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관에 '싹둑' 반토막난 고분..포클레인에 뭉개진 토성 처참

2015. 5. 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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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르포] 경산 임당동 고분 '훼손' 현장

국가사적 고분군 코앞에서 참혹한 풍경이 펼쳐졌다. 콘크리트 도로를 절개하고 파들어간 땅속에 육중한 서너개의 오수관 파이프가 뻗어나가며 1500여년 전 고분바닥의 묘실과 인골을 짓누르고 있었다. 1500여년 전 당당한 권력자였을 무덤 주인 인골은 도로에 의해 허리 부분이 잘려 나갔다. 조사원들은 수도 공사하듯 발굴을 했다. 오수관 위아래, 사이의 흙을 털어가며 짜부라진 유골과 유물들을 조금이라도 노출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압독국' 후계자 무덤으로 추정암광목곽묘 등 유적 가치 높아10여년전 도로공사 등에 훼손된듯최근 주택 신축터 조사중 발견시쪽 "당시 관련기록 찾기 힘들어"고분군 위쪽 토성도 역사적 가치시, 성 주변 정비공사 과정서 파괴

최근 원룸주택 신축 터에서 발견한 삼국시대 수장급 무덤인 경북 경산시 임당동 57-11번지 고분 발굴 현장(<한겨레> 4월27일치 10면)의 참상이다. 바로 뒤편에 사적 516호 임당동 고분군이 있는 보호지역이지만, 시 쪽은 사유지를 기부채납받은 뒤 고고학자 입회 없이 도로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무지가 결국 소중한 희귀 고분을 망가뜨린 결과를 낳았다. 고분은 4~5세기 신라권에 들어간 경산 지역 소국 압독국 후계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임당동 고분군과 구조, 출토 토기 양상이 비슷하다. 주인을 따라 묻힌 순장자 인골만 5구가 나왔고, 금동관 일부 부재와 은제 허리띠 금공장식 등도 쏟아져 임당고분군의 노른자위 유적으로 보고 있다. 바위층에 무덤을 판 암광목곽묘는 다른 지역에 전혀 없어 역사적 가치 또한 높다. 이처럼 경주 왕경급의 가치가 지대한 고분인데도 도로와 오수관 탓에 내부가 잘리는 참상이 빚어진 것이다. 시 쪽은 "원래 사유지여서 공사 관련 기록을 찾기 힘들다. 당시 고고학 전문가가 입회했는지 등은 알 수 없다"고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도로와 오수관 상태 등으로 미뤄 최근 10년 사이 문화재청에 신고하지 않고 공사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발굴을 맡은 진흥문화재연구원은 3월 한달간 발굴할 예정이었지만, 부장품과 인골이 쏟아지자 전문가회의를 거쳐 조사를 연장했다. 무엇보다 국가사적범위의 확대 지정과 도로·오수관 이설이 시급한데, 논의는커녕 발굴 비용 지원조차 못 받고 있다. 청은 경산시 공공시설이니 시 쪽 지원을 받으라고 하고, 시는 예산이 없다고 책임을 피하는 형편이다. 결국 이달부터는 연구원이 도로 쪽을 자체 비용으로 발굴중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꼭 조사해야 할 중요 유적이라면서도 비용은 자체 해결하라고 하더라"며 "재원이 없다고 하니 지원을 요청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11일 현장 자문회의에 참석한 이청규(영남대), 강봉원(경주대) 교수는 건물을 짓지 말고 무덤방을 현지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도굴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뒤편의 국가사적 임당고분군 1호분(<한겨레> 4월18일치 10면)도 긴급점검만 했을 뿐 세부 현황 조사와 정비는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1곳의 함몰구덩이와 2곳의 도굴갱이 드러났는데도 복원 정비 예산 협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관련 예산은 시에서 신청해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를 통과할 때까지 최소 서너달을 기다려야 한다. 유적을 맡은 한빛문화재연구원이 우선 사비를 들여 조사에 착수할 참이다. 문화재청과 시는 "최근이 아니고 30여년 전 도굴된 듯하다"는 면피성 해명만 냈을 뿐 도굴 경위 조사와 책임 규명 등은 외면하는 눈치다. 주민들 사이에는 과거 도굴범과 유물을 어떻게 꺼냈는지 대화를 나눴다는 말들까지 돌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상 규정된 현장 정기 점검은 비전문가인 문화재돌봄이사업 자원봉사자에게 떠넘기고, 순찰 및 정기조사는 사실상 전무하다. 바뀐 것이라고는 당국이 쳐놓은 출입통제 금줄뿐이었다.

고분군 위 언덕배기로 가면 임당토성이 있다. 압독국 통치자의 거처로 짐작되는 이 토성은 올해 초 시가 유적 정비공사를 하면서, 포클레인이 성벽 한가운데를 잘라 뭉개버렸다. 사적은 아니지만, 제대로 조사된 적이 없고 인근 고분과 밀접하게 연관된 유적이어서 사적 지정과 보호책 등이 절실하다. 현장 부근에는 토성절개 당시 삐져나온 각종 토기조각이 흙더미 사이로 나뒹굴고 있었다. 시 쪽의 정비 과정에서 파괴됐는데도, 이곳 역시 발굴기관이 자비로 유적 단면조사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정책이 겉도는 이 땅 문화유산의 현실이다.

경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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