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지구 온난화라더니..북극 빙하가 늘어났다고?

박세용 기자 2013. 9. 11. 10: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외신 기사가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지구 온난화라더니, 북극 빙하 면적이 지난 해보다 60%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무려 60%, 진짜? 영국 '데일리매일'이라는 매체의 보도였습니다. 국내 한 일간지가 그걸 그대로 베껴 보도하면서, 기사 클릭 수를 올렸습니다. 저희 보도국에서도 진짜? 확인해보자고 했습니다. 기사는 NASA가 찍은 올해와 지난 해 북극 위성사진을 비교 분석해봤더니, 빙하 면적이 60% 늘어났더라, 이건 유럽 대륙의 절반에 가까운 넓이라면서, 사진과 함께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온난화는 그럼 뭐죠?

극지연구소에 전화했습니다. 북극 빙하 관련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 연구원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기사 내용을 설명해줬더니,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그 정도면 '경미한' 변화라고 했습니다. 기준 년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겁니다. 올해 북극 빙하 면적을 지난 해와 비교하면 상당히 늘어난 것이 사실, 그러나 지구온난화에 속도가 붙은 1980년대 빙하 면적과 비교하면 여전히 많이 녹은 상태라고 했습니다. 겨우 1년 증감이 그렇다는 것, 특히 2012년은 빙하 면적이 최소를 기록한 해입니다. 그 정도는 아무 의미없는 변화라고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데일리매일'은 위성 사진을 소재로 '지구온난화가 세계적 음모 아니냐'는 일부 의심을 조합해 유사 과학기사 하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빙하 면적이 작년보다 60% 늘었다? 지구 온난화라더니 이게 무슨 변화냐?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이런 기사도 가능합니다. 2009년에는 북극 빙하가 전년도 대비 100% 가까이 늘어난 적도 있으니까, "지구 온난화의 음모 들통? 북극 빙하 면적 두 배 증가" 이렇게 제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기사 작성에 방해가 되는 과거 수십 년의 데이터를 간단히 무시하기만 하면, 이런 단기 수명의 유사 과학기사는 얼마든지 양산해낼 수 있습니다. 빙하 면적 그래프를 구경한 적 없는 대중들을 낚기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난 과학자가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지구 건너편 한국의 네티즌도 다수 낚였을 것입니다.

'데일리매일'이라는 매체의 이 보도는 그래서 나쁜 기사입니다. 과학기사의 가면을 쓴 유사품입니다. 이 유사품을 모르고 만들었으면 신중치 못하군요, 지적하고 그만일 텐데, 고의적으로 그런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북극 빙하 면적이라는 것이 무슨 국가기밀이 아닙니다. 1980년대부터의 추이가 언론에 수도 없이 보도되어 빙하 면적의 증감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는 상태고, 보도가 아니더라도, 미국 자료센터에 접속해보면( http://nsidc.org) 누구나 북극 빙하의 짧은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온난화라더니 빙하 면적 늘었네? 온난화 음모 아냐? 라는 식의 글을 내놓은 것은 일종의 선전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전 치고는 수준 미달의 선전, 전화 한 통화에 들통 나는 선전입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난 400년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1만4천 년 전부터 기온 추이를 따져보면, 지금의 온난화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데일리매일이 신나게 과장했던 '경미한' 변화처럼 말입니다. 최근 50년간의 온도 상승 원인에 대해서는 특히 의견이 엇갈립니다. 화석 연료를 펑펑 써버린 인간 활동의 결과라고 보기도 하고,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소빙하기에서 회복되는 과정일 뿐이라고, 인간 활동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습니다. 참고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007년 온난화 원인의 일부가 인간 활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과학계 논쟁이 얼마나 오묘한지, 흥미로운 주장 하나를 소개해드립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아서 면적이 줄어든다는, 마치 과학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프레임에 대한 이견입니다. 리처드 뮬러 美 UC버클리 대학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북극의 얼음이 녹는 것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왜곡된 근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지구 온난화 모델에서는 온도가 올라가면, 바닷물 증발량이 늘어나고, 늘어난 수증기가 남극-북극에 도달해 눈으로 내리게 되면, 얼음 양은 증가한다고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즉, 온난화로 빙하 면적이 늘어난다는 상식을 뒤집는 모델입니다. 실제로 북극 빙하가 급속하게 녹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후반부터고, 온난화가 시작된 건 더 오래 전부터입니다. 얼핏 빙하와 온난화가 상관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이론과 복잡한 숫자 말고, 사람들 가슴 속에 남아있는 건 '앨 고어'가 다큐 '불편한 진실'에서 보여준 북극곰 한 마리입니다. 빙하를 찾아, 살 곳을 찾아 헤매는 딱한 북극곰. 지구 온난화, 북극 빙하 기사를 쓰는 것은 연구보다 훨씬 골치 아픈 일인 것 같습니다.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