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좋다는 홍대앞 '곰다방' 카페 문닫은 이유가..

2012. 11. 7. 15: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매거진esc] 커버스토리

낭만적 밥벌이 꿈 깨세요

홍대 앞 명소 '곰다방'은 왜 문 닫았을까…직장인들의 로망 카페 창업 실패기

'그는 카페에 자신의 물건을 들여놓았다. 그가 읽던 책 100여권이 책장에 꽂혀 있으며, 그가 즐겨 듣는 엘피(LP)판 600여장이 재생을 기다린다.' 홍대 앞에 뜨고 있는 작은 카페들을 소개했던 2007년 <한겨레21> 제655호에 실린 기사다. 기사의 주인공은 카페 '커피 볶는 곰다방'(이하 곰다방)의 주인 박준호(40)씨다. 곰다방이 언론을 타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소개 글이 올라간 블로그만도 수백개다. 그곳은 서울 서교동 홍대 바닥에서 커피 맛을 알고 멋 좀 낸다는 이들이 꼭 찾던 '핫 플레이스'였다. 그 곰다방이 지난 6월말 문을 닫았다. 문 연 지 5년3개월 만이다. '잘나가던' 카페는 왜 문을 닫았을까?

"장사도 안 되고 지겨워서 문 닫았어요." 그가 내뱉은 말은 여러번 우려낸 녹차처럼 싱겁다. 그는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 맨'이라는 별명답게 빈티지풍 매력을 발산한다. 카페를 열기 전 출판사가 직장이었다. 책이 좋았다. 허나 직장생활이란 게 어디 맘대로만 되나! 7년차 직장인의 고질병이 그에게도 닥쳤다. 영어 참고서를 만들거나 해외 판권을 처리해야 했다. 달갑지 않은 일에 지쳐갔다. 매년 일터를 바꿨다. 생활은 너덜너덜한 수첩처럼 생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게 변했다. 사표를 던졌다. 밤마다 홍대 바닥을 혼자 떠돌며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성북구 안암동에서 '보헤미안'을 만났다. 그곳에서 맛본 만델링 한 잔이 요술을 부렸다. 몽롱한 갈색의 음료에는 '보헤미안'의 클래식 음악도 섞여 있었다. "음악을 듣고 살고 싶었던 건데 꼭 술을 팔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술집에서 돈 벌고 낮에 단국대 평생교육원에서 커피를 배웠어요." 일당 3만원을 커피에 쏟아부었다. "생활이 안 되니깐" 삼천포 등 건설현장도 갔다. 그는 건축기사 자격증이 있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은 성큼성큼 커피로 달려가게 했다. 5000만원짜리 적금을 해약하고 그 돈으로 2007년 3월 '커피 볶는 곰다방'을 열었다.

내가 놀고 남들이 놀 수 있는 곳아날로그적 매력에 반한사람들로 한때 북적북적

1999년 서울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가 1호점을 연 이후 대형 커피전문점 시대가 활짝 열렸다. 커피빈, 자바, 홀리스, 탐앤탐스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잠식해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2000년대 후반 카페 바람이 확 불기 시작했다. 홍대 거리에는 예쁘고 주인장의 개성이 강한 카페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곰다방 터는 카페 하기에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홍대 거리는 7년 다녔지만 그 골목은 처음 갔어요. 학생들 밥집 골목이었죠." 그런데 가게를 보자마자 반했다. 이유가 없었다. 박씨는 보증금 1000만원, 권리금 2500만원, 월세 100만원에 계약했다. 33㎡(10평)였다. 테이블 2개, 바까지 합쳐봐야 고작 14명이 앉을 수 있다.

곰다방의 성공은 주인장의 독특한 개성 때문이었다. "인테리어는 현장에서 버린 거 가져와 하고, 1000만원대 하는 에스프레소 기계는 안 샀어요. 핸드 드립만 했어요. 내가 안 먹는 건 팔지 말자 주의였죠." 콩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30분 이상 통돌이를 돌려 볶았다. 곰다방은 아날로그 세상이었다. "너무 행복했어요." 8가지 커피 가격은 모두 5000원. 회전율, 수익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이 좋고 음악이 좋아서 한 거죠. '여기서 놀자' 한 겁니다." 일이 끝나면 혼자 소주 한잔을 마시고 의자를 붙여 가게에서 잤다. 당시 원두를 사서 직접 갈아주는 집은 홍대 앞에서 카페 '칼디커피하우스'와 곰다방뿐이었다. 벽화와 예쁜 인테리어는 카메라를 멘 이들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고가의 오디오를 단 곰다방의 음악은 최고였다.

첫달부터 적자가 아니었다. 이듬해 12월까지 흑자 행진이 이어졌다. 그달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1000만원에, 순수익은 500만원. 이 정도면 작은 카페가 낼 수 있는 수익의 최대치에 가깝다. "내 가게는 터미널이었어요.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곳, 그게 재미있었어요. 돈이 오가는 건 그저 의례 같은 거죠. 오는 이들에게 커피가 아니라 쉴 수 있는 시공간을 팔고 싶었어요." 먹구름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최대 흑자를 낸 12월 이후 하향세였다. 원두를 직접 볶아주는 카페가 수백 군데 생겼다. 카페는 진입장벽이 낮다. 주변에 분위기로 승부하는 작은 카페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3년이 넘어가자 매일 15시간의 노동이 버거웠다. "너무 오랫동안 좁은 데 갇혀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12시간 이상 가게 있으면" 말을 하기 싫어졌다. 어느 순간 음악까지 밀어내도 들러붙는 애인처럼 보였다. 치열해진 경쟁을 뚫기 위해 박씨는 방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다른 카페들이 고가의 에스프레소 기계를 설치하고, 라떼아트를 선보이거나 쿠폰을 뿌릴 때 그는 우직하게 자신의 옛날 방식을 고집했다. 원두의 종류를 늘려 맛의 고급화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욕심이 없었다. 지친 탓에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우후죽순 늘어난 카페들하루 15시간 노동얻은 건 사람잃은 건 건강과 청춘

그나마 해결책으로 찾은 것이 직원이었다. 하지만 요술방망이는 아니었다. 평균 수익이 한달에 200만~250만원 정도 났지만 월급을 주고 나면 돌아오는 게 별로 없었다. 쉬는 날 "심심하기도 했지만 직원 월급이 걱정이 되어" 번역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곰다방만의 특징이었던 흡연도 금했다. 초창기 곰다방은 흡연자유구역이었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커피 집은 흔하지 않았다. "커피와 담배는 궁합이 맞는 조합이지만 좁은 공간이 하루 종일 담배 연기로 꽉 차 있으니 죽을 거 같았어요." 콩 판매수익은 꾸준했지만 떨어지는 매출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가게의 자질구레한 일도 스트레스였다. 건물이 낡아 지하로 물이 새자 건물주는 박씨에게 수리를 떠넘겼다. 그는 건축기사다. 설계도면을 보여달라, 이 건물은 낡아서 그런 거다, 항의하면 설계도가 없다, 물이 새니 보일러 가동도 자제해라 등 실갱이가 1년 넘게 이어졌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폐업을 결심했다.

그는 5년3개월 동안 한가지를 얻고 두가지를 잃었다고 말한다. '사람'을 남겼고 '건강'과 '청춘'을 잃었다. 집을 왕래할 정도로 친해진 홍대 교수, 다방투어를 기획한 인디뮤지션 이장혁씨, 독일로 유학을 가서도 그가 부탁한 컴퓨터 자판을 보내준 여학생 등 그는 자판 수집광이다. 독일 벼룩시장에서는 1유로인 자판은 40유로라는 배송비를 탕진하고 그의 손에 전달되었다. "곰다방을 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이죠." 은행 잔고는 비었지만 후회는 없다. "연애도 많이 하고 좋은 이들도 많이 만났어요. 돈 모아 주머니에 넣어두면 뭐하겠어요." 커피애호가들은 그의 폐업이 아쉽기만 하다. 요즘 그는 용인에서 건축 일도 하고 번역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버는 것은 쉽지 않아요. 낭만적인 생활 아닙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세요.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직장인 카페 창업 실패기 "하루 15시간 노동"아토피 예방하는 '하태독법'을 아시나요?'오늘은 오바마의 밤'미국선 3% 연비과장 '된서리'…한국 5% 부풀려도 "정상"남영동 대공분실 5층 창문의 비밀한글날, 내년부터 다시 '공휴일' 된다[화보] 문-안 후보, 단일화 회동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