양육 측면에서 부담을 주는 조치이기도 하다.

노키즈존은 모호하고 광범위한 판단과 자의적인 평가 기준을 통해 어린이와 그 보호자를 인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할 것을 단지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전에 배제하는 것은 차별적이다. 구체적인 행위에 따라 징벌적 배제가 이뤄져야 한다. 즉 특정 공간에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 개개인들에게 퇴장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일률적으로 입장 금지 시키는 것은 과잉조치다. 어린이는 모두 위험한 존재가 아니며 인격적인 존재들이다. 실제로 벌인 위해한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법치국가이며, 인권국가의 원칙에 부합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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