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사라진 줄 알았던 이순신 장계 별책.. '찾았다', 어디?

입력 2015. 4. 6. 11:25 수정 2015. 4. 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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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줄 알았던 이순신 장계 별책, 소재 확인… 어디?

일제 강점기 이후 분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순신 장군의 '장계 별책'의 소재가 최근 확인됐다.

난중일기 교감 완역본을 펴낸 이순신 전문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국립해양박물관에 소장된 '충민공계초'를 분석한 결과 그간 분실 상태로 알려진 장계 별책이 알고 보니 충민공계초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장계 별책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왕실에 올린 보고서를 모은 것이다. 장계 별책은 난중일기와 함께 국보 제76호로 지정된 임진장초와는 별개로 덕수이씨 충무공 종가에 전해지던 또 다른 장계 초본이다. 장계 별책은 이순신 장군 사후 1662년 만든 필사본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올린 보고서 68편을 수록했다.

별책에 실린 기록은 정조 때 간행된 이충무공전서 난중일기·임진장초·서간첩 등과 함께 포함돼 내용은 이미 알려졌다.

원본은 충무공 종가에서 보관하다 1920년대 일제가 이순신 관련 유물을 조사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노 소장은 "일제는 1927년 조선 초·중기 역사를 편수하고 이듬해인 1928년 2월 이순신에 관한 문서와 유물 일체의 촬영을 마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총민공계초를 분석하던 도중 1928년 일제가 장계 별책 일부를 촬영한 원판 사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존재함을 확인하고 충민공계초 실물 내용과 국편 소장 사진을 대조해 둘이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충민공계초 첫장에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신 이순신 삼가 올림. 임진년'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직후인 1592년(선조 25년) 4월 15일부터 1594년(선조 27년) 4월 20일까지 선조와 세자 광해군에게 올린 전쟁 상황보고다.

부록으로 임진왜란 중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항복이 이순신에 관해 쓴 '이통제비명'이 함께 실렸다.

노 소장은 충민공계초라는 제목이 1601년(선조 34년) 전남 여수에 세워진 사당 충민사에서 따왔다고 말했다.

장계 별책 외에 난중일기 초고본 중 을미년(1595년) 일기, 이순신이 생전 사용하던 쌍룡검, 해남 충무사에서 도난당한 이순신 영정,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보낸 문건인 감결, 이순신을 사후 우의정으로 봉한 선조의 교서 등 이순신 관련 유물 5종이 현재 분실된 상태다.

충무공 종가의 관계자는 "집안에 전해져 내려왔다는 유물이 일제 강점기에 없어져 필름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후손으로서 매우 안타까웠다. 이제라도 존재를 알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jstar@joongang.co.kr

'이순신 장계 별책' [사진 국립 해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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