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선 다 할 수 있잖아요" 대기업 사표 내고 '술 먹는 책방' 차린 30대 여성

김남중 기자 2015. 3. 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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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의 고민은 '책+?'이다. 책만 붙들고 있다가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책에 무엇을 붙일 것인가? 책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출판사의 고민도 여기 있고, 서점의 고민도 여기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동네서점 '북바이북'은 책에 술을 더했다. 국내 최초의 '술 먹는 책방'이다. 책의 확장과 관련해 현재까지는 가장 멀리 나간 사례라고 하겠다.

이 서점의 주인은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 김진양씨. 북바이북 창업과 1년 반의 운영 경험을 담아 최근 '술 먹는 책방'(나무나무)이란 책을 낸 김씨를 지난 달 26일 만났다.

-서점은 잘 되나?

=서점 시작할 때부터 온라인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그래도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아마 오프라인으로만 접근했다면 서점을 알리기 어려웠을 거 같다. 또 상암동에 서점이 없었고, 인근에 문화공간이 별로 없어서 우리 서점이 환영을 받는 것 같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

=상암동이 미디어시티라서 주변에 방송국들이 많다. 그래서 방송국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동네 주민들도 찾는다. 직장인과 주민 비율이 8 대 2 정도. 저자 초청 행사나 음악회, 전시회 등도 자주 하는데 그런 행사에는 주민들 참여가 특히 많다.

-매월 수익이 발생하나? 적자를 보진 않는가?

=적자는 아니다. 많진 않지만 수익도 난다. 내 생활비도 전부 서점 수입에서 충당하고 있다.

-술을 파는 서점은 국내에서 처음인 것 같다. 어떻게 술 먹는 서점을 생각하게 됐나?

=나는 정통 서점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서점에 대해서 고정관념이 없었다. 하고 싶은 걸 해 보자는생각으로 맥주 파는 서점을 생각했다. 퇴근길에 들러서 맥주 한 잔 하고 주인과 수다도 떠는, 일본 만화 '심야식당'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루에 맥주 몇 잔 이런 식으로 술 판매에 제한이 있나?

=그런 건 없다. 그래도 취할 때까지 마시는 사람들은 없다. 여기 와서 회식을 하는 직장인 그룹도 생겨나고 있다. 가벼운 안주거리도 팔고 있다.

-서점 창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내 공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았다. 옷가게나 빵가게도 해볼 수 있겠지만, 내가 해오던 일이 컨텐츠를 다루던 일이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이라면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책방을 떠올렸다. 서점을 내자,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이 상암동이니까 여기서 서점을 내자, 그렇게 해서 상암동 동네서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서점을 꾸밀 때 참고했던 아이디어가 있다면?

=예전에 언니와 홍대 앞에 잠깐 살았는데, 상상마당 뒤쪽에 있는 '땡스북스'란 서점에 자주 갔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멋진 서점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일본 서점들에 대한 책들을 보면서 서점이 훌륭한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술 먹는 책방이란 아이디어도 일본 서점 'B&B'에서 빌려온 것이다.

-술 파는 서점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근데 서점에서 술 파는 게 가능한가?

=카페와 서점업으로 같이 신고했다. 그러면 주류 판매 허가가 나온다. 최근 일산에도 맥주 파는 서점이 생겼다고 들었다.

-서점업에 뛰어든 것도 이색적이지만, 다음커뮤니케이션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나온 것도 특이해 보인다.

=직장의 의미를 못 찾고 있었다. 보람이라든가 재미가 없었다. 특히 30대로 들어가면서 지금 결심을 못 하면 이대로 의미 없는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가 사람 만나고 얘기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메신저와 이메일로만 일하는 세계에서 살아가자니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다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회사 나오면 죽는 줄 아는 이들도 많은데.

=2013년에 20대 청년 창업가들의 인터뷰집 '탐나는 동업 20'을 냈는데, 그걸 쓰면서 많은 젊은 사장님들을 만났다.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내보이는 열정이나 눈빛, 에너지 등이 강렬했고 인상적이었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역동적이라고 할까. 그런 게 끌렸다.

-2013년 9월 창업했으니 서점을 운영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후회는 안 하나?

=후회는 전혀 없다. 다만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있긴 하다. 혼자서 다 해야 되니까. 그래도 재미있고 보람도 있다. 서점이란 좁은 공간에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지루할 틈이 없고 다이나믹하다. 직장 다닐 때와는 딴판이다. 손님들이 매번 바뀌고 책도 계속 새로운 게 나온다. 앞으로 10년은 더 할 생각이다.

-2호점은 어떻게 열게 됐나?

=처음엔 6평짜리 서점으로 시작했다. 근처에 17평짜리 공간이 나서 네 달 전에 본점을 이전했다. 원래 있던 자리는 소설전문점으로 재단장했고. 소설점 주인은 언니가 맡고 있다. 언니는 내가 서점을 시작할 때부터 궁리를 같이 했는데, 2호점 낼 때 회사 그만 두고 합류했다. 언니도 다음에서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데 본인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남의 일 말고 자기 일을.

-언니까지 끌어들인 걸 보니 서점업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동생 하는 거 보고 언니가 확신을 가졌거나.

=서점은 가능성이 있다. 다만 책만 파는 것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책은 마진이 매우 낮은 업종이다. 옷이나 음식은 소매업 마진이 70%쯤 된다고 한다. 책은 25%에 불과하다. 그래서 책 외에 부가 수입을 뭐로 만들까 계속 고민 중이다. 맥주를 팔겠다는 생각도 거기서 나온 것이다.

-현재 매출구조는 어떤가?

=책 판매와 기타 수입 비율이 7 대 3 정도 된다. 기타 수입에는 주류와 음료 판매, 이벤트 참가비 등이 포함된다.

-아무리 그래도 서점으로 돈 벌기는 어렵지 않은가? 서점업이 지속가능하다고 보나?

=경제적인 부분은 사업을 계속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포털사이트가 뮤직서비스, 뉴스서비스, SNS서비스 등 계속 새로운 서비스를 오픈하는 것처럼. 서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책은 워낙 주제가 다양하기 때문에 책을 기반으로 하는 서점은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다고 본다. 예를 들면 음악전문서점, 요리전문서점, 여행전문서점 등으로 넓혀갈 수 있다. 나는 서점을 책을 매개로 한 컨텐츠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근래에 새로 추가한 서비스가 있나?

=음반 판매를 새로 시작했다. 서점에서 트는 음악을 팔기 시작했다. 또 음반을 만든 뮤지션을 초청해 공연을 열기 시작했다. 메뉴판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기존 서점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함부로 얘기할 순 없는데, 시대에 따라서 서점도 변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점은 변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책 안 읽는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북바이북을 어떤 서점으로 키우고 싶나?

=무겁지 않고 진지하지 않은 서점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디나 책이 있지만 맥주 마시기 좋고 사람 만나기 쉽고 혼자서도 편안한, 그런 어른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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