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76만5천V 올 것이 왔구나

2014. 8. 2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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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하승수의 오, 녹색!]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선 계획…수도권 전기를 위해 지역주민이 희생되는 상황, '지역별 차등요금제'는 어떤가

얼마 전 경기도 양평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이 사는 동네에 '신경기변전소'라는 대규모 변전소가 들어서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이 다섯 군데 후보지를 정했는데, 그중 한 군데가 자기 동네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던,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로지르는 76만5천V 송전선 건설이 본격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해안에 들어설 수많은 발전소

76만5천V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압이 높은 송전선이다. 경남 밀양에서 9년째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바로 그 송전선이기도 하다. 밀양을 지나가는 송전선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건설을 추진 중인 76만5천V 송전선인데, 이제 네 번째 송전선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 송전선은 동해안의 신울진(신한울) 원전에서 출발한다. 경북 울진에는 6개 원전이 가동 중인데, 다시 신울진 1·2호기를 건설하고 있기 때문에 송전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전선은 강원도와 경기도를 가로질러 신경기변전소까지 오게 된다. 그러다보니 총길이가 240km에 달한다. 밀양을 지나가는 송전선보다 2.5배나 길다.

이런 송전선 건설 계획은 2010년에 발표된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되었다. 그 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면서 원전 확대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이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송전선 건설까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네 번째 76만5천V 송전선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동해안에는 많은 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서해안에 더 이상 발전소를 짓기 어려워지자 동해안으로 화력발전소가 몰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울진 원전 외에도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에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강릉·동해·삼척 등 동해안을 따라 들어설 예정이다. 전력거래소가 펴낸 '중장기 전력계통 운영전망'에 따르면 이 발전소들 때문에 다섯 번째 76만5천V 송전선이 또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제2, 제3의 밀양이 우려되는 이유다.

벌써부터 송전선이 지나갈 예정 지역 주민들은 걱정이 많다. 초고압 송전선으로 인한 피해는 이미 사실로 증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76만5천V, 34만5천V 초고압 송전선이 건설되기 시작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충남 서산의 34만5천V 송전선 경과 지역의 경우에는 송전선이 들어선 지 20년 만에 송전선 부근 주민 3분의 1 이상이 암에 걸린 마을도 있다.

"전기요금 올려도 대기업 이익 영향 없다"

건강상의 피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소음이 심하고, 눈만 뜨면 보이는 송전선 때문에 주민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높이 100m가 넘는 송전탑이 500m 간격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경관 훼손도 심각하다. 공사 과정에서 나무가 잘려나가고 산이 파헤쳐지는 등 자연환경 훼손도 심하다. 송전선이나 변전소가 들어오는 순간 주변 땅값은 떨어지고 부동산 거래는 멈춘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송전선만이 문제가 아니다. 발전소가 들어설 동해안 지역의 환경 파괴 우려도 크다. 원전은 물론 석탄화력발전소도 많은 양의 냉각수를 끌어들여 냉각을 시켜야 하고, 그로 인해 뜨거워진 물을 다시 바다로 내뿜는다. 바다 생태계가 파괴될 염려가 크다. 그 외에도 석탄화력발전은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는 등 많은 피해를 준다.

문제는 이렇게 생산된 전기가 강원도를 위해 필요한 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전기의 절반 이상은 초고압 송전선을 통해 수도권으로 오게 된다. 최종적인 소비자는 수도권의 대공장과 대도시들이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만약 수도권의 전기 소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면, 동해안에 이렇게 대규모 발전소를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연관된다.

대공장의 산업용 전기 소비 증가가 가장 큰 문제다. 이를 억제하는 방법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폭 올리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산업용 전기를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등 지나치게 싼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를 유지해왔다. 그 때문에 전기 소비가 급증해왔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50%, 100% 올려도 대기업들의 순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도 있다. 따라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파격적으로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전기 소비를 억제할 수 있어 발전소와 초고압 송전선을 덜 지어도 된다.

이런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제2, 제3의 밀양 송전탑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역별 차등요금제' 같은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현재의 전기요금에는 송전 비용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그러나 초고압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은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골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지금의 시스템이다. 심지어 지중화를 요구하는 주민들에게 지중화 비용을 부담하라고 한다. 그러나 전기를 쓰는 사람이 송전 비용도 부담하는 것이 맞다.

재생 가능 에너지나 지역분산형 발전을

장거리 송전으로 이득을 보는 소비자들이 송전 비용에 해당하는 만큼 전기요금을 더 내게 하자는 것이 '지역별 차등요금제'다. 이것도 대안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최종 소비지인 대공장이나 대도시 소비자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싫으면 자기 지역에서 발전을 하면 된다.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이 싫으면 재생 가능 에너지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같은 '지역분산형 발전'을 하면 된다. 전기를 많이 쓰는 대공장은 자체 발전을 하면 된다. 이렇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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