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화 고고학은 역사왜곡 우려"

김진우기자 2009. 6. 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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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와 내셔널리즘' 주제 학술대회

고고학은 내셔널리즘의 적자(嫡子)다. 많은 나라에서 고고학은 민족주의적 전통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한국고고학 역시 식민 지배와 분단이라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우월성,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성장했다. 지난달 30일 한국고고학회 주관으로 서울대 박물관에서 열린 '동아시아의 고고학 연구와 내셔널리즘' 발표대회가 주목받은 이유다. 역사학대회의 세부 행사로 마련된 이날 대회에선 한·중·일 고고학의 내셔널리즘은 물론 임나일본부설,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로 알려진 '소로리 볍씨'에 대한 반박 등 고고학계의 민감한 주제가 공론화됐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릉비. 중국은 고구려 역사와 광개토왕의 업적을 담은 금석문이 새겨져 있어 고구려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인 광개토대왕릉비에 한국인 관광객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이선복 서울대 교수는 기조발표에서 " '한민족' 또는 '한국인'의 기원이라는 주제가 한국고고학 연구의 궁극적 목적으로 여겨져 왔다"면서 "자료의 궁극적 의미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민족문화 기원의 규명'이라는 맥락 속에서 규정되곤 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자민족중심주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무조건적인 과거의 미화와 영웅화는 궁극적으로 스스로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안승모 원광대 교수(사진)는 '한국 선사고고학과 내셔널리즘'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고고학자들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오류는 고고학적 문화, 유물·유구복합체, 심지어 비파형동검 같은 개별유물의 분포권을 혈연적 의미의 종족이나 사회·역사적 의미의 민족과 결부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최초' '최고'(最古) '최대' 등 이른바 고고학자의 '3최 주의'와 내셔널리즘을 지적하면서 그 예로 '소로리 볍씨'(사진 아래)를 거론했다.

1996~97년과 2001년 발굴된 충북 청원 소로리 볍씨는 토탄층과 볍씨 등의 연대 측정 결과 1만3000~1만5000년 전 것으로 판명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발표됐다.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단계인 순화(馴化)벼 '소로리 볍씨'는 미국, 필리핀 등지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보고됐고 영국 BBC에 '세계 최고 볍씨'로 소개되기도 했다.

안 교수는 "볍씨가 출토된 토탄층은 빙하기 말기에 해당돼 아열대 식물인 벼가 서식하기 어렵다"며 "장강 유역과 동중국해에서도 야생벼는 1만4000년 전 이후 출현하므로 야생벼 서식처에서 멀리 떨어진 소로리에서 1만5000년 이전에 재배벼가 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소로리 볍씨가 1만5000년 이전 것이라고 하더라도 토탄층에서 식물규산체를 포함한 다른 벼 유체는 전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벼가 현지에서 채취됐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또 "외국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게 곧 공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저명한 국제학술논문에 실려야 한다"며 "아직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가설 단계의 내용을 마치 국제학계에서 공인된 것처럼 홍보하면 대중의 자민족중심주의적 경향과 결부되어 일종의 역사 왜곡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와 내셔널리즘'이라는 주제를 발표한 박천수 경북대 교수는 "고대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화했다는 일본의 '임나일본부설'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일본열도에 문화적 은전을 베풀었다는 남북한의 인식도 역사적 사실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김해시 대성동고분군의 일본열도산 문물과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가야지역의 왜(倭)계고분의 존재는 문물과 사람의 이동이 일방 통행이 아닌 어느 정도 상호적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일본 열도의 전방후원분이 3세기 중엽에 출현한 사실을 들면서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은 조영 시기가 6세기 전엽에 한정되므로 그 기원이 일본열도에 있음은 분명하다"면서 "국내 연구자 중에서는 임나일본부와의 관련을 우려해 전방후원분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부정하려는 경향조차 보였다"고 밝혔다.

<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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