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잘못 만져 자꾸 덧나는 상처

2015. 6. 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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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명백한 표절에도 모호한 언어로 응답해 독자들 분노 부채질 신경숙은 '공론장'으로 나와 독자의 요구에 답해야

문학은 '관념의 체조'가 아니다.

1973년에 쓰인 글이 있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백수(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기 각성의 몸부림이다.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이다. 문학은 한 민족이 그곳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는, 언제나 터져 있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김현·김윤식, <한국문학사>)

2015년 위기의 한국문학이 회고하는 '리즈 시절'인 1970년대에도 이런 탄식이 나왔다.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이지만, 서문인 이 글은 문학비평가 김현(1942~90)이 썼다. 김현은 다른 글에서 소설가 이광수를 일러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와 같다"고 했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지만, '민족개조론' 운운하며 친일로 돌아선 그는 한국 근대문학의 아물지 않는 상처일 수밖에 없다. 2015년 6월에도 한국문학의 '망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돌연 터져나왔다. 그것은 소설가 신경숙(52)이다. 신경숙 또한 한국문학의 상처로 기억될 것인가.

문학 없이도 사람은 산다. 문학이 생활필수품은 아니다. 칫솔질을 안 하면 치아가 썩지만, 문학을 읽지 않았다고 정신이 썩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인간 정신의 우듬지이지만, 우듬지가 잘렸다고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우듬지는 나무의 꿈이고, 문학은 인간의 꿈이다. 둘의 꿈은 종이 다르다. 꿈이 없어도 사람은 산다.

사람 없으면 문학 없다

문학이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믿음과 의지 때문이다. 인간 존엄에 대한 준엄한 확인과 인간 삶의 세목에 대한 긍정을 문학은 수행한다. 더러움과 아름다움, 시궁창과 천국이 수시로 공존하는 인간 삶을 문학은 가장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가장 정교하되 구체적인 언어로 드러낸다. 더구나 모국어로. "내 소설이 착하기만 하고 현실을 수용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아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름답다는 것을 내 문장으로 증거하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온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내 독자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경향신문> 6월23일치) 신경숙의 이런 문장은 표절과는 별개로 넉넉히 인정돼야 한다.

신경숙의 작품 다수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오로지 고통을 확인하기 위해 그 많은 독자가 생긴 것일 수 없다. 고통 너머를 희망하는 욕망 때문이다. '다른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면, 문학을 읽을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올해 최저시급 5580원으로는 시집 한 권도 살 수 없다. 이 현실의 변혁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문학은 대중에 영합하는 1만원 안팎의 '최루제'에 지나지 않는다.

신경숙은 좋은 문장을 소유한 소설가다. 거기엔 처연하지만 위안이 있고, 모호하지만 깊이가 있다. 문장은 문학을 얹는 그릇이다. 때론 그릇 자체가 문학 자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저마다 제 그릇으로 세계를 담는다. 몰래 남의 그릇을 갖다쓰고 모른 체하면 도둑질이다. 그것을 표절이라 한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은 신경숙은 작가 생명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극우 성향의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을 표절했다는 지적은 신씨의 소설을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이들조차 분노하게 만들었다. 신씨에겐 야박하겠지만 인지상정이다. 사람 없으면 문학 없다.

훔쳤으면 사과해야 한다. 잘못을 직시해야 한다. 신경숙은 그의 출세작이자 자전적인 소설 <외딴 방>(1995)에 이런 문장을 썼다. "정면으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 얼른 뚜껑을 닫아버리며…." 이 문장을 쓴 지 20년이 지났다. 지금 세상은 신경숙에게 응시와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신경숙의 표절 사태는 묻고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지난 6월16일 소설가 이응준(45)이 한 인터넷 매체에 글을 올렸다. 신경숙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70)의 소설 '우국'(1960)을 표절했다는 내용이다. 문제가 된 신씨의 작품은 단편소설 '전설'(1994). 한 문단 전체가 사실상 동일하다. 특히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표현은 표절을 더욱 의심 없게 만들었다. 이 표현은 '우국'을 번역한 시인 김후란이 원문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2000년 문학비평가 정문순이 지적했지만 유야무야됐던 내용이기도 하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천황의 복원을 꿈꾼 극우 성향의 작가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연설문 일부를 도용해 자신의 말인 것처럼 읽었다면? 대통령은 사과해야만 했을 것이다. 신경숙의 표절이 놓인 맥락이다.

하루 뒤 신경숙은 출판사 창비를 통해 이응준의 주장을 반박했다.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라는 표현은 작가의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작가는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진실은 작가의 생명이다. 그런데 진실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문장은, 그가 소설에서 그토록 공력을 쏟았던 문장과 천양지차다.

더 고약한 사정도 있다. "문학 텍스트만이 갖는 반전이 이번 심사에서 통쾌하게 이루어졌다!" 요즘 서울 시내버스에서 볼 수 있는 광고판 문구다.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홍보하면서 내건 문장이다. 문장은 신경숙의 것이다. 신경숙의 심사평 원문(계간 <문학동네> 2015년 봄호)에는 광고와 달리 느낌표(!)가 없으며,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돼 있다. 광고는 과장이다. 과장의 이유는 돈이다. 신경숙은 앞으로 문학상 심사를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동인문학상의 종신심사위원 자리도 내놨다. "저보고 문학권력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내려놓을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니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뿐이어서…."(<조선일보> 6월24일치)

신경숙은 신호를 오독하고 있다. 문학권력은 그를 지목한 용어가 아니다. 여기서 문학권력은 돈이라는 안락한 파라솔 아래 대형 출판사와 비평가, 작가가 모인 뒤 '명예'를 상부상조식으로 만들어내는 폐쇄적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번의 표절 제기는 신경숙뿐 아니라 왜곡된 문학권력을 지목한 것이기도 하다. 창비·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라는 출판사 이름이 지난 일주일 사이 신문·방송에 싸잡아 거명된 이유다. 한국문학 독자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이런 패거리 문화를 부추겼다.

왜 신경숙은 계속 오독하는가

세 출판사가 악일 리는 없다. 훌륭한 출판사들이다. 문학권력이란 개념은 왜곡된 구조를 반성하고 개선하자는 촉구다. 이미 2000년을 전후해 나왔던 말이다. 그런데도 완강할 만큼 성실해야 할 비평은 칭찬 일색의 '주례사 비평'으로 줄곧 자주 전락했다. 잘 팔리게 홍보하고 잘 팔리는 작가를 만들고 훌륭한 작가로 둔갑시킨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거칠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400개 가까운 문학상은 작가를 길들이는 '당의정'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언론은 이런 추문을 추인하기 바빴다. 작가가 '미필적 고의'로 거기에 승차했다고 해서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경숙이 오독한 지점이다. 신호를 제대로 읽으라는 게 작금의 독자·대중의 요구였다. 왜 신경숙은 계속 오독하는가.

1999년은 소설가 신경숙에게 특별한 해였다. 그는 그해 6월 문학평론가 남진우와 결혼했다. 잘나가던 작가와 평론가의 혼인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몇 달 뒤 문학평론가 박철화는 계간 <작가세계> 가을호에 '여성성의 글쓰기, 대화와 성숙으로'라는 글을 발표했다. 신경숙의 표절을 처음으로 지적한 글이다.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 '작별 인사' 따위가 각각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같은 해 9월 <한겨레> 최재봉 기자는 신경숙의 단편 '딸기밭'이 재미 유학생 안승준씨의 유고집(<살아는 있는 것이오>)과 여섯 문단에서 같거나 거의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신경숙의 반응은 신경질적인 것이었다. 최재봉 기자의 지적에 대해 그는 표절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았다. "불찰"이라고 모호하게 에둘러 달아났다. 그러곤 평론가 박철화를 거칠게 비난했다. "이번 기사에서 유감인 부분은 내 작품에 부당하게도 표절 혐의를 씌운 박철화씨의 글이 언급된 데 있다. (…) 이들의 작품과 내 작품에서 유사한 모티프 한두 개를 발견해서 표절 운운하는 것이라면 그건 위험천만한 단세포적 주장이다." 이듬해 2000년 문학비평가 정문순이 지금과 동일하게 '우국'의 표절을 지적했을 때에라도, 간결하게 표절을 인정하고 독자에게 사과했다면, 신경숙은 다른 경로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회를 두 번 놓쳤다. 문학권력 논쟁에도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10여 년 시간이 지나 지금의 참담한 순간이 그를 초대했다. 하지만 신경숙의 반응은 여전히 2000년 전후를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 "'우국'은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봐도 안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어요. 어떤 작품을 반쯤 읽다 말고 이건 전에 읽었던 작품이구나, 하는 식이니까. 어떤 영화는 끝까지 다 본 후에야 이건 본 영화구나, 깨달을 때가 있어요."(<경향신문> 6월23일치) 표절을 인정하겠다는 명료한 표현을 기대한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범죄 가해자의 쉬운 변명"

표절작으로 지목된 작품이 실린 소설집(<오래전 집을 떠날 때>, 1996)의 '작가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제게 소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헤치고 나가 언젠가는 제 존재의 빛을 보게 해주리라 믿는 것입니다." 지금의 신경숙은 이 모호함을 얼마큼 갱신했는가. 사실과 사실 아닌 것을 갈라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조차 모호함의 언어로 피신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의 질량은 '0'을 향해 추락한다.

신경숙은 절필을 거부한다는 말도 했다.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려놓겠어요. 내 책상으로 돌아가겠어요. 발표하지 않고 항아리에 넣어두더라도."(<경향신문> 6월23일치) 절필을 작가에게 강요하는 건 강압이요 폭력이다. 작가의 선택에 맡기면 될 일이다. 책임은 작가가 진다. 다시 쓴 소설을 환대할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전제다. 표절을 깨끗하게 인정했느냐다.

"표절이란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신경숙은 말했다. 이 지점에서 시민·독자들 다수는 여전히 수긍하지 못한다. 정문순의 한 라디오 인터뷰가 가혹하되 정당하게 읽히는 이유다. "나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당신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답은 제3자에게 맡기자. 이런 식으로 해서 사실은 보통 범죄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말하기 쉬운 변명의 일종일 수 있습니다."

1985년 중편소설 <겨울우화>로 등단한 신경숙은 올해 30년차 작가다. 그간 여러 비평가들이 그를 '잘 빚어진 항아리'로 상찬했다. 창비의 '정신적 지주'인 평론가 백낙청은 계간 <창작과비평> 1997년 가을호에 신경숙의 장편소설 <외딴 방>을 극찬하는 비평을 실었다. 백낙청은 이 글에서 <외딴 방>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삼대>(염상섭), <임꺽정>(홍명희)에 견줘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소설이라고 추어올렸다. 그의 서정적 문체를 일러 '시의 경지를 추구하는 작가'라고도 했다. 평론가 남진우는 "가까운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증언록"이라고 작품 해설에 적었다. 반대로 신경숙의 문학에 대해 "문학의 탁월함의 부분보다는 환금성의 탁월함이 더 컸음은 부정하기 어렵다"(문학비평가 이명원)는 평가를 비롯해, 폭넓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좁은 인식 또는 장식적·감각적 수사에 그치거나 소녀적인 감성에 갇혔다는 비판도 있었다.

일부의 의심에도 신경숙은 문학과지성사와 문학동네를 거쳐 마침내 창비에 이르러 문학적으로 비상했다. 정점은 1996년이었다. 그해 창비는 장편소설 <외딴 방>에 만해문학상을 건넸다. 한국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다. 신경숙의 첫 소설집 <겨울우화>(1990, 고려원)는 평단과 독자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1993)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뒤 불과 3~4년 만에 신경숙은 한국문학계의 한 봉우리에 올라섰다. 앞서 든 백낙청의 글 결론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작가는 '우리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부여하는 엄청난 일을 해내었다." 일부 비평가들이 '주례사 비평'이라는 비판을 던지는 대목이다.

한 사람에 대한 십자포화로 마친다면…

징후는 상징으로 드러난다. 한국 소설문학의 아이콘으로 떠받들어진 신경숙의 표절 사태는 곧바로 한국 소설문학, 나아가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불신에 불을 붙인 셈이 됐다. 정직한 사과로 봉합할 수도 있었지만 작가는 그러지 않았다. 책임은 시간이 추궁할 것이다.

지난 6월23일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는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참담하다"고 했다. 한국문학은 지금보다 더 참담해질 수 있다. 신경숙의 표절 여부에는 참석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해법은 갈라졌다. 평론가 이명원은 신경숙의 정직한 사과와 사죄 그리고 표절 의혹에 대한 창비·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의 검토와 결과 공표, 표절에 대한 규범 마련과 한국문학에 대한 성찰과 전망 등을 요청했다. 평론가 오창은은 한발 더 나아가 표절에 대한 징계 시스템 마련을 제안했다.

참석자 가운데 유일한 작가였던 시인 심보선은 평론가들과 다른 관점에 섰다. 그는 비평을 통해 한국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는 말로 그는 최고 작가를 키우려는 문단의 관행을 비판했다.

신경숙 표절 사태는 시나브로 언론에서 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표절이라는 아픈 상처에 돋아날 새살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지 못한 채, 신경숙 한 사람에 대한 십자포화로 마침표가 찍힌다면, 한국문학은 독자를 계속 상실할 것이다. 신경숙은 여전히 소중한 작가다. 그는 이제라도 '운동장'으로 나와야 한다. 공론장이 기다리고 있다. 독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작가로서 참된 자존감을 보여주기를 독자들은 희망하고 있다. 문학이 문장에 갇힌 자폐일 수는 없지 않은가. 문학이 투전일 수는 없지 않은가. 기회는 아직 있지 않겠는가. 비관하더라도 문학은 따뜻하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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