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교 폭파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서울 시민들

2013. 7. 6. 10: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서울 사수'

이튿날(6월 26일) 오후,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국회에 출석하여 '서울 사수'를 공언했다.

"이미 우리 국군은 해주에 돌입했고, 의정부 북쪽에서는 적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군은 대통령 각하의 명령만 내리면 사흘 안에 평양을 점령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전방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치 못한 본회의장 국회의원들은 육군참모총장의 호언장담에 격려의 박수를 쳤다. 아울러 그 시간 국방부에서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한 선무방송 지프차가 서울 시가지를 누볐다.

"국군은 38선 이남으로 내려온 적을 격파했습니다. 평양은 내일 중에 함락될 것입니다.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십시오."

하지만 전선의 실제 상황은 국방부의 선무방송과는 전혀 달랐다. 그 시간 T-34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은 국군을 매섭게 몰아붙이며 서울을 주 공격방향으로 거침없이 진격해 왔다. 6월 25일 낮에는 인민군 야크기 두 대가 서울에 날아와 여의도비행장을 공습하고 돌아갔다. 그런데도 신성모 국방장관은 6월 26일 서울중앙방송국 마이크 앞에서 생방송으로 호언장담하는 선무방송을 했다.

"어제 새벽에 침입한 적은 우리 국군의 반격으로 지금 후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군은 총반격전을 개시하였던 바, 차제에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우리 민족의 숙원인 국토 통일을 완수하고야 말 것입니다."

6월 26일에는 경기도 동두천, 포천, 의정부 일대와 강원도 춘천, 강릉이 이미 인민군 수중에 들어갔다. 그날 밤 인민군은 의정부에서 곧 서울에 진주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인민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거침없이 남진해 왔다. 38선 일대를 방어하던 국군은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 총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치 홍수에 둑이 무너지듯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인민군들이 몰고 내려온 소련제 T-34 전차로 한국전쟁 초기는 무소불위로 한반도를 누볐다.

ⓒ 한 재미동포 제공

이승만 대통령의 새벽 피난

6월 26일 밤, 신성모 국방부장관은 긴급히 육·해·공군 총참모장들과 기타 군 간부를 소집하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회에서 초기 전투 패배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끝에 결론은 '수도 이전'이었다.

비상대책회의에 이어 날짜가 바뀐 27일 새벽 1시 긴급 비상국무회의가 소집되었다. 이때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의 낙관적인 전황설명은 뒤로 한 채, 수원 천도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 유감스럽게도 당시 150만 서울 시민의 안정과 민생, 그리고 시민들의 피난대책은 전혀 없었다. 일반 시민들이 정부의 수도 천도를 알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백성들을 사지에 둔 채 정부 고관들만 줄행랑하는 꼴이었다.

이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 이승만 대통령 다급하게 경무대를 빠져나와 서울 역에서 특별 남행 피난열차를 탔다. 이 대통령을 태운 열차가 서울역을 떠난 시간은 이날 새벽 3시 무렵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돌발사태로 허겁지겁하고 있는데, 인민군은 계속 탱크를 앞세운 채 어느 새 의정부에서 서울로 밀물처럼 무섭게 진격해 오고 있었다. 국군은 대전차포와 바주카포로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했으나 인민군 탱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6월 27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들이 정부의 서울 천도 결정도 모른 채 본회의에서 '서울 사수'를 결의한 뒤 곧장 의원 대표가 경무대를 방문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서울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참담하게 발길을 돌렸다.

'서울 사수' 녹음 방송

하지만 이 대통령이 서울을 떠난 뒤인 그날 밤 서울중앙방송에서는 '서울 사수'를 호소하는 이 대통령의 담화가 전국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선에서도 충용 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같이 싸워서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추격중입네다. 국민 여러분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기를 바라는 바입네다. 나 리승만은…."

이 녹음방송은 인민군이 서울에 진주한 뒤에도 앵무새처럼 계속 방송되었다. 이는

이 대통령의 담화를 대전방송국에서 녹음하여 전화로 서울중앙방송국에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중앙방송국에서는 마치 이 대통령이 당시 서울에서 집무하는 것처럼 이를 그대로 방송한 결과로 빚은 해프닝이었다.

이 방송을 들은 일부 서울시민들 중엔 이 대통령이 서울 경무대에 머물고 있는 줄 알고, 피난길을 되돌려 집으로 돌아간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육성 방송에도 북쪽에서 대포소리가 들려오는 등, 전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일부 시민들은 그날 밤늦게야 허겁지겁 피난봇짐을 싸들고 한강인도교로 달려갔다.

한편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28일 새벽 1시 무렵, 인민군 탱크가 미아리 방어선을 막 돌파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곧이어 45분 뒤에는 그 탱크들이 서울 시내에 진입하였다는 급보를 받았다.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군 지휘관으로서 상황판단이 제로였고, 책임감도 전혀 없었다. 그는 후퇴 중인 부하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보다 대통령을 비롯한 군 수뇌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인민군 탱크에 잔뜩 겁을 먹고는 앞뒤 상황판단을 못한 채 즉시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한강교 폭파 지시를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미리 폭약을 장진해 둔 채 발파 명령을 기다리는 공병들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한강대교를 비롯한 3개의 철교는 큰 폭음과 함께 폭싹 주저앉았다. 그 폭파 시간은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무렵이었다.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는 이 한강교 폭파로 허겁지겁 피난봇짐을 싸들고 한강 인도교 위에 몰려든 약 800명의 피난민들은 그 자리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즉사하거나 수장되고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영문을 모르고 몰려든 피난민으로 한강교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강교 조기 폭파로 후퇴 중인 국군은 퇴로를 잃게 되어 개전 당시 10만여 명이었던 병력과 장비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치명상을 입었다. 타이타닉 호 선장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자기 배와 함께 순직하는 것처럼, 서울 사수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장엄하게 순국한 정부의 한 고관도, 군 수뇌부의 한 간부도 없었다. 그런 정부와 고관 및 군 수뇌부를 믿고 산 백성들만 불쌍했다.

한편, 그 시각 서울 미아리고개 일대 시민들은 인민군이 몰고 내려온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에 놀라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 서울시민들은 그제야 인민군의 전면적인 남침인 줄 알고 피난길을 서둘렀지만 이미 한강다리가 폭파된 뒤라 속수무책이었다. 이후 서울시민들은 독 안의 쥐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석 달간 인공치하에 살아야했다.

미 전투기에서 내려다본 부서진 한강철교(1951. 1. 왼쪽 열차철교 오른쪽 인도교)

ⓒ NARA

세상이 바뀌다

6월 28일 오전 11시 30분, 국군의 수도 최후 저지선인 홍릉과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한 인민군 선발대는 오후 3시에 중앙청을 점령했다. 인민군 총구 앞에 서울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납작이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진주한 인민군은 가장 먼저 서대문 형무소와 각 경찰서에 수감된 4천여 명의 정치범들을 석방시키고, 즉각 인민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자 세상은 삽시간에 180도로 달라졌다. 어느 새 붉은 완장을 두른 젊은이들이 거리를 뛰어다니며 "인민공화국 만세!, 조선인민군 만세!"를 연호하며 막 서울에 진주한 인민군을 향해 환호했다.

6월 28일 인민군의 서울 진주가 끝나자 김일성 인민군총사령관은 즉각 서울 점령 축하연설을 방송하고, 각본에 따라 서울시인민위원회 위원장에 북한 내각 사법상 이승엽을 임명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불과 사흘 만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었다. 미처 피난치 못한 일백여 만 서울시민들은 좋든 싫든 새로운 세상, 곧 인공치하에 적응하며 새로운 질서에 순응해야 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 아이폰] [ 안드로이드]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