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이론과 실천의 괴리 불러"

2014. 3. 2. 2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진태원 교수, 지제크 등 열풍 비판

국내에서 슬라보이 지제크(왼쪽), 알랭 바디우(오른쪽), 조르조 아감벤(가운데) 등 일련의 유럽의 좌파 사상가들이 큰 인기를 누리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라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최근 발간된 계간 <황해문화> 봄호에 실은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이라는 글에서 이런 담론들이 유행하는 원인 중 하나는 국내 연구자들이 미국을 통해 비판적 사상들을 수입하기 때문이고, 이런 담론들이 이론적으로는 혁명적이지만, 실천적으로는 공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 국내에 크게 유행하고 있는 현대사상의 국내 수용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에 관한 의문 때문"이라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등과 같이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붙은 문화적·사상적 흐름이 수용된 현상을 지적했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자크 라캉 등이 대표적 사상가들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제크, 아감벤,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안토니오 네그리 등과 같은 이론가들이 반향을 일으켰다고 진 교수는 말하고, 이들을 '포스트-포스트 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진 교수는 "이들은 대부분 급진적인 정치적 주장을 제시한다"며 "특히 지제크, 바디우, 아감벤 등은 현대 사상가들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정치, 반자본주의적이며 반자유주의적인 정치를 제창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교양대중'을 포함해 주로 문학이나 영화, 기타 대중예술 관련 연구자들에게 열광적으로 수용되고 인용되고 있는데, 이 지지자들이 아마 보수적인 사람들은 아닐 것이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인 의미에서 급진적인 것도 아니다"며 "이들은 이 사상가들의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주장에 열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선거 때가 되면 (특히 대선 같은 중요한 선거일수록) 늘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러 투표소로 간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러한 '괴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런 담론들, 특히 지제크, 바디우, 아감벤의 이론적 성격을 분석한다. 진 교수는 "해방의 정치를 제도정치 바깥에서 찾고 있는 점"과 함께 '좌파 메시아주의'를 이들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이는 "이들이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와의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단절을 주장할 뿐 아니라, 이를 기독교 전통에 대한 재독해에 기반해 혁명적 사건성의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러한 메시아주의 정치는 매우 사변적인 정치철학"이라며 "이들 중에서 누구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국가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제시하지 않으며, 그것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이나 조직에 관한 구체적 성찰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변성'이 바디우의 '대상 없는 주체', 지제크의 '신적 폭력', 아감벤의 '계급 없는 사회' 등의 개념에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진 교수는 이런 담론들이 국내에 차례로 소개되고 유행하는 이유를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즉 "오늘날 한국 인문학에서 회자되는 많은 담론들이 미국을 통해 가공되고 변형되고 수입된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진 교수는 "오늘날 한국에서 비판적 사유의 전거로 작용하는 여러 사상가들은 그가 프랑스 사상가든, 이탈리아 사상가든, 독일 사상가든 간에, 미국이라는 생산과 유통의 회로를 거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게 됐다"며 "이들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이기 때문에 논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포스트 담론이나 포스트-포스트 담론이 1990년대 이후 영문학자, 문화이론가 등을 중심으로 미국을 통해 수입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진 교수는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는 미국 학계의 특정한 일부분이 생산해낸 담론, '미국제 담론'을 세계적인 담론으로, 서구 담론 전체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향은 인문학을 고립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우선, 인문학이 다른 학문분과, 특히 사회과학들과의 연계를 점점 더 상실해가고 있고, 둘째 비판적 인문학을 자처하는 경우에도 사회적 실천, 특히 조직적인 실천과의 연계를 맺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실천적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어떤 의미에서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던 포스트 담론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포스트-포스트 담론들이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안선희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인기기사>■ 도대체 뭐가 죄송하답니까황당한 군, 숨진 병사 유족에 "급사할 팔자" 점괘 보내대한민국 정치 흐름 뒤바꾼 통합과 야합의 대하 드라마'표정관리'하는 박원순…'열받은' 정몽준[화보] 한 컷, 한 컷이 격동의 현대사…한국 보도사진전 50주년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