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신라 궁터'에 호텔 지으라고?..권력자의 '황당한 메모'

2014. 11. 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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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주 월성 발굴 논란의 전말]

박정희 때 발굴 시도했다가 봉합35년 뒤 'C지구' 발굴 착수 계약정치권 "돈 내기 시켜서라도 앞당기자"박근혜 대통령 공약에 풀무질 논란  학계 "시간 단축 땐 왕궁 터 파괴"

"경주 월성을 발굴하고 영빈관을 지을 것."

1979년 1월5일, 경주 고적발굴조사단원들에게 내려간 '대통령 분부말씀'은 청천벽력이었다. 단원들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시 조사단 소속이던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1000년 고도 왕궁터에 외국 손님 맞는 호텔을 지으라니 황당했다"고 회고했다. 그 전날 경주에 내려온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조사단이 발굴중인 시내 황룡사터 현장을 돌아본 뒤 보문단지 호텔에서 지역기관장들과 만찬을 했다. 그 자리에서 경주시장은 대뜸 월성 발굴과 황룡사 9층탑 복원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는 푸념을 털어놓았다. 이 말을 들은 박 대통령이 월성 발굴과 영빈관 건립을 메모지에 직접 써 지시한 것이었다.

상황이 다급해졌다.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문화재계 인사들은 박 대통령 측근인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에게 지금 역량으로는 월성 발굴과 황룡사탑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을 간곡히 전달했다. 김 장관은 말뜻을 알아들었다. 대통령 지시사항 점검차 며칠 뒤 경주에 내려온 장관은 곧장 시장을 불러 야단을 쳤다. "각하 앞에서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마. 조심해!"

그 뒤 더이상 발굴을 채근하는 지시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홉달여 뒤 대통령이 시해되는 10·26 사건이 터졌다. 당시 일부 조사단원들은 상부 지시로 월성 동문터 일대에서 언저리 성벽 발굴을 하던 중이었다. 급보를 들은 조사원들은 나라 장래를 걱정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월성 발굴은 그해 12월 성벽 복토를 끝으로 흐지부지된다.

35년이 흐른 2014년 11월13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시와 월성 발굴 계약을 체결했다. 올 연말부터 50억원을 들여 최소 1년간 월성 내부 시(C)지구 1만5000여평의 조사에 착수한다는 내용이다. C지구는 2004년 지중레이더탐사로 대형 건물터들이 확인된 곳이다. 앞서 1월에는 경주시와 학자, 지역 유지들이 참여한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추진위원회가, 4월에는 문화재청이 주도하는 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를 위한 사업추진단이 발족했다. 잠복했던 월성 발굴 관련 사업들이 이제 본격적인 첫발을 떼는 셈이다.

71년 청와대가 경주고도관광개발계획을 처음 입안할 때부터 월성 발굴은 황룡사 발굴 등과 함께 핵심과제였다. 74년 천마총을 발굴하던 조사단이 월성 안에 먼저 '트렌치'(발굴갱) 한곳을 판 적도 있다. 당시 불과 20~30㎝만 팠는데도 신라 기와층들이 죽죽 깔린 채 나타나자 놀란 조사단은 현 인력으로는 불가항력이라고 보고했다. 안압지, 황남대총 등 기념비적 발굴도 잇따라 월성 발굴은 계속 미뤄졌다. 조사비용도 책정됐지만, 고분과 안압지 발굴비로 돌려썼다고 관계자들은 증언했다.

이처럼 숱한 비화들을 안고 있는 월성 발굴에 최근 속도가 붙은 건 박근혜 정부 출범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경주 쪽샘, 월성의 발굴 복원을 비롯한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이 30년 계획으로 추진됐으나 가시적 성과는 미미했다. 경북도와 경주시가 지난 대선 때 왕경유적 정비·복원을 박근혜 후보 쪽에 건의해 대선 공약화한 것도 그 배경엔 부친의 못다 이룬 꿈을 실현시키려는 박 대통령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10·26으로 2단계에서 중단된 70년대 월성 발굴 복원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월성 발굴은 성사됐지만, 추진 과정은 잡음이 많았다. 정치권 외압 논란이 불거져 학계와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경주 지역구인 군장성 출신의 정수성 새누리당 의원이 장본인이다. 그는 9월 '신라문화의 역사적 가치 재조명 심포지엄'에 나와 영리 중심 발굴법인(재개발로 파괴 상황에 놓인 유적의 구제발굴을 주로 하는 전문업체)들을 월성 발굴에 대거 투입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처럼 경주 고도 개발사업에 민자를 많이 끌어와야 한다. 문제는 발굴단이다. 땅 파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예산을 많이 줘도 다 못 쓰고 반납해 버린다. … 10개 정도 발굴단을 넣어서 돈내기 시켜야 한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17일 4곳으로 구획된 월성 유적 중 한군데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먼저 단독 발굴하는 안을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해 승인받자 논란은 커졌다. 정 의원이 "문화재청이 연구소 한곳만 발굴기관으로 지정해 장기 발굴에 따른 시민들 불편이 크다"고 주장하자 학계가 반발했다. 한국고고학회와 한국고대사학회 등 11개 학회는 7일 공동성명을 공개했다. 학회들은 "천년 왕성 발굴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 국가연구기관이 조사를 전담해야 한다. 왕궁터에 10개 이상의 발굴기관을 집중투입해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궁터를 성급하게 파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주고도육성포럼회와 경주문화원 등 경주 11개 시민·문화단체가 10일 맞대응 성명을 냈다. "고고학회 등의 성명은 문화재 보존에 따른 피해와 생활 불편을 감수해온 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이들은 "문화재청장 승인으로 설립된 다양한 전문기관(발굴법인)이 공동 참여해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정 의원 주장을 옹호했다. 논란이 성명전으로 번지자 문화재청은 12일 유적 보존처리, 복원 등에서 법인들과 협력이 가능하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경주시도 이달 초 학계 간담회를 연 데 이어 경주연구소와 발굴 계약을 체결해 논란 덮기에 나선 모양새다.

학계는 앞으로도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발굴수요 격감으로 조사비의 저가입찰 경쟁을 남발해온 상당수 발굴법인들이 대형 이권사업인 월성 조사 참여를 위해 집요한 로비를 벌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시와 경북도가 '현 대통령 임기 안에'를 내세워 발굴·복원기간 단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것도 불씨다. 국립경주연구소의 경우 월성 현장에 배치할 학예사가 5명에 불과하고 경력도 짧아, 조사의 전문성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된다. 고고학계의 한 소장 학자는 "연구소 조직을 확대해 중견 인력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 조사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문제삼는 지자체와 발굴법인 쪽에 계속 빌미를 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수성 의원과 경주시 쪽은 월성의 조속한 발굴·복원이 시민 여론임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복원 과정을 둘러싼 여러 구상들과 논란의 태반이 박정희 전 대통령 생전의 유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하는 이는 별로 없다.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듯했던 옛 권력자의 욕망이 다시 살아나 경주벌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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