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전진하며 17년째 "신화산"

중림동 새우젓 2015. 3. 2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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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은 급식수니(10대 빠순이)와 곰팡내 나는 신화창조 1기 주황색 우비를 입은 늙수니(늙은 빠순이)가 나란히 신화의 무대를 기다린다. 17년 '묵은' 아이돌에 입덕하는 어린 팬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해진다. 신화가 어떤 그룹인가. H.O.T.와 god 사이에 데뷔해서(1998년), 동방신기가 한창 날릴 때 대상을 받았고(2004년), EXO를 MAMA(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투표로 이긴(2013년) 아이돌 그룹 아닌가.

1년9개월 만이다. 신화가 컴백했다. 신화 컴백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바쁜 시기가 열렸다. 매일 아침 눈뜨면 오늘은 또 어떤 '떡밥'이 있을지 설렌다. 퇴근 후 오빠들의 활동 영상을 볼 생각에 하루가 즐겁게 흘러가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 음악방송 사전 녹화를 다녀오면 일주일은 거뜬히 버틴다. 그러다 순간순간 '아련터진다'. 올해도 무사히 돌아와줬구나…. 17년 전 입덕할 때만 해도 이런 이유로 기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첫 소속사인 SM과 결별할 때도 신화는 큰 문제없이 그룹을 지켜냈다. 소속사 계약이 끝나면 팀 해체가 당연하던 때였다. 소속사 이적 후 터져나온 불화설에도 재치 있게 대처했다. 곧이어 발표한 7집으로 대상을 거머쥐기까지 했다.

두려움은 그 후에 찾아왔다. 2006년 6월, 약 2년 만에 8집 앨범으로 찾아온 오빠들의 활동은 어딘지 예년과 달랐다. 음악방송 출연은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채 종료됐고, 여타의 활동을 합쳐도 신화로서의 국내 활동은 2개월 남짓이었다. 나머지는 해외 활동이었다. 뒤이어 개인 활동을 위해 오빠들은 하나의 기획사가 아닌 각자의 매니지먼트를 두게 됐다. 이는 현역 아이돌의 '헤쳐 모여'가 최초로 실현된 것이기도 했다. 결과물은 좋았다. 하지만 2년 남짓한 이 기간 내내 신화는 불화설과 해체설에 시달렸다. 멤버들의 군 입대 시기도 다가오고 있었다. 신화의 이름으로 하는 국내 활동은 기약이 없었다. 팬 처지에서는 이대로 신화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한쪽에서는 상표권을 사용 못하니 신화가 해체된다는 기사가 나오고, 신화의 국내 활동을 담당하는 회사에서는 아니라고 일축하는 일이 반복됐다.

불안한 팬심을 잡아준 것은 신화 멤버들이었다. 아무도 해체를 원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신화는 신화창조(공식 팬클럽)에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전달했다. 게다가 9집과 10주년 콘서트(2008년)로 돌아와 건재함을 과시했다. 모든 멤버가 제대할 때까지 신화 활동은 휴식기에 돌입했지만, 자신들을 믿어달라는 오빠들의 분명함은 이후 4년을 버틸 힘이 되었다.

4년 뒤 10집 앨범으로 오빠들이 컴백했을 때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팬이 있어야 가수가 존재한다고들 하지만, 막상 오빠들이 신화 활동이 어려웠을 때나 불화설에 시달렸을 때, 팬들이 '내 가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빠들이 하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믿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일 뿐이었다. 자신의 무력함에 마음을 다친 팬도 많았다. 그런데 오빠들은 독자적으로 '신컴엔터테인먼트(구 신화컴퍼니)'를 설립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줬다.

'장수 아이돌' 타이틀에 묻어가지 않는 퍼포먼스

이번 12집 음원 공개일은 첫 사전 녹화와 겹쳤다. 음원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사전 녹화에 들어간 날 나는 또 '재통사고'를 당했다. 손끝 하나까지 신경 쓴 안무는 오빠들이 이번 활동에 들인 공을 여실히 알게 했다. 17년차에도 기합이 잔뜩 들어간 신화의 퍼포먼스는 오빠들이 '장수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에 묻어가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12집 전곡을 꽉 묶고 있는 그루브는 박치인 늙수니가 따라 부르기엔 버겁지만, '부심(신화 팬으로서의 자부심)'이 폭발하는 곡들이다. 추억 속의 가수로 남지 않고 신화가 현재에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이런 위대한 가수에게 덕통사고를 당했던 17년 전의 나도 기특할 지경이다.

오빠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상표권을 가져오지 못했다(앨범 표지에 '신화'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이 오랜 싸움에서 오빠들이 분명히 얻고 싶은 것이 단지 상표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수니'의 덕목은 자고로 지고지순. 여전히 내 지지가 신화에게 어떤 물리적 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팬들의 응원이 오빠들에게 힘이 된다고 하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신화를 응원할 생각이다. 우리 오래오래 같이 해먹어요.

중림동 새우젓 (팀명)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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