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 가고 물 먹고.. 60년 전 그들을 기억한다

입력 2013. 8. 27. 16:57 수정 2013. 8. 27. 16: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골로 간다."

"물 먹었다."

국민보도연맹과 관련해 나온 말이다. 산골짜기로 끌려가 죽임을 당한 것과 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된 주검들을 표현한 말이다. 60년도 훨씬 지난 시절, 골로 갔거나 물 먹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 < 레드 툼(Red Tomb) > . 구자환 감독( < 민중의소리 > 기자)이 2004년부터 촬영을 시작해 10년 만에 제작 완료한 영화다. 구 감독은 창원, 밀양, 진주, 거제, 통영, 창녕 등 학살지를 중심으로 촬영했다.

구자환 감독은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 레드툼 > 을 제작해 28일 저녁 창원축구센터 관리동 3층 강당에서 시사회를 갖는다.

ⓒ < 레드툼 > 자료화면

영화는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서 한국전쟁시기까지의 정치사회적 현상과 사건, 국민보도연맹의 결성 배경, 학살 현장과 유족들의 사연, 유족들과 당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놓았다.

영화는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규명하면서 이념적 논쟁을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했던 시대의 비극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1950년대 미소 냉전시대의 메카시즘으로 빚어진 시대의 참상도 동시에 기록해 놓았다.

구 감독은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은 오래전 과거정권에 의해 잊힌 역사가 되었고, 참담했던 과거의 기록은 공립 교육과정에서조차 찾을 수 없다"며 "이를 통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과 근현대사를 공유하고, 전쟁과 이념이 아닌 인권이라는 천부적 권리와 민주주의라는 의제로 관객에게 다가서려 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구 감독이 국민보도연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2004년 경남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유골이 발견되면서 부터였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유골이 드러났고, 2년 뒤 민간 차원에서 유골을 발굴했다.

그는 "취재 첫 날 '여름철에 피서객들이 많이 온다는 계곡이 당시에는 검붉은 피로 물들여져 있던 곳'이라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그 학살의 현장은 알림판조차 없이 역사 속에 묻혀 있었고, 그로 인해 그 장소를 찾는 피서객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영화 속에는 보도연맹과 관련한 갖가지 증언들이 담겨 있다.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학살과 관련해, 박전규(둔덕마을)옹은 "죄 없는 사람들도 잡아가는 시절에 살려주었다가 자신들도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마을 고령의 주민들은 지서로 다시 잡혀온 사람의 이야기를 어렵게 전했다. 한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배가 너무 고프니 마지막 가는 길에 밥이나 먹여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경찰도 사람인지라 곧 죽을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데, 그는 자신의 무덤이 될 구덩이 앞에서 마지막 밥을 맛있게 먹고 구덩이에 누워서 부탁을 남겼다고 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뒷날 찾을 수 있게 머리는 쏘지 말아 달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바다에 수장된 현장 이야기도 담겨 있다. 마산시 진동면 수정리에는 당시 마산 시민극장에 영문도 모른 채 모인 보도연맹원들이 감금되어 있다가 새벽에 마산 중앙 부두를 통해 모두가 바다에 수장되었던 것이다.

구 감독은 "시신은 바닷물에 밀려 인근지역으로 밀려갔고 일부는 일본으로도 흘러갔고, 지금도 수정리에는 마을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해 묻어둔 곳이 도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며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 현장을 알지를 못한 채 지나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마산시 진동면 옥계리 이현규옹은 영화 속에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며 "대학 나온 사람, 지역 유지,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은 모두가 빨갱이로 몰려서 죽여 버렸다"고 증언했다.

진주시 일반성면 대천리에 살고 있는 박상연 할머니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에도 여전히 남편의 옷을 간직하고, 남편이 혹시 살아 돌아올까 하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영화 속에 나온다. 박상연 할머니는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에 배 안에 아기를 가진 채 남편을 잃었다.

진주시 하판임 할머니는 반세기가 넘는 동안 남편이 학살당한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혹시 자녀들에게 불이익이 올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학살 현장을 찾은 대부분의 할머니들 역시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잃고 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지난해까지 확인된 경남지역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매장지는 119곳 127개 지점이다.

이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후반작업 현물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구 감독은 < 회색도시 > < 선구자는 없다 > 등 17편의 단편 다큐를 제작해 왔다.

다큐멘터리 < 레드툼 > 시사회가 28일 창원축구센터 관리동 3층에서 열린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 아이폰] [ 안드로이드]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