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성차별적, 한국어는 신분차별적 언어?
[오마이뉴스 노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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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알파벳 |
ⓒ sxc |
문법성은 세상을 언어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즉, 문법성을 쓰는 사람들은 세상 만물을 일단 남성, 여성(그리고 중성)으로 나누고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법성이 없는 한국어에서는 세상 만물을 어떻게 구분할까?
한국어에서는 대명사를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문법성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법성은 대명사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 언어들은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곡용하거나 동사가 활용할 때 문법성에 따라 변한다.
한국어에서도 명사에 따라 용언의 어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존대법이다. 주체가 나보다 높은 사람이면 서술어에 선어말어미 '시'를 붙이고, 상대방이 나보다 높은 사람이면 종결어미 '요'나 '습니다' 등을 붙이고, 서술어의 대상이 나보다 높은 사람이면 단어를 바꾼다(이를테면 '주다'를 '드리다'로 바꾼다). 이것을 각각 주체 존대, 상대 존대, 객체 존대라 한다. 따라서 한국어는 세상 만물을 나보다 신분이 높으냐 낮으냐로 구분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어란 언어 자체가 높낮이를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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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 동상 |
물론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존대하는 '매너 있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적 서열을 언어생활에서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우리는 친근한 사람과 서먹한 사람을 구별하고 싶어 한다(예전에 어떤 모임에 참석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이 전부 자기네끼리 반말을 하면서 내게만 높임말을 할 때 소외되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라는 언어 자체가 높낮이를 전제한다는 사실이다. 영어에서 명사를 인칭 대명사로 나타내려면 선행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한국어에서 어미를 선택하려면 주체, 상대방, 대상이 나보다 높은지 낮은지 알아야 한다. 이것을 문법성에 빗대어 문법존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제 드신 막걸리 상했어요"라는 문장과 "어제 마신 막걸리 상했어요"라는 문장을 비교해보자. '상했어요'의 해요체를 쓴 걸 보면 상대방은 말하는 이보다 높거나 격식을 차리는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문장에서 '먹다'의 높임말 '들다'를 선택하고 주체 존대의 선어말어미 '시'를 붙인 것을 보면 '드시다'의 주체는 상대방이다. 이에 반해 두 번째 문장에서는 예사말인 '마시다'를 썼으므로 주체 존대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대방이 아니라 말하는 이가 '마시다'의 주체임을 알 수 있다.
영어 문장을 번역하다 보면, 문법성이 문장의 의미(이를테면 대명사의 선행사)를 이해하는 단서로 쓰일 때가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에서도 문장에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보를 문법존대를 통해 알아낼 수 있다.
한국어의 존대법, 친소 표지로 바뀌었으면
일각에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별명을 부르고 반말을 하며 권력 관계를 극복하려는 실천을 벌이는데, 이 글에서 보듯 한국어의 존대법은 현실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거나 고착화하는 것 외에도 순수한 문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영어의 문법성이 언어 생활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문제가 있듯―이를테면 "Is it your brother or your sister who can hold his breath for four minutes?"(출처: 스티븐 핑커, <The Sense of Style>)라는 문장에서 'his'라는 대명사가 남성과 여성를 통칭하는 것―한국어의 문법존대도 나이, 신분, 지위의 차이를 강요하는 문제가 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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