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리 선생과의 결혼은 운명.. 흉터투성이 결혼 생활에 감사, 그 고통을 견디면서 사람이 됐으니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입력 2014. 3. 1. 16:04 수정 2014. 3. 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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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경이 만난 사람 - 소설가 서영은

· "흉터투성이 결혼 생활에 감사해요, 그 고통을 견디면서 사람이 됐으니까. 하나님을 진짜 만난 거죠.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별수 없이 자기중심적인, 싸가지 없는 작가로 있을 거예요."

지난해 타계한 소설가 최인호 선생은 "소설가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조차 이 장면을 나중에 어떻게 묘사할까를 생각하는 아주 잔인한 직업"이라고 했다. 작가적 상상력만큼이나 자신이 체험한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포착하고 연마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소설가 서영은 선생(71)이 14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 꽃들은 어디로 갔나 > 를 읽으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처절하리만큼 온전히 받아들였기에 이토록 객관적일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이 든다. 24세에 30세 연상의 문단의 거인 김동리 선생을 만나 20년간 숨겨진 여인으로 지내다 3년간의 결혼생활, 그리고 남편이 병으로 쓰러진 후 5년간 간병을 했던 그는 71세에 47년간의 사랑과 고통을 이 작품으로 토해냈다. 전실아들로부터 들은 "당신은 아버지의 요강이었을 뿐"이란 독설까지 그대로 담은 책을 내놓고도 서영은 선생은 담담하고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 산모들은 산후통이나 허탈감을 느낍니다.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은 후도 비슷할 텐데요.

"칼로 수박을 쪼개듯 확실하게 글로 쪼개서 그런 후유증은 없습니다. 이번 소설은 47년 동안 숙성된 이야기이지만 쓰는 동안은 거침없이 썼어요. 그래서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일반 독자들보다는 동료 문인 등 주변인들이 더 놀랐을 텐데요. 반응들은 어떤가요.

"출판사 관계자에 따르면 엄연한 소설인데도 제 이야기가 모티브여서인지 다들 등장인물들이 진짜 누구인지 탐정이나 형사처럼 찾아내는 데 몰두하더군요. 과거 제 인터뷰 기사나 에세이도 들춰보며 '잡지사 여기자는 누굴까' 등등을 찾느라 바쁘다고 해요."

소설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그래도 선생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징그럽도록 객관적입니다. 마치 제3자가 영상기록물을 다시 되돌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또 그토록 열렬히 사랑했던 김동리 선생을 '무거운 집을 진 거북이 같은 남자'라고 표현하기도 하고요.

"제 사랑을 객관화하는 데 4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 작품은 세월이 중요한 핵심 코드예요. 오랜 세월은 제 자신의 차원을 바꾸게 하는 힘을 만들어주더군요. 차원이 바뀌니 주관적 제가 아닌 객관성이 생겼습니다. 세월의 힘에 눌려 제대로 못봤던 자신을 세월을 받아들이고 나니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때론 훌륭한 재능의 여성들이 사랑하는 남성의 그늘에 가려 능력이 가려지기도 합니다. < 호밀밭의 파수꾼 > 을 쓴 J D 샐린저의 연인 조이스 메이나드나 로뎅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도 만약 '사랑하는 여인'이 아니었다면 독립적 예술가로 더 뛰어난 업적을 남겼을 거라고 하거든요. 이상문학상 수상 등 한국 문단의 대표적 여류작가이긴 하지만 김동리 선생의 그늘에 가려져 작품에 더 몰입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요.

"전혀요. 그 분을 통해서 너무나 절대적이고 하나밖에 없는 생의 의미를 얻어서 디테일한 점은 덮여져도 상관없었습니다. 그 분과의 만남 자체가 제 생의 의미이자 제 정체성을 만든 것 같아요. 김 선생님은 처음 만났을 때 스물네 살의 제게 패랭이꽃 같다고 했어요. 장미도 백합도 아닌 너무 소박한 꽃이라 처음엔 서운했죠. 그런데 그 분의 시 패랭이꽃을 보고 깨달았죠. '파랑새 뒤쫓다가/들 끝까지 갔었네//흙냄새 나무 빛깔/모두 낯선 타관인데//패랭이꽃/무더기져 피어 있었네'란 시에서 나타나듯 패랭이꽃은 끝까지 가야 만나고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패랭이꽃은 저승 쪽에서 바라본 이승의 꽃, 뻗어서 만질래야 만질 수 없기에 영원히 저만치 있을 수밖에 없죠. 파랑새가 들 끝까지 찾아가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경계, 자기가 보아오던 세계가 아닌 타관에 피어 있는 꽃이 패랭이꽃입니다. 그 안에 우주가 들어 있어요. 선생님이 저를 패랭이꽃으로 비유한 것은 제 인생의 어떤 신비한 암시 같아요. 저는 문학이건 사랑이건 호기심이 많고 신비로음 그 자체를 쟁취하려고 끝까지 가보거든요. 그 분 덕분에 제가 더 성숙했지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묻힌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문단의 거목이라고 해도 어떻게 20년 세월을, 그것도 30년 연상의 유부남의 숨겨진 여인으로 살 수 있었나요. 부와 명예를 선물로 준 것도 아닌데요.

"운명이죠. < 현대문학 > 창작실기 강사였던 박경리 선생님이 제 습작소설을 보고 이대로도 충분히 < 현대문학 > 에 추천될 만하니 김동리 선생에게 이 소설을 들고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전 그 분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댁에 갔을 때 어질러진 거실에서 내의 바람으로 맞아주셨을 때는 '사랑'을 직감하진 못했습니다. 그 후 찬란한 기쁨보다 더 큰 고통이 따랐지만 그때마다 선생은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 목숨을 지킨다고 생각해라'고 하셨죠. 사랑은 운명을 발견해가는 힘인 것 같아요. 어떠한 관계에서도 경계에만 머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그 관계를 수임할 때 비로소 시간이 흐르면서 본인의 얼굴을 만나게 되는 거지요. 시간 속에서 발자취가 드러나는 삶의 서사, 그거야말로 운명 아닐까요. 조금 힘들다고 다른 길을 찾고, 다른 데서 다시 찾다가 또 다른 곳을 엿보는 삶이란, 겨처럼 날리는 가벼운 존재이지요. 그렇게 살아서는 자신의 운명을 직면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지식이 아니라 마음이 깊어지는 경지입니다."

김 선생의 둘째 부인 손소희 작가의 타계 후 세 번째 부인이 됐습니다. 왜 결혼을 했나요. 44년을 자유롭게 살았으니 구속되는 것이 싫진 않았나요.

"친정어머니가 제 노후를 걱정해 결혼식이라도 하기를 간절히 바라셨어요. 미국에 살던 어머니가 잠시 귀국했을 때 절에 가서 단출하지만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지요. 그래도 선생과 나는 꽉 찬 자유였어요. 갇히면 답답하다고 하지만 그 분과 나는 꽉 찼기 때문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느꼈지요. 한 번은 아무말 없이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온 뒤 그 분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습니다. 살의에 가까운 주먹으로 날 쳤지요.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운명의 확인이었지요. 그의 주먹 안에 가득 차 있는 피투성이 살의 속으로 치마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렸습니다."

이 소설은 애틋한 비밀연애 과정이 아니라 결혼 후 '생활'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 쓰나미처럼 몰려온 실망감을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생이 만든 신기루였을까' '사랑은 진즉 결혼생활에서 메말라버렸다'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김 선생도 무거운 집을 등에 진 거북이나 인색하고 욕심 많은 영감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런 결혼을 후회하진 않았나요.

"아뇨. 정말. 너무 감사해요. 결혼생활이 흉터투성이인데, 그 고통을 견디면서 사람이 됐으니까. 하나님을 진짜 만난 거죠. 이런 모든 것들이 결혼을 통해 왔기 때문에 감사할 일밖에 없어요.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 것 같아요. 별 수 없이 자기중심적인, 싸가지 없는 작가로 있었을 거예요. 결혼생활 동안 수모와 굴욕이 많았어요. 그 앞에 무릎을 딱 굽힐 줄 알게 된 거죠. 거기에서는 교만함이 일절 통하지 않아요. 자기에게서 비롯된 실핏줄 같은 것이 제 가슴속에 꼭짓점으로 마주치는 상황이에요. 피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고 마주치기에는 너무 벅찬. 그럼에도 죽을 수는 없고 어떤 식으로든 치러내야잖아요. 죽기를 각오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혔을 때 문이 생기는 것, 그게 인생 같습니다."

책 제목이 < 꽃들은 어디로 갔나 > 입니다. 꽃은 무얼 상징하나요.

"이 작품을 사랑을 주제로 하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인간과 인생의 깊이를 다루고 싶었어요. 살아낸 사랑은 처음과 끝이 달라요. 시간이 흐르면서 인생이 주는 시련과 고난, 기타 아픈 것들이 스며들면서 끌어안지 않고는 더 이상 한 발도 나아가지 않는 것으로 바뀌지요. 꽃은 우리가 보기에 아름다움의 절정이지만 식물에게 그 꽃은 상처의 한 모습이에요. 꽃으로 나타난 상처는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쓰러질 때 비애를 거쳐서 열매로 변환되고, 그 열매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서 다시 꽃으로 순환되지요. 문학도, 사랑도 허허한 광야에서 견뎌내는 겁니다. 작가로서 제 작품에 쏟아지는 호감과 비호감, 김동리의 여인으로 쏟아지는 시선을 견뎌내며 살았습니다. 어떤 시선에도 변명을 할 줄 모르는 성격이에요. 그저 살아냈죠.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김 선생님이 병원에 계시고 제가 휠체어를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손잡이가 소통의 끄나풀을 잡는 거지요. 선생님의 무게감 속에 부부만이 아는 그 어떤 힘이 휠체어를 잡게 한 겁니다."

김동리 선생과의 사랑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려놓기 위해, 그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이 소설이 끝이 아니라면서요.

"마지막 휠체어 부분 있지요? 내내 3인칭으로 흐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1인칭으로 바뀌어요. 그때부터 한 권의 책이 더 필요해요. 이번 책이 꽃에 대한 책이라면 다음 책은 '열매'에 대한 책이 될 것이고, 그 다음 책은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 썩을 밀알이 되는 과정을 담으려 해요. 써봐야 알겠지만 사실은 다음 책이 오히려 더 중요하죠. 꽃이야 다 볼 만한 게 드러나지만 스러질 때는 비애와 낙담, 환멸을 소리조차 내지 못하죠. 또 꽃이 진 후에 맺는 열매는 인생에서 가장 아픈 시절이기도 합니다. 눈이 너무 아파서 그때까지 글씨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눈이 버텨준다면 꽃을 통해 상징되는 삶을 구도의 시작과 끝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문학계를 뒤흔든 스캔들, 또 김동리 선생 타계 후의 소송까지 참 억울함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고통보다 힘든 게 억울함인 것 같은데….

"10계명에도 남을 억울하게 만들지 말라는 구절이 나오죠? 제가 가장 못견디는 것은 비겁함과 위선입니다. 제가 홀로 터득해서 만든 자기 10계명이기도 하죠. 도가니 같은 고통, 소용돌이에서 요동치다 보니 지혜의 암전상태랄까 완전히 멍청해지더군요. 그때는 문학도, 돈도 다 의미가 없어요. 그래도 전 억울함까지 제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에너지가 방전됐을 것 같은데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요.

"작년에 돌아가신 임연심 선교사에 관한 책을 쓸 겁니다. 임 선교사는 28년간 케냐의 오지에서 고아들을 위해 선교활동을 하신 분으로 '투르카나의 어머니'로 불리시죠. 기독교사에 길이 남을 혁명적인 발자취를 남긴 분인데, 이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제가 써줬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겼어요. 저는 딱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 의아했죠. 취재를 할수록 이유를 알겠더군요. 작년에 그 분이 계시던 곳, 케냐 나이로비에서 자동차를 타고 23시간 달려야 닿는 척박한 오지에도 다녀왔고 20여명의 현지인을 인터뷰했어요. 이 분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1월 한 달 동안 아침 금식을 했습니다. 또 강금실 변호사와 함께 한국의 수도원 탐방기를 쓸 예정입니다. 따로, 또 같이 수도원에서 피정을 하면서 영적으로 묵상하는 과정, 우리 수도원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쓸 거예요. 소설 2·3부작도 남아 있고."

71세인데 피부도 참 곱고 너무 젊어 보입니다. 비결이 뭔가요

"제게 무책임해서 그래요.(웃음) 전 화장도 안 하고 집에 거울도 없어요. 거울도 안 보고 그대로 내버려두니 덜 늙나봐요. 또 나이를 의식하지도 않아요. 30년 연상의 선생님 앞에서는 전 언제나 처음 만났던 스물네 살의 젊은 여자로 입력되어 있으니까 상식적 숫자의 나이로 살지 않았었던 것 같아요. 고향이 강원도 강릉이라 늘 바닷가에서 수영을 했고, 홀로 된 후엔 춤을 열심히 배워서 비교적 곧은 체형을 유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그토록 혹독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김동리 선생의 어떤 점이 두 분을 끈끈하게 맺어줬나요.

"우린 몸이 잘 맞았어요."

두 작가의 사랑을 이어주는 힘이 '지성' '영혼'이 아니라 "몸이 잘 맞았다"고 말하는 서영은 작가의 얼굴은 너무나 천진난만했다. 백내장 수술을 해서 한쪽 시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른 작품에 도전한다. 고통도, 세월도 다 받아들인 이 소설가에게 세월도 무릎을 끓었나 보다.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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