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기증 불모지 대한민국] (上) 대기업 창고엔 미술품 가득.. 미술관 벽엔 걸 작품이 없다

곽아람 기자 2013. 9. 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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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작가·유족 제외 기증은 5.6% 뿐

앤디 워홀, 데이미언 허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대기업 비자금 사건에 오르내리는 미술 작품은 국제적 수준의 고가 미술품이다. 그러나 11월 12일 개관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외국에 내놓을 만한 소장품이 없다. 사건마다 미술품이 언급되지만, 미술관 수장고는 비어있는 게 한국 미술의 자화상이다. '걸 작품'이 필요한 국·공립 미술관과 떳떳이 '걸 곳'을 찾지 못하는 개인·기업 컬렉터를 '연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 연결 고리 중 하나는 '미술품 기증'이다. 국내 미술품 기증 실태와 활성화 방안을 짚어 본다.

"그 흔한 피카소 작품 한 점 없는 미술관이 '국가적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미술관 '얼굴'이 될 작품이 없는데 대체 관람객들에게 뭘 보여줄 수 있을지…."(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11월 개관 예정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둘러싸고 미술계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뉴욕 MoMA의 '별이 빛나는 밤', 루브르의 '모나리자' 등 해외 유명 미술관들이 관객몰이를 하는 것은 수준 높은 상설 전시 작품 덕인데 우리 미술관에는 작품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장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2팀장도 "7000여점 소장품으로 전시실을 채울 수는 있겠지만 작품의 수준이 문제"라고 했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31억4100만원. 미술관에 걸 만한 피카소의 입체주의 초기 그림은 10호 크기가 100억원을 호가한다.

미술품 기증의 불모지, 대한민국

지난 4월 미국에선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의 레너드 로더 명예회장이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 상당의 미술품 78점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키로 했다. 기증품은 피카소 33점, 브라크 17점, 레제 14점 등 거장의 작품. MoMA(뉴욕현대미술관)의 '얼굴'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샤갈의 '나와 마을' 역시 모두 기증받은 작품이다.

반면 국내 미술품 기증 리스트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7022점 중 기증품 수는 3115점(44.3%)으로 숫자는 많지만 대부분이 작가나 유족이 기증한 것이고, 개인·기업의 순수 기증품은 397점(5.6%)에 불과하다. 국내의 대표적인 기업 컬렉터인 삼성문화재단은 단 한 점을 기증했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는 "국내 미술품 기증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구입해 주는 대신 작가로부터 받거나 유족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기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준 높은 컬렉션을 구성하기 힘들다"고 했다.

국·공립 미술관 중 부산시립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은 순수 기증 비율이 각각 46%, 64.7%로 매우 높은 편. 단 두 사람 덕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440여점, 신옥진 공간화랑 대표가 397점을 기증했고,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은 하정웅씨 기증 2302점이 절대다수다.

기증시 세제 혜택 등 마련해 줘야

'미술품 소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기증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대구미술관에 4억2000만원 상당의 이우환 작품을 기증한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그림을 가지면 '죄인' 취급을 하는데 어떻게 기증하겠나. 세무조사를 다들 두려워한다"고 했다. 자기 소장품으로 개인 미술관을 연 한 컬렉터는 실제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김윤섭 소장은 "미술품을 기증하고 싶어도 '돈○○ 한다'는 비난, 세무조사 등이 두려워 엄두를 못 내는 컬렉터가 꽤 있다"고 했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기업 및 개인이 미술품 구입 사실을 떳떳이 공개하고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쪽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해법은 미술관에 미술품을 기증할 경우 세제 혜택을 주자는 것. ▲미국은 개인 기증 미술품 평가액의 100%를 소득세 일정 한도 내에서 공제해주고 ▲영국은 개인과 기업이 미술관에 기부할 경우 한도 없이 소득공제와 손금산입(비용 처리)이 가능하며 ▲프랑스는 기업이 미술품을 국가기관에 기증하거나 국·공립 미술관의 미술품 구입비용을 지원하면 해당 금액의 90%를 세액공제받는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미술품을 살 때 건당 500만원까지 비용 처리를 해주는 정도다. 이재경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 미술품 기증은 작품 평가액의 30%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지만, 미술품 가격 산정이 어려워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은 "기업의 음성적인 미술품 구입을 양지로 끌어내려면 세제 혜택을 주는 게 가장 빠른 답이다. 올 초 정부가 기증시 세제 혜택을 기존의 건당 300만원에서 최대 3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논의했으나 결국 500만원으로 결정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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