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순이'들이 한류(韓流) 만들어 낸 거다"

조동진 기자 2013. 4. 27. 10:4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K팝으로 대표되는 한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활황과 함께 전 세계 한류 팬들에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또 하나의 문화가 있다. '팬덤(Fandom)'으로 불리는 팬 문화다.

지난 4월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음악평론가 이민희(32)씨에게 한국 사회에서 한국의 팬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씨는 2007년 음악전문 잡지인 '프라우드'의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네이버뮤직'과 '씨네21'에 음악과 문화 관련 글을 쓴다. 그는 최근 세계적인 한류 현상의 뒤에 이들을 스타로 끌어올려 준 한국의 독특한 '아이돌 팬 문화'가 있음을 말한 '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이씨는 2010년대 이후 한국 팬 문화가 스타를 좇는 '오빠부대' 수준을 넘어 스스로 경제적 가치를 생산·소비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SM엔터테인먼트를 연예인을 트레이닝해 데뷔시키고 이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 돈을 버는 단순 연예기획사로 봐선 안 됩니다. 이미 외식과 노래방 사업은 물론 패션 관련 사업 등 연예 매니지먼트와는 전혀 다른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여행사까지 인수했지요. SM엔터테인먼트의 이런 사업 확장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한국의 팬 문화'입니다."

그는 "동방신기가 콘서트를 열면 단순히 그 콘서트만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라며 "팬들은 동방신기는 물론 동방신기가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가 내놓는 모든 상품을 소비해 주는 강력한 구매자가 된다"는 말로 팬 문화가 어떻게 경제적 가치를 만들며 산업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콘서트를 연다고 치지요. 한국 팬들은 '우리 오빠(동방신기)'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으로 직접 날아갑니다. 예전 같으면 비행기 표를 직접 구하고 숙소를 잡아 식사를 해결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동방신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여행사를 통해 그곳에서 SM이 제공한 숙소와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 오빠(동방신기)'를 따라 다니며 오빠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을 소비해 주는 한국 팬들의 이런 행동 양식이 한국 팬들의 그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한류를 소비하는 외국 팬들에게 고스란히 수출되고 있는 거지요."

그는 한국의 팬 문화가 한류와 같은 문화 수출 상품이 돼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들며 하나의 산업이 되고 있음을 말했다.

"한국 팬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외국 팬 역시 한국 팬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 역시 자신이 열광하는 한국 아이돌을 보기 위해 일본, 중국은 물론 유럽과 남미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날아옵니다. SM이 운영하는 여행사가 마련해준 항공기를 타고 와 SM이 마련한 소속가수의 공연을 봅니다. 그리곤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다음 날 SM 소속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방문하고 심지어 SM이 운영하는 노래방(에브리싱)에서 SM 소속 가수의 노래를 부릅니다. SM이 운영하는 외식업체(SM크라제)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역시 SM이 운영하는 기념품점에서 상품을 구매합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을 한국에서 소비하는 것이지요. SM뿐 아니라 다른 연예 기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한국적 팬 문화를 고스란히 흡수한 외국 팬들 역시 한국 경제 안에서 새로운 소비 주체가 돼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생산자로 부상한 한국의 팬 문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그리 너그럽지 않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빠순이(연예인에게 광적으로 집착·열광하는 팬) 문화'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다.

이씨 역시 여전히 '팬덤'과 '빠순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음을 말했다. 그는 굳이 나누자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팬이 빠순이라며 "예를 들면 강타 오빠(옛 HOT 멤버)가 음주운전으로 조사를 받게 됐을 때 경찰서 홈페이지로 달려가 (홈페이지를 마비시킬) 테러 수준으로 수없이 글을 올린다면 그런 게 '빠순이'"라고 했다. 반면 10~20대 초중반 여성이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고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애정이 '팬덤'이라고 했다. 이런 팬덤과 빠순이의 경계가 사실상 없는 게 한국 팬 문화라고 했다.

그는 '빠순이' 식의 과격한 모습이 사실 아이돌을 좇는 10~20대 초중반 여성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에 열광하는 남성들의 모습 역시 다르지 않다고 했다. 단지 좋아하고 열광하는 대상이 아이돌과 스포츠란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연예인을 따라다니는 10~20대 초중반 여성에게 '팬덤'이란 표현보다 '빠순이'란 인식이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것처럼 쓰이는 것에 대해 이씨는 "대중문화 자체가 우아하거나 안정감을 주는 것과는 거리가 먼 하류 문화"라며 "그런 대중문화 속 한국 팬 문화는 거기서도 가장 밑바닥 하위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스포츠팬에게서 보기 어려운 집착과 광적 모습이 연예인, 특히 아이돌을 좇는 (10~20대 초중반) 여성에게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아이돌의 콘서트를 보면 콘서트가 끝나기도 전에 팬들이 '우리 오빠'(아이돌)를 쫓아갑니다. 차를 둘러싸고 아우성 치며 '우리 오빠'를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겠다고 난리를 칩니다. 차에 매달리는 건 물론 차를 부수기도 하지요. 이런 장면이 흔하게 연출됩니다."

이런 모습이 흔히 '사생팬(연예인의 사생활을 좇는 팬)'으로 불리는 비정상적 팬 문화를 낳으며 한국의 팬 문화를 '빠순이의 극성' 정도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돌 연예인'은 '저렴하다'란 우리 사회의 시각 역시 한국 팬 문화가 하위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이씨는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프로의 무대' '프로의 전유물'로 인정해 준다"며 "하지만 '아이돌 연예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저렴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연예 기획사는 음악적 재능보다 그저 잘 웃고 춤 잘 추고 예쁘장한 친구들을 찾아내 무대에 올립니다. 아이돌에게 음악성을 집어넣고 문화적 메시지를 넣게 되면 그때부터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럼 기획사 입장에선 장사가 안 되지요. 기획사에 아이돌과 팬 문화는 음악성이나 재능보단 그저 돈을 버는 사업의 대상일 뿐입니다."

기획사의 이런 사업 전략과 그 기획사가 내놓은 아이돌 상품에 열광하는 또래가 만나 만든 '한국적 팬 문화'이기에, 우리 사회에서 팬 문화가 저렴한 하위 문화의 하나쯤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말이었다.하지만 그는 이런 대중문화 속 한국의 팬 문화를 비판적 시각이나 계몽의 대상으로 해석하려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팬 문화는 스스로 진화하는 하나의 사회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씨는 진화하는 팬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이 대중문화 속 팬 문화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chosun.com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