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불가침한 존재' 아이돌 막내

중림동 새우젓 2014. 12. 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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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어르신들이, 사회에 나오면 두세 살은 친구 먹는 거랬다. 선임들 앞에서 '쎄빠지게' 구르는 신입사원 시절도 잠깐이지 평생 조직 내 최하위 서열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 '이 짓'에서 놓여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멤버 충원이 없는 한(그리고 그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겠지) 노인이 되어서도 형 혹은 언니들을 모셔야만 하는 자들, 바로 아이돌 막내다.

늦게 태어난 게 죄라면 죄다. 집에서 장남으로 컸으면 무엇하나, 형들 앞에서 재롱을 떨다 '궁디 팡팡' 당하는 신세인 것을. 간만에 막내에게 온 인터뷰 차례에도 형들은 장난이랍시고 막내 얼굴에 마이크를 갖다 붙이니 인터뷰는 이미 물 건너갔다.

나이를 먹으면 상황이 달라질까? 아이돌 최장수 그룹 '신화'의 막내 앤디(33)를 살펴보자. 여느 조직이라면 대리, 잘나가면 과장에 후임도 여럿 이끌고 있을 법한 나이다. 하지만 아이돌 막내에게 그런 날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의 곁에는 뗏목 한번 만들자니 본인들은 재미지게 놀면서 '막내야 이거 해줘!'를 외치는 떼쟁이 형들만 있다. 데뷔 초, 숙소에서 민우 형에게 팬티를 뺏기던 17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한번 결정된 막내의 위상은 서른 중반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아이돌이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는 데다 활동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팬덤의 결속력이 강화되다 보니, 막내라는 포지션은 유난히 중요해진다. 하지만 사실 그룹의 막내라 해도 형들과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는다. 소녀시대의 막내 서현은 최연장자인 태연과 고작 두 살 차이다. 하지만 그룹 안에서 그녀는 프로그램 로고에 얼굴이 가려지는 이상한 위치 선정으로 화제가 되는 양보의 아이콘이다. 반대로 고작 두 살 많았던 태연이나 티파니는 데뷔 초 노래는 물론이고 예능에서 멘트 하나를 해도 재치 있게 해서 그룹을 '하드캐리'해야만 했던 소녀가장이었다. 각자 돋보이기도 바쁜 아이돌 세계에서 이 같은 포지션 선정은 지나친 소외감이나 과한 부담을 줄 법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이것을 팀이라는 이름 아래서 멋지게 소화해낸다.

그리하여 팬들에게도 막내는 막내, 리더는 리더일 뿐이다. '샤이니' 태민의 팬 사인회에서 십대 여학생들은 본인보다 한참 연장자인 그에게 '우리 막내 오빠 우쭈쭈'라며 형형색색 머리띠를 씌워주기도 했다. 멤버들의 실제 나이를 뻔히 알지만 형들에게 마냥 예쁨받는 막내는 팬들에게도 마냥 '해맑은' 우리 팀의 막내다.

신화의 리더 에릭은 또 어떠한가. 동갑내기인 멤버가 셋이나 더 있지만 최초 소속사인 SM을 나올 때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의 리더로서 법 공부를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모습은 아직도 팬덤 속 전설로 남아 있다.

그들이 자신만 살아남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포지션을 잘 소화해내는 것은 동시에 팀의 결속력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제는 외국 팬들도 묻는다. 'Who is the eldest and the 'maknae'?'

ⓒ이우일 그림 :

ⓒ이우일 그림 '막내 라인'으로 산다는 것은…

팬들은 리더와 막내가 손잡고 출근하는 사진을 보며 '리-막 라인'의 위대함에 오열한다. 막내가 목말라하자 리더가 물병을 입 앞에 쏙 대령해주는 영상을 보는 날에는 너무 좋아서 죽겠으니 서로 관을 짜달라고 야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팬덤 내에서는 그룹 멤버들의 관계에 베프 라인, 막내 라인, 79라인 등등 수없이 많은 이름을 붙인다. 라인이 많아질수록 팬과 가수가 함께한 추억도 늘어난다. 기획사가 임의로 설정한 포지션이든, 활동하면서 만들어진 관계이든 그 안에서 나타나는 '케미'는 팬들의 광대를 승천하게 한다.

여기에서 막내의 존재는 특별해진다. 모든 멤버가 아끼고 모든 팬이 겹겹이 실드를 치며 키워온 막내는 우리 팀이 지속되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개인기가 약해도 형들의 호응으로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볼 때, 노래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막내가 커갈 때까지 지지해주는 끈끈한 팀을 응원할 때, 팬들은 자신의 삶을 위로받기도 한다.

그래서 팬들에게 막내는, '최애 멤버'가 있어도 취향을 붕괴시키고 함부로 부족함을 평가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존재가 된다. 존재만으로도 위대한 우리 막내들! 성인 남녀의 인권 같은 건 진작 개나 줘버리자. 당신이 막내이기에 우리 팀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을! 하지만 다음 앨범에서는 파트 욕심 조금만 더 내주면 막내 오빠를 응원하는 팬으로서 소원이 없겠구나. 앤디 오빠, 사랑해요(수줍).

중림동 새우젓 (팀명)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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