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쉼터 '나비 날다'를 아세요?

글·사진 김지환기자 2009. 9. 1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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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주민들 뜻모아 만든 문화공간21세기 품앗이로 이룬 첫 결과물새로운 지역통화 '품' 성공사례 선보여

'나비 날다'의 외부 전경 모습.'개발'과 '보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수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인천의 딜레마다.

근대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인천의 명물들은 그 딜레마 속에서 조금씩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져가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인천시 동구 '배다리'는 바로 그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중구 신흥동과 동구 동국제강을 잇는 고가산업도로에 이어 최근엔 임대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 개발 계획까지 터져 나오면서 시와 시민들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양보 없는 싸움을 잇고 있다.

배다리는 헌책방 문화의 거리와 100년 역사를 간직한 창영초등학교 등 골목골목 손때 묻은 삶의 흔적들이 즐비한 곳이지만 개발의 논리 앞에서는 언제나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이곳 배다리 사람들에겐 개발보단 보존의 가치가 더 우선이다. 골목 사이사이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깊숙이 배어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 동구 배다리에 주민들이 뜻을 모아 또 하나의 문화공간을 탄생시켰다. 소박한 마음으로 문을 연 책이 있는 마을 쉼터인 '나비 날다-나눔과 비움, 오래된 책집에 날아들다(이하 나비날다)'가 바로 그곳이다.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줄곧 환경단체 자원활동가로 지내온 권은숙씨(42)가 주인을 맡았지만 5평 남짓한 공간 자체는 소유와 이윤추구를 배제한 배다리 주민의 공동작품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중구 배다리 지역 내 생활문화공동체로 시작한 '띠앗(http://cafe.naver.com/baedarimoney, 형제나 자매의 우애를 뜻하는 순우리말)'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지역통화 '품'을 통해 돈이 아닌 노동력과 물건, 아이디어로 꾸민 첫 번째 공간이 바로 '나비 날다'다.

유명한 인테리어 회사가 아닌 지역 주민들 개개인이 모여 자신의 '품'을 이용해 꾸민 탓에 문을 열기까지 두 달이라는 긴 준비기간도 필요했다. 간판은 기존 헌책방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책집'을 그대로 살렸고 주위에서 버려진 선풍기와 나무판자들을 모아 책꽂이를 만들고 책상을 짜면서 '버려진 것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했다.

'나비 날다'는 일상에서 흔히 버려진 것들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다시 태어나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자연에 해가 되지 않도록 사는 것이 이곳 주인 권은숙씨의 철학이기도 하다. '나비 날다'의 내부 모습."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삶을 살자는 생각으로 띠앗이라는 생활문화공동체 개념을 더해 공간을 꾸몄어요. 어느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죠."

권씨의 가게는 소박함 그 자체다. 평소 개인적으로 소장하던 책과 비디오를 가게에 진열해 놓고 옷과, 작은 소품들 모두 직접 손으로 리폼한 것들로 채워넣었다. 또 가게에선 친환경을 추구하며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카페(http://cafe.daum.net/nbychungsan) 회원들로부터 친환경 농산물이나 약초·차 등을 받아 전시·판매하기도 한다.

"언젠간 무인 카페로 운영하고 싶어요. 부담 없이 쉬어가고 또 누군가 하루 가게 주인이 돼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아요."

문을 연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배다리에선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차를 마시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리가 아프면 쉬다 가고 목이 마르면 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 곳이 바로 쉼터 '나비 날다'다.

환한 미소를 밝히며 조카 이유식을 담던 빈 유리병을 챙겨온 김영미씨(45)는 "'나비 날다'는 사소한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공간"이라며 "일상에서 무시하고 스쳐 지나갔던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매력을 가진 것 같아 자주 찾곤 한다"고 말했다.

'나비 날다'의 단골손님이 된 김미화씨(42) 역시 "인사동, 삼청동과 같이 꾸며놓은 공간이 아닌 진솔하고 솔직한 공간이 바로 이곳"이라며 "겸손한 가게 모습이 바로 배다리 모습과 맞닿아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부른다"고 말했다.

권씨는 차 한 잔에 3000원, 헌 책 한 권에 몇 천 원밖에 안 되는 수입으로 사실 월세 내기도 빠듯하지만 이마저도 이곳 배다리에선 삶의 공동체 정신으로 쉽게 해결해 놓았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의 터줏대감인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가 든든한 후원인 역할을 약속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로 한 것이다.

"이곳 배다리는 사람 사는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에요. 많은 헌책방들이 문을 닫았지만 앞으로 그 비어 있는 공간들이 또다른 우리 쉼터로 탈바꿈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네요."

"배다리 주민들 쉼터로 운영할 것"'나비 날다' 주인장 전 환경운동가 권은숙씨

권은숙씨가 친환경 전통차를 소개하고 있다.인천 동구 배다리에 '나비 날다-나눔과 비움, 오래된 책집에 날아들다'란 간단치 않은 이름의 책방쉼터가 자리잡았다. 주인 권은숙씨(42)를 만나 이 쉼터의 매력을 들어 보았다.

-책방 같기도 하고 소품 전문점 같기도 하다. '나비 날다'의 컨셉은 무엇인가"지역 주민들의 쉼터다. 책도 읽을 수 있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열려 있는 공간이다. 돈이 없다면 자신의 것을 나누면서 필요한 것을 가져가면 된다."

-지역생활문화공동체 '띠앗'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아는데. 띠앗은 무엇인가"한마디로 말하면 '나눔'이다. 지역에 거주하거나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한해 대안문화공간 스페이스빔에서 지역통화인 '품'을 만들어 나눠주고 그것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나비 날다'는 그 '품'이 모여 탄생시킨 첫 공간이다."

-'나비 날다'에서 친환경 제품 판매 외에도 준비한 것이 있다던데."비누만들기, 리폼하기 등 다양한 친환경 교육프로그램도 마련할 생각이다. 또 정기적인 학습을 통해 환경보호의 중요성도 알리겠다."

-아직까지 지역 통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자리잡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이미 유럽 등 외국은 오래 전부터 지역통화가 잘 발달돼 왔다. 곧 지역 공동체 접근을 통해 그 마을을 가꾸고 발전시켜 오고 있다. 배다리는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앞으로도 '나비 날다'와 같은 새로운 문화공간이 계속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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