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싸이 '젠틀맨'을 보는 두 가지 시선

김도식 기자 2013. 4. 2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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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뮤직비디오 '젠틀맨'이 공개된 지 일주일쯤 지난 지난 18일, 인터넷 미디어 '프레시안'에 눈길을 사로잡는 글이 실렸다. 동아대 정희준 교수의 『싸이의 '포르노 한류' 자랑스럽습니까?』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글이다. [기사 링크]

정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젠틀맨'의 내용이 '여성에게 가학적이고 수영장에서 누워 있는 남성의 얼굴 위로 비키니 입은 여성이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등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포장마차에서 가인이 하얀 소스를 바른 어묵을 먹는 장면은 "포르노그라피에 의존한 작품"이라고까지 지적했다.

글을 읽자마자, '젠틀맨'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내 느낌의 한 단면을 정 교수가 잘 짚어냈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유를 하면서 아내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런데, 아내의 대답이 좀 뜻밖이었다. 자기도 봤다며 "정 교수의 주장에 아마 20대들은 '꼰대의 시각'이라고 비판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꼰대'라……

나의 페북 친구들은, 예상대로, 정 교수의 글을 공유하면서, "나도 불편했다", "아무래도 영상은 과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이 그랬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한 고등학교 동창은(그러니까 이 친구도 나이로 보자면 '꼰대'가 맞다) "싸이에게 뭘 바라는가? 그는 한국의 도덕적, 문화적 기준을 전파하는 문화대사가 아니라 그냥 연예인이다. 그냥 싸이로 살게 내버려두자. 우리는 매일 미국산 포르노의 폭격을 맞고 사는데, 한국 연예인이 한국식의 가벼운 장난을 좀 쳤기로서니 뭐가 문제인가?"라는 반론을 폈다. 뉴욕에 사는 대학 선배도(그는 '더 꼰대'다) "대중 연예인에게 너무 바란다"며 동조의 글을 남겼다.

정 교수의 원래 글에 달린 댓글에서도 찬반이 팽팽했다. 헷갈리기 시작했다. 누구 말이 옳은가?

이런 와중에 한 방송사가 '젠틀맨'에 대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주차금지 시설물을 발로 걷어차고 철길을 걷는 장면 등이 방송에 부적합하다'는 취지였다.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젊은이들로 보이는 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이 방송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여러 패러디가 등장해 SNS를 통해 확산됐다.

오늘 아침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와 출연자도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짚었다. 요약하면, "싸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뮤직 비디오에서 했다고, 그 걸 본 외국인들이 '한국에서는 저래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할까요?"이다. 방송 부적격 판정을 은근히 비꼰 것이다.

'젠틀맨' 공개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반응을 녹화해 올린 해외 여성들을 봐도, 간간이 '역겹다'는 표현이 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뭐, 재미있네' 쪽인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대세는 분명해졌다. '젠틀맨'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주장은 '꼰대들의 생각'이 맞았던 것이다. 싸이의 '젠틀맨'은 보기에 따라 저급하고 선정적이지만, 그렇다고 별로 문제될 건 없는 것이다. 싸이의 원래 코드가 B급 문화니까, '젠틀맨'도 B급인 게 당연한 것이다.

물론 '꼰대들의 생각'이라고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글에서 어느 쪽이 옳다고 판정을 내릴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이번 논란을 보면서,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을 때 우리가 너무 흥분했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한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문화는 파괴다'라는 명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한다.

'젠틀맨' 뮤직 비디오 중 몇 장면은 여전히 내게는 불편하다. 방귀를 뀌고 그 냄새를 담아 옆 자리 여성에게 던지는 장면과, 아무래도 좀 지나쳤다 싶은 가인의 어묵 흡입 장면 등이다. 하지만 싸이가 싸이로 사는 것처럼 나는 나대로 생각하면 된다.

모쪼록 싸이의 건투를 빈다. '젠틀맨'을 보면서 비판했던 이들, 그리고 그 비판을 비판했던 이들의 건투도 빈다. 세상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김도식 기자 dos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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